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4 SEEKER:S Story/*더넥스트

[액션프로젝트]새로운 세대와 살아있는 민주주의(인디고서원 이윤영편집장 오픈스터디)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 이후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금 공부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의 변화와 희망이 절실한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인디고 서원의 이윤영 편집장과 스무명 가량의 청년들과 함께 세 시간정도 진행된  오픈스터디는 앞으로의 민주주의와, 미래의 시민의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 출처 : http://www.indigoground.net/ )


인디고 서원은 부산 수영고에 위치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다. 10주년이 넘게 청소년들이 책을 읽으며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는 인문주의 실천의 장을 이어가고 있다. [인디고잉] 또한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발간하는 잡지로, 이들이 읽고 공부한 책과 사회적인 사안에 대한 청소년들의 의견과 생각이 담긴 잡지이다.


“이번 잡지에 나온 제목이 ‘하얗게 웃는 대한민국 청소년’ 이었습니다. 하얗게 웃는다와 대조 되는 사태가 일어나 버렸죠. 우리는 성적 1등에 웃고 우는 청소년들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옳은 정의로운 것들에 웃을 수 있는 청소년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 호를 내었으나 그런  염원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더욱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아래는 이윤영 편집장이 새로운 세대와 살아있는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약 스무 명의 청년, 시민들과 함께한 시간들의 기록이다. 그는 강의가 아닌 그가 직접 만났던, 지혜로운 스승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인문학 정신 세 가지: 예술적 감성, 비판적 지성, 도덕적 품성


(프랑스, 영국, 미국, 한국의 중산층 기준)


이윤영 편집장: 아마 보신 분들도 많이 계실 텐데요. 중산층의 기준으로 신문에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 인데요, 중산층의 기준입니다. (영국 중산층의 기준으로) 저희 인디고잉이 여러분의 집 식탁에 있으면 여러분도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것이죠.(웃음)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과 우리나라와 중산층의 기준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공통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한국의 중산층의 기준은 내가 소유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의  중산층 기준은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굉장히 다른 차이죠. 이 차이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인터뷰하고 만나 뵈었던 분들 중에 오늘 여러 분들을 소개해 드릴텐데요, 그 중에 가장 첫 번째로 소개시켜드릴 분이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영국의 사회학자입니다. 이 사회학자가 소비주의 사회로서 비판 하고 계신데, 액체성의 사회로서 비판. 이 분이 현대사회를 평가하기를 공위의 시대라고 표현 합니다. 이 공위의 시대는 달리말하면, 공백의 시대인데요. 이 공백의 시대는 정치과 권력이 분리된 사회입니다. 정치라고 함은 우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권력은 이를 실제로 이행하는 능력입니다. 어떻게 분리가 되는지 확실하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가 어떠해야 한다.  혹은 어떻게 가야 한다, 라는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정치적 사유를 하지 않습니다. 이 분리가 우리 사회에 굉장한 피해와 폐해를 가져오고 있고, 그 단적인 예가 세월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우리나라 정치학자 박경리 선생님께서는 공준(공통된 기준)이 없는 사회라고도 표현을 하시는데요. 공준은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정도는 지켜야 된다라고 하는 공통된 기준을 말합니다. 공적인 것에 목소리를 낼 줄 알고, 공적인 것에 기준이 있어서  참여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이 분리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나라 만의 현상 만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와 권력의 공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탄생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말할 수 없는 자들이 말하지 않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퇴보했다, 또는 민주주의가 시작되지 못했다 라고 말하는 대부분  말할 수 없는 자들이 많은 것을 주목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말할 수 없는 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지 않습니까?  용산참사로 피해를 보신 분들도 그렇고요. 지금까지도 투쟁하고 계시는 강정마을 분들이나, 밀양 송전탑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분들은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통 되지 않고 단절 되어있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이죠. 세월호에서도 공교롭게도 희생 당한 모든 자들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청소년들이었죠.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대다수가  말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번에 청소년들이 교육감 후보를  뽑는 데에는 16세까지 선거권을 낮추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선거 교육의 삼주체라고 한다면 부모, 선생님, 학생이어야 하는데   학생들만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없습니다.


