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 일찍 나와 다케하라 역까지 가는 전차시간표를 확인하니, 아직 출발하기 20분 전. 표를 사고 잠시 역 바깥을 보는데 천막이 몇 개 세워져있다. 아침에 공연이라도 하는걸까? 하며 고개를 내미니 広島와 島根 두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広島根.
‘섬’자가 들어간 히로시마와 시마네의 교류시장이 열리는 것이었다. 시장은 10시부터 시작이었고 지금은 9시. 보고 싶지만 앞으로 2시간이상 걸리는 다케하라에 가야하기에 아쉬운 사진 한 장만 남기고 우리는 차를 타러 이동했다.
도착하니 거의 12시. 어라? 역 바로 앞으로 긴 상점가 거리 같은 게 보인다. 아침을 거른 우리는 우선 그 길로 걸어보기로 하였다. 다케하라를 알리는 낡은 표지판에서부터 느꼈지만 상점은 거의 문을 닫았고 꽤 그 상태가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레져용품 이라거나 샌들류가 먼지 낀 창문안으로 보이는 것을 보아하니 (미리 이 곳 조사를 못한 우리라 놀란 것이겠지만) 아, 여긴 관광지로구나 했다. 한 때는 흥했겠지만 한창인 여름이 조용해져버린 관광지, 밤의 풍경은 또 다를 수 있겠으나 우리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도착했다고 연락을 어떻게 하지 살피다가, 지나다 본 공중전화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고 심호흡을 시작했다.
말이 익숙하지 않은데 전화라니, 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라니, 심호흡은 우리에겐 필수가 되어버렸다.
지금쯤은 우프의 호스트가 점심을 먹은 시간이겠지? 걸어도 되겠지? 하는 소심한 생각을 하다가 다이얼을 돌린다.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약하게 들리고 전화를 끊은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짐이 많냐고 물어서 별로 무겁지 않다고 했어. 그랬더니 걸어서 오래. 안내소가 근처에 있으니 물으면 지도를 줄 거래. 2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래.’
그래도 혹시나 기대를 했었지만.... 그래, 숙소를 찾는데 걸어서 15분은 기본이 된 우리이기에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은 아, 이곳은 이런 분위기의 곳이구나 하는 것은 차를 타고 슝 가면 알지 못하고 걸어서 가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분 후 땀을 닦으며, 온갖 화초가 가게의 3면을 둘러싸고 있는 ‘nakazawa' 의 문으로 들어갔다.
이 곳은 작은 가게로, 유기농의 재료를 사용한 국수면, 과자, 두부, 지역의 술 등 자연식품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를 맞이한 주인은 자그마한 몸집의 아주머니였다. 뭔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방을 안내해주러 2층으로 인도해주었다. 좁고 높은 계단을 지나고 방문을 여니 작지만 열어놓은 창문으로부터 걸어올 때 바깥에서는 전혀 찾지 못했던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짐만 내려놓고 얼른 밑으로 내려가니 부엌에서 뭔가를 손질하시더니 우리에게 앉아있으라 했다. 곧이어 아주머니도 앉으셨고 우리는 우퍼허가서를 보여주었고 아주머니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게의 손님이 찾아올 시간이라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에 우리는 일손을 돕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전화를 드렸을 때 ‘사케 (술)’이라는 말을 듣고 우린 겁이 났었다. 처음 찾을 때 분명 정보란에 사케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밤에 일을 해야 하겠구나 싶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9시, 방에 앉아있다. (나중에 청소를 하며 사케의 진실을 알아냈다. 사케가 있는 것은 맞았다. 다만 그게 지역 술을 의미하고 있었고 관광객이나 동네사람들이 이곳에 와 사케를 사 간다.)
주고받은 메일에서의 문체, 마중을 나와 주신다는 답장과 달리 미리 없었던 약속처럼 대하듯 차갑게 걸어오라고 하셨을 때, 사케란 단어에, 험난한 사람과의 만남이구나 싶었다. 헌데 저녁밥을 먹으면서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주한다는 것이 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미밥, 된장국, 피망, 오이무침.. 한 접시에 작은 요리들이 모두 놓인 소박한 밥상. 우리는 셋이 앉으면 무릎이 서로 닿을 작은 탁자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저녁을 먹었다. 어색했지만 저녁식사는 기분이 푸근했다. 다양한 우퍼들이 이곳을 찾아 일손을 돕고 체험을 하고 돌아갔다고 하셨지만 오후에 손님이 오면 겨우 먹던 식사를 내려놓고 가게로 뛰어가던 아주머니를 보며 혼자서 먹을 때는 어떠했을까를 떠올리다 말았다.
내게 혼자서 먹는 밥은.. 밥이었다. 챙겨먹는 다는 것이 귀찮고 불편해 내 몸이 필요하다고 하는데도 듣지 않는 척을 했었다. 그 덕에 한참 몸이 약해졌었다가 방학에 집에 내려갔을 때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이미 부엌에 계셨다. 도착시간도 숨기고 짠! 도착한 딸 덕에 준비도 못했다며 투덜거리듯 말하는 엄마의 식탁은 간소했지만 나에게는 달랐었다. 이때 나에게 먹는 밥은..정의를 정확히 못하겠지만 배가 고파서 먹는 밥은 아니었다.
어색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려운 호스트와의 저녁식사.
우리는 작은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아빠다리를 하며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2011 Globalwork Story > 홍자매(농가연계먹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8.4~8.11 다케하라 우프- 밭일이 시작되었다. (0) | 2011.11.15 |
---|---|
07.28~08.03 WWOOF 가가와현 아이가와쵸 02 [은영] (0) | 2011.10.29 |
07.28~08.03 WWOOF 가가와현 아이가와쵸 01 [은영] (0) | 2011.10.29 |
7.27 스카이팜, 그 곳엔 대신 땅과 검은 땀이 있었다.[은정] (0) | 2011.10.04 |
7.26 NPO 시코쿠 스위츠 88 [은영] (0) | 201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