책과 함께하는 인문 공간, NUDGE SALON
철학 아카데미를 뒤로 하고 다음으로 찾아나선 곳은 정동길에 위치한 인문 공간 넛지 살롱이었다. 넛지 살롱은 파주 출판 단지에서 약 6년정도 인문학 관련 책을 편집하고 인문학 강의와 관련된 일을 하던 원희운 선생님 (넛지살롱 대표)께서 지난해 11월에 연 인문학 공간에 해당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근사한 공간이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 넛지살롱의 활동은 조그마한 중견 출판사의 공간을 대관하여 작은 강의를 열었던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입소문을 듣고 하나둘 모여 든 수강생들 덕에 규모가 커져 지난해 11월 정동에 정착했다. 이제 막 그 걸음을 걷기 시작해, 태어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생 인문학 공간 넛지 살롱에서 원희운 대표님과 함께 두 번째 인터뷰를 시작했다.
권 : 넛지살롱을 처음 찾았다. 사실 페이스북으로만 지난해부터 쭉 살펴오던 곳이라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던 곳이다. 이런 공간을 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원 : 기본적으로 어릴 때부터 책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았다. 그래서 출판사에 들어갔고 책을 만드는 일을 했다. 책에 담긴 문장을 곱씹어도 보고, 또 이리저리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책을 갖고 노는 일'이 좋았는데 국내에서 아무리 그런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그럼 내가 만들지 뭐'라는 생각에 넛지 살롱을 열기로 결심했다. 출판사에서 일을 하던 때라서 파주 출판 단지에 있는 여러 사장님들을 찾아가서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고, 그 공간의 총책임을 나에게 맡겨달라고 제안을 했다. 받아들였냐고? 당연히 거절이었다.
손 : 종이책을 갖고 노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출판사 입장에서는 좋을 것 같은데 왜 거절한건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출판사 아닌가?
원 : 당시에는 이런 인문학 공간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많았던 거 같다. 한마디로 '이게 되겠냐'는 거다. 사람들은 더 빠르고 간편하고 쉬운 것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많이 봤고, 글보다는 번쩍이는 이미지와 영상이 더 큰 호응을 얻었고. 당시에는 사람들이 '책'을 가지고 감히 '놀 수 있다'는 나의 생각에 대해 큰 공감을 얻지 못했었던 것 같다.
진 : 그런데 넛지 살롱은 이렇게 보란듯이 6개월만에 정동에 자리를 잡았다. 넛지 살롱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원 : 넛지 살롱은 여타의 인문학 공간이나 아카데미처럼 '강의'를 하지 않는다. 여기에선 '강의자'가 아니라 '진행자'가 존재한다. 이 곳에서 '진행'을 맡고 계신 교수님들께서도 그저 대화의 '진행'을 위한 몇가지 제반 지식이나 간단한 배경 지식만을 이야기해주실 뿐이다. PPT를 띄워놓고 이 책이 얼마나 엄청난 책이고, 배경이 어떠한지, 여기에 담긴 사상이 무엇인지 일장연설식의 지식 전달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의 소통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게 '강의'를 하다보면 어느덧 대학원 수준으로 넘어가는 지식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넛지 살롱에서 '수업료'로 내고 있는 비용은 어떤 지식이나 앎에 대한 비용이라기 보다는 전공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데에 따른 비용이라 할 수 있다.
현 : 그래서인지 (칠판을 가리키며) 저기도 이 공간에서 필요한 것 두 가지로 (1) 자신의 생각을 말할 용기, (2) 자신의 생각에 다른사람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라는 두 가지의 용기가 적혀있다. 그런 방식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원 : 간단하다. 과외 해본 적 있지 않나? '강의'를 하게 되면 결국에는 말하는 사람만 더 똑똑해진다.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과외 선생님이 오히려 더 그 문제를 명확히 알게 되고 똑똑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일방적으로 석학이나 유명한 교수님을 모셔놓고 '자, 이제 말씀해 보십시오'라고 하게 되면 듣는 사람은 정말 '듣고 그만'인 시간이 된다. 그래서 넛지 살롱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기 프로젝트나 오즈학교 같은 프로그램들은 모두 20명의 제한된 정원의 수강생들이 모여서 각자의 생각을 '떠들고' 또 어렵고 난해하지만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 : 그렇게 스스로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수강생'을 구하는 일도, 그리고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진행을 맡아 줄 '진행자'를 구하는 일도 그럼 만만치 않겠다.