밀양에 노인 분들이 우리 눈에 굉장히 약자처럼 보이지만 우리 집 앞에 송전탑이 생긴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얼마 만큼의 힘을 가지고 계십니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 순간 우리 또한 말할 수 없는 자들이 되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그만큼 정치인들이, 혹은 정부가 국민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이고요. 국민들을 얼마든지 언제든지 ‘말할 수 없는 자’ 들로 만들 수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말할 수 없는 자들이 많을 뿐 아니라,  말하지 않는 자들이 많아질 때 민주주의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늘 핵심은 이것입니다. 어느 사회든지 소외 당하고 약자는 어느 사회에나 있습니다. 스웨덴 같은 유럽의 복지국가에도 언제나 소외된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들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잘 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데요. 왜 그러하냐면 우리는 어릴 때 사회 시간에 민주주의에 대해서 배울 때 보통 다수결의 원칙이라던가 이런 것들로 기억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투표도 그러한 과정 중에 하나이고요. 우리는 항상 민주주의의 목표점을 합의에 두는 것이죠.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목소리를 담기 위한 체제와 제도로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많은 정치 학자들이나 아니면  철학자들은 민주주의를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요. 민주주의는 첫 모임에서는 합의를 위해 모였으나, 끊임없이 갈등하고 논의가 계속 되며 결국에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그 곳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갈등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되는데, 결국에 그것 때문에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제도임에는 분명하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순간 민주주의는 종말 하는 겁니다.

말할 수 있는 자가 확장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우리 사회가 많은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울에서는 말입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희망과 가능성은 굉장하거든요. 말할 수 있는 사회. 물론 그것이 언론 보도가 되지 않고,  여러가지 통로가 막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놓치지 않고 반드시 이끌어야 하고 지속 시켜야 하는 민주주의의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답을 찾기 전에,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질문부터 해야한다


이 분은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철학자 입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로는 진정한 사유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이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방금 말씀드렸던 민주주의가 완벽한 해결책을 내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적합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우리가 정말 답답했던 것은 세월호 이후 나온 여러가지 해결책들이 합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러하냐면 제대로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것이 왜  문제인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질문을 제대로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권력을 쥔 자들이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정부나 정치인들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사유가 안 되는 겁니다. 무엇이 잘 못 되었고,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무엇이 정당한 사과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결단력이 나오지 않는 것이겠죠?


좋은시민이 되기 위한 15가지 덕목.jpg


프랑스의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 라는 아동 그림책에는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한 15가지 덕목이 나옵니다. 이 15가지가 프랑스 “아동”들이 배우는 시민이 되기 위한 15가지 방법입니다. 이것들을 외워서 시험보지 않습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하지만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하는 질문들인 것이죠.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또는 자유와 책임과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들이 이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예시를 한번 들어보죠.



위 사진으로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고르고 싶고 마음이 풍족하고 어지럽고 어마어마하죠? 홍대에 왔을 때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인데, 이 수많은 옷들이 과연 다 팔릴까? 저 상점의 주인은 과연 팔릴 것이라고 가져온 것일까? 입니다. 이 물건들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부산에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있습니다.  모두 부산 시민들이 소화하는 물건들인 것일까? 미국에서 매년 폐기되는 음식물의 양은 소리내어 읽기도 어려운 숫자 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먹고 남은 숫자도 아니고요. 포장지도 채 뜯기지 않은 채 버려진 음식물의 숫자입니다. 그와 아주 상반되게 지구 반대편에는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가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고요.  매일 죽어가는 아이들이 2만 4천명 입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이죠.


프란시스 무어라페라는 미국의 식량 연구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이 분께서 질문을 던집니다.  

