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 8월 3일. 나는 생산자다. (수연)
오늘은 잠을 푹잔 덕분에(아니면 이슬람국가니까 알라신한테 잘 지낼수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 덕분에?)
가벼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어제 커피포트로 끓여먹은 라면 덕분일 수도 있겠다.
그동안 컨디션 난조로 팀활동임에도 100% 힘을 다 쏟지 못한 미안함을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직접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얻는 스트레스를 앞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 보면 도와주라고
미리 경험하는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 놓아버리고 씩씩하게 지내자, 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드디어 TS 첫 생산자를 만났다! (8 / 2)
그녀의 이름은 RUPO(루포). 나이는 49살이고 천을 만들기 전에 실을 베틀에 셋팅하는 드럼잉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천 패턴에 따라 실이 얼만큼 어떤 모양으로 들어가야할지 계산해야되는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베테랑만 가능한 일이었다.
루포는 일한지 26년이나 되었다.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라 새벽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하고 집에 간다.
정말 라마단 기간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도 한모금 안마시고 일하는 시간까지 바뀐다. 종교에 대한 깊은
믿음이 멋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한창 더울때 얼마나 힘들까, 그리고 이슬람국가의 생산성에도 영향을 끼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함께한 라마단 저녁식사)
루포는 남편이랑은 27년 전에 이혼하고 딸 셋을 키웠다고 한다. 딸 두명은 결혼하고 한명은 그라민 뱅크에
다녀서 좋다고했다. 여기서도 돈만지는 직업은 엄마들에게 자랑할 일인가보다.
타나파라 마을 자랑을 해달라고 했더니 여기서 태어났고 사람들이 안싸우고 좋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죽고싶다는
무시무시하지만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말도 담담하게 했다. TS에서 일하는건 하나도 불만이 없다고 했다. 무뚝뚝해보이지만
가끔 보이는 미소에 정이 마구마구 보이는 루포.
루포에게 한국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간
팔찌와 편지, 아이들 사진도 전달했다.
갑자기 또 어린이집을 생각하니까 눈물이난다. 흑흑.
도매시장에서 팔찌재료를 사서 남한산성근처에 있는
아동복지센터에 가서 무지무지 말안듣는
한창 미울나이; 때의 아이들과 씨름하며 팔찌를 만들고 준비해간 PPT로 공정무역에 대해 알려줬다
. "얘들아 너네가 만든 팔찌를 선생님이 A팀은 사탕한개주고 B팀은 세개줬지~ 그럼 공평해 불공평해?"
아가들은 말을 무지무지 안들었지만 고사리손으로
폐지를 모은 돈을 우리에게 10원단위까지 몽땅 다 전달해줬고 덕분에 우리는 방글라데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전달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루포의 집에 방문해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간식을 먹었다. 내 입에 딱 맞는
달콤하고 쫄깃쫄깃한 찹살떡과(방글라데시 음식은 밀가루+설탕+기름에 튀김의 조합이 많다) 통통한 바나나까지
한국음식마냥 흡수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기전에 해보기 LIST에 작성했던 '가족사진 찍어주기'도 우기쌤이 찍어주셨다.
나는 생산자다! (8 / 3)
우리는 어제 루포가 일할때 방해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돗자리 위에 앉아서 미리 얻은 자투리천과 실로 주머니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시연이와 나의 아티잔(장인) 역사가 시작되었다....두둥!!! 비록 시작은 미약했을지 몰라도..?
우리는 새벽까지, 정전되면 촛불을 켜놓고! 시연이는 자수 놓은 필통을 10개 가까이 만들어내는 필통장인이 되었고
나는 삐뚤삐뚤 바느질에서 시연이한테 배워서 여권지갑같은 요상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만들어 보니 느꼈다. 생산자,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공정무역을 해야하는 이유를 거창하진 않아도 찾은 듯 했다.
만드는 건 너무너무 어렵다. 심지어 옷도아니고 필통(옷만들려고 본까지 떳다가 5분만에 포기했다)인데!
그러니까 우리는 생산자에게 정당한 보수를 줄 수있도록 공정무역을 해야한다. (청년 세계에서 답을 찾다!?)
오늘도 역시 생산자 밀착 체험을 했다.
사하라 바누(55세)는 타나파라스왈로우즈 핸드크레프트 프로그램의 초창기 멤버이다.
딸 1명 아들 1명이 있고 딸은 대학을 졸업했고 아들은 도시에서 제약회사를 다닌다고 했다.
무려 38년동안 일했는데 처음엔 주트백을 만들고 자수를 놓는 일을 했고 부엌에서도 일하다가 지금의 재봉틀 일을
하게 됐다. 3개월의 훈련과정을 거쳐 일하게 됐든데 자수 놓는 일은 임금도 낮고 힘든 반면 지금의 일은 만족한다고 했다.
1973년에 TS가 처음 시작했을때는 흙, 대나무로 만든 Office였고 점차 발전했다. 특히 2009년에 프랑스 NGO인
엠마우스에서 큰 기부가 있은 후 핸드크레프트 작업장 등이 크게 발전했다고 한다. 바누는 그야말로 TS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녀는 공정무역이 무엇일까요? 라고 묻는 질문에 수줍게 '공정무역은 공정한 사업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가 생산자들에게 공정무역을 질문하면 다들 교육받은 '공정무역 10대 기본원칙'같은 것들을 많이
잊어버렸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탐방 전 생각했던 것 만큼 공정무역 생산자들이 공정무역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있거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 공정무역 생산지에서 일하고 있는
생산자들은 일하는 것에 만족했고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간 몸빼를 입고 열심히 세계에서 길을 찾는 중이다~ 으쌰으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