원 : 그래서 사실 진행자로 모시는 교수님들의 경우 꼭 직접 그분들이 진행하는 수업을 들어보러 간다. 세계적인 석학이나 탁월한 연구 능력을 가진 분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도 본인이 전공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분들을 찾으려 애쓴다. 일주일에 최소 2~3분은 만나는 것 같다. 6개월이 된 지금 만난 교수님들만 세어보아도 500여 분은 되는 것 같다.
권 : 생기프로젝트와 오즈학교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원 : 생기프로젝트는 2달동안 4번 진행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모임이다. '진행'을 맡아주신 교수님과 내가 함께 고민해서 선정된 지정 도서를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오즈학교는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이고 '성인'이 아니라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그 특징이다. 아무래도 이렇게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서 책과 노는 연습은 어릴 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들었다. 이외 에도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독서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손 : 아까 그런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책'은 진행자와 함께 대표님이 상의해서 정한다고 했는데 특별한 기준이 있는건가?
원 : 나름의 주제는 있다. (영업비밀이긴 하지만) 고전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 가장 큰 것은 '인간의 가면'을 벗긴 글들이 많다는 점이다. 위대한 척, 고상한 척 하는 인간의 모습을 철저히 깨부수는 그런 작품을 들고 와서 '나'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윈, 니체, 막스, 프로이트, 융의 작품들이 대부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많이 나누는 이야기 역시 '성장'이나 '소통', 혹은 '자기 찾기'와 같은 일들이 된다. 수레바퀴 아래서나 연금술사 같은 책들도 가볍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책'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매년 2~3권 정도가 변동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고정적인 '책'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물론 세세한 사항은 영업비밀이다 ㅋㅋ)
범 : 여기 옆을 보니, 서가에도 책이 꽉 채워져있다. 선정해서 수업의 교재로 쓰고 있는 '책' 외에 이 서가에서 넛지 살롱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특별한 책이 있는가?
원 : 넛지살롱은 보통 한 번 발을 들였다가 이 모임의 매력에 빠져서 다시 이 공간을 '재방문'하는 분들이 많이 찾고 있다. 90%는 20대 후반의 대학(원)생들이고, 나머지는 30대 초반의 젊은 분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의외로 말랑하고 쉬운 책만 읽을 것 같지만 <만들어진 신>이나 <세계문학전집>같은 듣기만 해도 뭔가 무거워 보이는 책을 집으시는 경우도 많다. 사실 넛지살롱은 책을 '많이' 있는 것보다도 '깊이 '읽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이라서 몇 번 저 책을 집었다, 몇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보다도 이 책을 가지고 몇 번 생각했다는 걸 더 주목한다.
권 :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인문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또 요즘 많이 언급되는 '인문학 열풍'에 대한 솔직한 생각 역시 듣고 싶다.
원 : 아무 쉽게 '책'을 가지고 노는 일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에도, 음악에도 인문학적 이야기는 담길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영상이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의 시작도 텍스트이다. 그렇기 떄문에, '책'을 가지고 노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말은 모든 걸 포괄할 수 있다. 영상, 음악, 책이 갖는 차이는 바로 '거리'라고 생각한다. 영상은 화려하고 현란하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주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전에 나를 끌고가 버린다. 그에 반해 텍스트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고. 적당한 거리에서 텍스트를 곱씹으며 나와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원작에 비해서 영화가 재미없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 읽으며 상상하고 내가 생각하던 영역을 영상에서는 모두 제거한다.
인문학 열풍.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인문학의 위기는 제도권의 교수님들이 제일 먼저 들고나온 문구다. 학교 안에서 무언가를 연구하고 전공한 사람들, 아주 특별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인문학'은 어쩌면 위기다. 그런데 한편 열풍을 타고 있는 '인문학'은 다르다. 누구나 그저 책을 가지고 놀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이다. 고루한 '철학사'를 모르고도 '철학'을 논할 수 있고 그런 거니까. 트렌디한 인문학은 두팔 벌려 환영한다.
같은 듯 다른, '우리'의 인문학
철학 아카데미에 이어 두번째로 찾은 공간인 넛지살롱은 앞서 들었던 이야기와는 또 사뭇 다른 분위기, 또 사뭇 다른 시각, 또 사뭇 다른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탐방이 깊어질수록 '무엇'을 위한 인문학이 되어야할 지, '누구'를 위한 인문학이 되어야할 지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다. 닮은 듯 확연히 다른 두 공간을 마주하며 과연 '인문학'이란 그리고 그 역할이란 무엇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WRITER 박창현
PHOTOGRAPHER 김다진, 박창현
INTERVIEWER 권은진, 손성호, 박창현, 범유경, 김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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