“매해 식량은 넘쳐나는데, 왜 지구의 절반은 굶어죽는가?” 굉장히 당연한 질문 같죠? 이 질문을 만들어 내기까지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는 역사를 한번 뒤집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을 최초로 던진 사람이 프란시스 무어라페입니다. 여러분 맬서스 곡선 기억나시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식량 부족으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 때문에 더 많은 식량을 만들어 내고 더 많은 생산량을 착취하는 해결 방안을 내었던 것이죠? 아까 보았던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 에서 질문하고 선택하는 것에서,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질문이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이것에는 사유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저런 사람들을 보고 나서 마트에서 버려지는 물건들이 떠올라야 되는 것이죠. 그런 사유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시민이 되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민주주의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가?


(0:25초~1:07초 프란시스 무어라페 인터뷰)


방금 아마 영상에서 보셨겠지만 프란시스 무어라페가 쓴 책< 살아있는 민주주의> 있는데요.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가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희망은 동사’다라고 하듯 우리는 희망이라고 하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의 어떤 상태를 꿈꾸잖아요. 그것 때문에 사람이 더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만났던 많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미래에 비전을 갖고 있으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굉장히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가지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민주주의’ 라고 하는 것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제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서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지금 무엇을 지키고 따라야 하는 덕목처럼 느끼는 것이죠.  

<살아있는 민주주의>에 나오는 문구 중에 하나 인데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늘 우리는 사회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회를 변화 시킬 것인가 말 것이냐에 대하여 고민을 하잖아요. 실제로 이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변화를 시킬 것 인가에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와 권력의 분리’에서의 권력과 조금 다른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권력을 가진 사람인가 . 부산 시민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권력을 서울 시민들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울 시민으로서 무엇을 할  것 인가가 떠오르겠죠? 제가 서울을 싫어하면서도 느낀 것은 서울에서 주어지는 기회가 많다는 것 입니다. 부산만 해도 그런 면에서 열악합니다.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모든 기회들, 심지어 시위에 참여하는 것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산 학생들은 그러한 기회에서 박탈 당해 있습니다. 서울에 살기 때문에, 올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력을 지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권력을 지각하게 되면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해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나는 무언가 할 수 없는 소 시민이고, 나는 개인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자신의 권력은 지고 싶지 않은 굉장히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그러면 ‘나는 세상의 변화에 참여하지 않을래.’ 라고 하면서 좋지 않은 영향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라 설명을  합니다.

저희가 만났던 많은 분들이 창조적이고 소수의 헌신적인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세계를 바꾸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입니다. 소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간디의 소금 행렬, 보신 적 있으시죠. 우리는 간디라는 위대한 인물 하나만 기억하지만  실제로  간디의 소금 행렬이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비폭력 운동으로서 성공적인 사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를 따르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간디를 만나고자, 혹은 간디를 따르고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향에 대해서  고민했던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간디가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 인디고 서원의 인디고 유스 북페어라는 행사 입니다. 인디고는 저희 이름이고, 유스는 젊은 정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출판사들이 책을 팔기 위한 북페어가 아니라, 책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공유, 공론의 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새로운 형태의 인디고 유스 북페어를  2008년 부터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저희가 돌면서 실제  그런 가치들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고 초대하는 행사가 인디고 유스 북페어 입니다. 저명한 학자들도 많이 만났고 동시에 청소년, 청년 활동가들도 만났습니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들을 다리 잇는 것, 또는 이론과 실천을 다리 잇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만나 뵈었던 분들에 가장 좋았던 분들을 콘서트 세미나 포럼 등 다양한 행사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인디고 북 페어의 참여 조건은 돈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에 반드시 책 세권을 읽고 기획서를 작성해야만 참여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초청되어서 연단에 선 사람, 혹은 포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여기에도 그와 동등한 시각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관람이 아니라 참여로 요청 드렸었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자유: ‘좋아요’가 아닌 진정한 친절함(Kindness)으로의 연대

다음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은 분은 하워드 진이라는 미국의 역사 학자입니다. <미국 민중사> 를 쓰신 위대한 학자이십니다. 이분은 늘 거리에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분이고,   소박한 분 이셨습니다. 저희가 만나 뵈었을 때가 돌아가시기 1년 전 2009년 이었고 86세 이셨어요. 영상을 보실 때는 그 분의 말투, 몸짓, 표정들에 주목해 주면 좋겠습니다.



