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4 SEEKER:S Story/*생각공방

[액션프로젝트 #3] 인문학 공동체 에피쿠로스가 만든 특별한 모임공간 / 생각공방


인문학 공동체, 에피쿠로스


넛지 살롱을 뒤로하고 버스를 30분 가량 타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은평구 연신내에 위치한 인문학공간 '에피'이다. 연신내역 주변 메가박스가 있는 건물 9층으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이 공간으로 연결되는데, 이곳은 협동조합 인문학 공동체인 '에피쿠로스'에서 인문학 강의 및 모임공간을 소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에피를 담당하고 계시는 이용태 대표님이 미리 우리 쪽 연락을 받고 우리가 도착하니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인터뷰를 위해 머리도 다듬고 나오셨다고 한다. 



진: 이런 인문학 공간이 있었더라면 일찍이 알았을 텐데, 최근에 와서야 에피쿠로스와 에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이런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는가? 


태: 우선, 이곳 에피는 올해(14년) 3월에 열어서 오픈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보면 꽤나 빨리 우리를 찾은 것이라고 본다. 원래는 7명쯤 모여서 인문학 서원 에피쿠로스를 만들어 이곳 저곳에서 공간을 빌려서 인문학 강의와 공부를 하다가, 같이 인문학 공부를 하던 분들 중 한 분이 '한번 이렇게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우리만의 자리를 운영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이 공간을 내주게 되었고, 에피쿠로스에서는 이 공간을 '에피쿠로스'의 앞 자 '에피'를 따서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자리와 더불어 소규모로 모임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갑작스럽게 이 공간을 맡게 된 점도 있어서 점차 운영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개설한 강좌들에 수강생은 거의 없는 편이고,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강좌부터 시작해서 수강생이 좀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토론 그룹을 오픈해서 강좌에 넣어놓았는데, 최근 박범신의 소설 <소검>을 오픈했을 때 주민분들도 오셔서 10분 정도 함께 토론을 하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인문학 활동과 별개로 외부에 대여해주고 있다.


손: 에피쿠로스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 공간을 비롯해서 대표님이 속한 모임을 이 철학자의 이름을 딴 이유가 있는가? 인문학 서원 에피쿠로스에 대해 소개해줄 수 있는가?


태: 고대 그리스에서 스토아 철학이 한 시대의 주류를 맡았는데, 에피쿠로스 학파는 소수성을 가지고 있던 철학이다. '헤돈(hedone)' 철학'이라고도 하는데, 이 철학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와 관련된 쾌락(hedone)이나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이 때 쾌락(hedone)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쾌락주의나 향락주의가 아니라 큰 즐거움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문학, 사학, 철학, 예술을 포함한 어떠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도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말하는 이 쾌락, 큰 즐거움을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우리 모임을 '에피쿠로스'로 명명했다. 


에피쿠로스는 주식회사 형태로 되어 있으며, 원래 7명의 인문학도들이 모여 공부를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한 명씩 합류를 하게 되서 이제는 20이 같이 한 달에 2~3번씩 같이 공부하고, 인문학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활동 중에는 푸코가 이야기한 시대적 무의식에 대하여 공부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라는 인문학 그룹도 있고, 세미나도 하고 토론도 하는 왈책이라는 모임도 있다. 


현: 대표님의 경우 이런 인문학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태: 나는 문학을 전공한 경북대학교 84학번이다. 당시 시인 김춘수가 경북대가 있다고 해서 그 분과 문학을 해보고 싶어 그곳에 지원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입학한 해에 영남대로 옮기셨다고 했다. 어찌됬건 대학을 가서 문학 비평을 하게 되고, 우리 사회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많이 갖게 되었다.  인문학이라는 게, 사람(人)의 흔적(文, 무늬), 즉 인간이 살아온 흔적을 여러 경로(보통 책)을 통해 공부하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면적인 갈등을 찾아 미래에 다음 세대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거라고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렇게 인문학을 계속 공부하다가 보니 참가하게 된 인문학 강좌나 모임 등에서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고졸자, 백화점 화장품 판매원, 대학생, 학원 강사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의문점이 생긴다는 점에 공감하게 되었고, 같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진: 그렇다면 이 공간 '에피'에서 주로 초점을 두고 있는 인문학 분야는 어떤 것이 있는가?


태: 우리가 강좌나 토론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시장 경제 중심의 사회 체제에 대한 문제 의식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큰 즐거움'을 저해하는 요소가 시장 경제 중심의 사회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 경제에서 조금 벗어난 시각에서 ~주의, ~~을 떠나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볼수 있는 여러 인문학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또한 소모임 공간을 우리의 인문학 공부와 별도로 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종교적, 기업 관련 목적을 가지는 모임에는 공간을 대여해주지 않고 있다. 


다만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것이 '쉽다, 어렵다'가 아니며 오히려 그 쪽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내용이 왜곡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공부할 때엔 있는 것을 그대로 다루고, 배우는 것을 그대로 '나누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분야에 있어서도 문학, 사학, 철학, 예술 중 다루지 않는 게 없고, 통상적으로 어렵다고 알려진 내용이나 쉽다고 알려진 내용 가리지 않고 강의와 토론을 열고 있다.



현: 에피 말고도 이전부터 '인문학 열풍' 때문인지 인문학 공간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 바가 있는가?


태: 일단 인문학 열풍이라는 것에 대해 확실히 집고 갈 점이 있다. 인문학 열풍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의 2/3은 인문학이라기보다 경제학 도서 또는 자기계발서가 많고 근대적인 인문학 사유를 하는 유사 인문학 서적도 많아 엄밀히 말해 인문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책읽는 서울" 프로젝트 10년차 주제가 '인문'으로 정해지고 이와 관련된 서적이 10권이 선정되었는데, 이중 5권은 인문학 서적으로 보기 어렵고 일부는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인문학적 사고에 반하는 주입식 사고로 글을 써내려간 책도 있다. 칸트/헤겔의 관념론이 전쟁을 만들고, 일제 강점기에도 주입식 사고가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유발한 것을 감안하면, 지금처럼 비인문학이 섞인 '인문학 열풍'은 없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문학 열풍 때문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이 곳 에피 뿐만 아니라 인문학 공간이 많아지는 것은 좋다고 본다. 인문학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다양한 인문학적 사고를 하게 되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고, 여러 가치를 우리의 삶에 가져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공간을 운영하는 데에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너무 돈이나 이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슬기롭게 빠져나와 공간을 운영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인문학을 닮은 여러 공간들


철학 아카데미, 넛지 공간을 거쳐 에피까지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모두가 공감한 점은, 인문학 그 자체에서 무구한 다양성을 보이는 것처럼 세 곳 모두 인문학 공간이지만 운영자의 철학과 그것이 담인 공간의 운영방식 등이 생각보다 무척 서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귀가길에 각 공간에 담긴 서로 다른 철학을 서로 비교해보면서 인문학에 대한 고찰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WRITER 박창현

PHOTOGRAPHER 범유경, 김다진

INTERVIEWER 권은진, 손성호, 박창현, 범유경, 김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