(1:56초~2:40초 하워드 진 인터뷰 : 청년으로서 이 시대를 산다는 것)


이 분에게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대답해 주신 답은 kindness, 친절함 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실천하셨던 분이기에 큰 울림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가 이상을 좇고, 끊임없이 민주주의 시민의 덕목을 새겨야 하는 가, 희망을 가져야 하는 가는 분명한 것이죠. 작년에 돌아가신 넬슨 만델라가 17년의 감옥에 있는 동안 일깨워준 시 한 구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는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굴복하지 않는 영혼> 시의 한 구절인데요.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영혼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이야기 했던 민주 시민의 덕목 세 가지  예술적 감성, 비판적 지성, 도덕적 품성을 가지는 것이 왜 중요시 될 수 있는가는 분명한 것이죠. 민주시민이 된다는 건 그런 가치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자 쟈크 데리다는 ‘책임’의 단어를 아주 재미있게 설명하였습니다. 책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보세요. 아주 어렵습니다. 이 철학자는 응답-respondability라고 설명 하였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물음 혹은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응답하냐 의 문제인 것입니다. 응답을 잘 못하면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이고요.  

이번 세월호 사건을 언급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책임질 자유조차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 이죠.



그렇다면 응답하는 능력을 어떻게 기를 것이냐고 하는 것에서, 우리는 이러한 그림을 보고  “좋아요”를 수없이 누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도 하세요. “좋아요”때문에 이 아이들이 더 죽어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도덕적 책임감, 부채 의식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 못 되고 부조리한 것에는 부채를 가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런 식으로 해소해 버리는 것이죠. 마트에서 유기농 식품 사는 것으로 해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스타 벅스에서 공정 무역 커피 하나 삼으로서 해소해버리는 겁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나는 무엇인가 했다.’의 착각 속에 빠집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혁명에 기운에 취해있는 사람들이 혁명의 축제를 싸구려로 만든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좋아요”는 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 합니다. 공감은 할 수 있죠. 그러나 공감 뒤에 무엇을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의 물음은 아직 남아 있는 겁니다.


지금 인디고 서원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탄생해야 한다”는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단순히 기성세대와 다른 세대라기보다는 “새로운 윤리적 세대”입니다. 윤리적 세대라고 한다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들어오셔서, “침 뱉지 마세요”라는 요구를 받지 않죠? 기본적인 윤리의 수준인 겁니다.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아는 것이죠. 우리나라만큼 안내 방송이 많은 지하철이 없습니다. 윤리 의식이 그만큼 낮은 겁니다. 나에게 윤리적 기준이 낮다고 무시하는 사회에 길들여져 있는 것 입니다. 윤리적 수준이 훨씬 올라가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그 다음을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어쩔 수 없다고 얘기 해 왔던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경쟁을 해야만 한다, 좋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불문율을 깨뜨려야 합니다. 저희가 만났던 수 많은 청년들 뿐만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삶은 살면서도 우리보다 더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절대로 불가능 한 것이 아니라, 관념이나 생각 하나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사례들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학생들이 있습니다. 스튜던츠 포 오바마라는 버락 오바마가 처음 대선에 나왔을 때 결정된 조직체인데요. 청소년 단체입니다. 그들은 선거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만들고자 노력하였을까. 오바마가 내걸었던 가치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은 진보와 보수를 모릅니다.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가 하원의원일 때 한 대학교에서 이런 강연을 했다고 해요. “미국이 선진국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더 풍요롭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강력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 노동자, 여성,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는 저런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서 주변 어른들에게 설득하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세월호의 사건은 우리나라 만의 문제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시대가 만들어낸 사건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이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될 문제입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 인가를 궁리  하는 것도 우리 세대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 하는 문제가 남겨져 있는 것 같은데요. 인디고 서원이 가장 주력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정세청세라는 청소년 토론 프로그램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라는 이름의 행사 입니다. 2007년에 처음 시작한 이 행사는  아주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학교에서 자유와 꿈과 희망에 대해서 친구와 이야기하지 못할까? 학창 시절 그런 이야기를 친구와 하신 적 있으십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열망은 모두 가지고 있지만 우리 학교의 공간은 허락하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 이야기, 가십 거리가 우위에 있는 이유는 정치를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겁니다. 제 생각이지만, 유재석이라는 사람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적 발언을 한다면, 그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저는 부정적으로 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직도 청소년들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패배할 수 도 있지만 끊임없이 말하고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 움직임이 지속되어야만 변화가 있고, 말하는 것을 중단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해 진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60~70년대 학생 운동하던 세대들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세대가 된 이유에 대해서도 동일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지더라도 말해야 하고, 그게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 자가 되기 위한 장이 바로 정체청세라는 장입니다. 이 행사는  20세 이상부터는 참여가 불가능 합니다. 참관도 안 됩니다. 기획 진행 모든 것을 청소년들이 맡아서 하는데, 탁상공론이 싫다며 오지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정의로운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는 경험을 한 친구들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현재 국내 20개 도시에서 진행되고있고, 만주에서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만주의 땅에서 버려진 아이들 또한 우리 아이들과 같은, 영혼의 빈곤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라 ‘의미없음’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의미없음'.jpg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그문트 바우만 학자가 해주신 말씀입니다. 행복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불행이죠. 하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행복을 조장하는 것들이 대부분 쇼핑입니다. 여가 시간에는 늘 돈을 쓰게 되죠. 불행해 지지 않기 위해 행복을 좇다 보면 그 기준이 남에게 가게 됩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의미없음 이라고 하는 겁니다. 의미 없는 삶이 나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의미가 있음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 인가. 혹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것 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답을 만들었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학생 운동을 했던 분들에게 질문을 해보면 학생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특별히 헌신적이고 위대 했다기 보다는 그 때는 그게 트랜드였고,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하십니다. 단순히 유행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 때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권력을 쥐고 놔주지 않으려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람들이 변질 한 게 아니라 유행에 따라서 그대로 살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진짜 의미 있는 것은 무엇 일까?  질문하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도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짜 의미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혹은 서로 소통한다면, 우리에게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 가능해 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꼭 전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어느 학자는 의식있게, 고귀하게, 정의롭게 살지 않는 한, 기쁜 삶을 누릴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가치관을 공유해야 새로운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호 이후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 시민으로서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민주주의 도래는 끝끝내 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가 정의를 추구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언젠가 우리에게 힘을 줄 때가 우리가 투쟁했던 결과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부 이야기 나누는 시간:


Q1.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6월 항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6월 항쟁이 민중의 승리였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국민들의 합의로 인해 전두환이 된 것 같은 역설적인 느낌이 듭니다. 성공했다기보다는 후반부에 가서 실패한, 전쟁으로 치면 처음에 유리하다가 막판에 역전 당하는 형세로 말이죠. 그 원인을 보면 6월 항쟁은 투쟁에 대한 목적은 있었지만 방법이 완전히 중간에서 틀어져 그렇게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런 투쟁에 있어서도 단순히 열정보다는 과정, 방법에 대한 전략이나 가이드가 정말 중요한 것 같은데 이 시대에는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지점이 있어요. 또한 교육에 대한 부분도 단적인 예를 들어 말해보면, 현대자동차에서 나와서 모아 놓은 돈으로 자영업을 하고 계시는 분을 찾아가서 보게 된 모습이 같이 일하는 종업원, 아이들을 정말 쥐꼬리만한 월급을 주며 탄압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과연 저 분이 과거에 민주주의를 외치던 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거에 학생 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가정을 보면 전체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게 그분들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워낙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이런 분들을 종합적으로 케어해 줄 교육의 과정이나 힐링의 과정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속적으로는 어떤 대책이 있을까요?


A1. 참 질문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웃음) 저희 인디고 서원이 보통 가는 주제의 강의를 보면 교육의 삼주체라고 하는 선생님, 학부모 청소년들이 많이 오는데요. 일단 인디고 서원에서는 청소년에 주력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러한 가정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식의 가정들 말이죠. 사회의 모든 것들이 기성세대만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찰과 반성은 필요 하겠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한과 질탄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개척해 나아갈지에 대해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청년 세대로써 생각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질문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겠지만 제가 거기에 부응하는  답변을 제대로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민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방법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인디고 서원에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와 권력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 징검다리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질문과 청년세대가 가지고 있는 질문의 간극을 줄이고 접점을 찾아내야할 것 같아요.  질문하신 분께서는 어렸을 적 그 시대를 기억하신다고 하셨지만, 저희는 그때 아예 없었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기성세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성급하게 방법을 찾는다기보다는 현시대가 요구하고 있는것,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한번 더 생각해보고, 사유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가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질문을 하는 게 더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결과가 뭔데, 더 나아진게 뭔데? 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것. 과거에 방법이 실패했다면 지금의 투쟁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는 것과 이론을 제대로 정리하고 생각하는 사유의 과정을 천천히 밟아가는 인내심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Q2. 저도 청소년 이슈에 관심이 많은데, 사실 처음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제가 청소년이어서 그 관심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고 청소년이 아니게 되면서 아직도 청소년들이 나 같은 사람을 반겨줄까? 하는 고민의 지점에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청년으로써 청소년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갈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풀어나가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A2. 저도 중3때부터 활동을 했습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저는 청소년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청소년들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선배로써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죠. 우리가 청소년일 때 가지고 있던 뜨거운 의문들, 열정들이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나도 지나와 봤거든? 그래서 나도 너희의 아픔을 알아’ 라고 하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진실에 귀를 닫고, 입을 닫게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겪어봐서 다 아니까 격려해주는 식의 ‘고생이 많다’ 라는 식의 다독임은 필요 없어요. 너의 고민이 무엇이니, 그런 고민에 너무 힘들어 하지마, 이런 식의 공감 능력이 더 필요하다. 아이들이 굴복하려는 시점, 대표적으로 중학교 때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점에 굴복하고 맙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꽤나 엄격한 편집장이지만,  중학교 때 꿈과 희망을 안고 같이 살아가던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가서 모든 걸 포기하고 떨어져 나갈 때가 가장 힘들고 슬픕니다. 공부하랴 학원가랴 밤 늦게 글쓰랴 엄마 눈치 보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저도 잘 아는데 ‘그래 수고했어’ 라며 다독여주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저는 대신 그만큼 힘들게 일 하지 마라고 합니다.  절대 밤새지 마라고요. 너희가 버리는 자투리 시간들, 쉬는 시간, 오가며 이동 하는 시간 등등 시간을 성실하게 쓰면 충분히 다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스스로 견디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기를 지내고 겪어봐야 이런 문제들이 닥쳤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할 능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고3 이라는 시간을 지내고 후에는 그때가 가장 좋았었던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왜냐면 잊고 싶기 때문에, 힘들었으니까. 지나고 나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하는 것이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억압을 줘서 부당한 게  아니라 선생님들조차 그런 억압을 줄 수 밖에 없는 그런 사회, 시스템을 볼 수 있는 힘을 청소년에게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Q3. 케이: 살아있는 민주주의, 다음 세대의 민주주의라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고 편집장님이 쓰셨고 다음 세대의 민주주의라고 썼었는데 사실 이 단어가 되게 조심스럽고 경계해야 하는 단어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단어들이 말 그대로 단지 언어, 텍스트로써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실체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그 단어에도 힘이 있을텐데, 그런 점에서 볼 때 과연 우리가 과연 그 세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사실 좀 헷갈리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3. 이윤영 편집장: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성, 기성의 가치들 혹은 현재 우리 기성세대를 지배하는 가치들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지지도 못할 것들을 무모하게 왜 밀고가는가... 사실 원전이 터지면 그건 신도 수습할 수 없거든요. 그간의 과거 사건들(후쿠시마 대지진 등)을 보고도 왜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대담하게(?) 진행하는가. 저는 가치의 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질 수 있을 때, 일을 할 수 있을 때, 국민들의 합의가 있을 때 단원 결의가 되었을 때, 그런 것이 가능한 세대가 왔을 때 저는 그 세대가 새로운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 같은 의미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왜 이렇게 허상의 것에 공포감을 느끼고, 근거 없는 혐오감을 가지는 것이 용납이 안됩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새로운 젊은이 집단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허무주의에 빠져있어요. 대학도 안가고 싶어하고, 좋은집 좋은차 좋은직장을 가지는 것이 쓸모 없다고 생각해요. 다 인생무상이라는 것을 보고 겪었기 때문입니다. 원자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원래 일본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하지 않는데 그때는 달랐습니다. 젊은이들이 ‘우리는 원자로 필요없어.’ 라고 말하는 세대가 된 것입니다. 정부가 ‘그럼 너네 전기 못 써’ 라고 협박을 해도 젊은이들은 ‘나 전기 필요없는데? 전기 없이 좀 살지 뭐’ 라는 주의가 팽배해있습니다. 더 큰 가치 혹은 더 가능해야 하는 것들, 책임질 수 있을 때 그 일들을 말하는 것이 새로운 세대이지 무슨 무력을 행사해서 지금의 정권을 갈아 치우고 하는 형태가 새로운 세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청년들이 정의를 외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절대 정의로워질 수 없고 변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속에서 새로운 세대는 허황된 말도 아니고 거창한 말도 아닌, 책임질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세대들 인 것 입니다.




Q4. 민주주의라고 할 때, 제일 중요한 중 하나가 의사결정의 과정, 소통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 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의견이 정반합이 되고 그 합이 다시 정반합이 되는 과정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정말 멋있고 열심히 하고 있는 분들이 많으신데, 제 주변에는 그런 청년들이 거의 없고 자기가 기성세대가 되어서야 그 때 가서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깨어있는 생각을 던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저 스스로도 주변에 그런 울림을 줄 수 있는 역량이 안됩니다. 페이스북 같은 SNS를 이용해서 좋은 정보를 공유하고 나름 알리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스스로의 삶에 녹아 나는 모습은 없는 것 같아요. 진짜 민주시민으로서 살려면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도 같이 깨워줄 수 있는 소통과 영향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정말 어려운 부분입니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노하우나 방법들 좀 전수해준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4. 제일 중요한건, 나만 깨어있다 라는 생각을 버려야한다는 것 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니 경계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나 소통 방식이 잘못되었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우리 사회가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되면 참 좋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어요. 이해할 부분은 이해하고 동시에 포기하지 않을 부분이랑 타협 하는거죠. 친구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하면 아마 도망갈거에요. 그리고 나 또한 그 친구를 만나기 싫어질꺼고… 저는 연극적 실천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가면을 쓸 필요는 있어요. 그친구가 ‘나중에 생각해볼게’ 라고 할 지언정 그런얘기를 계속 할 수 있는 것,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계속 하는 친구가 주변에 있다는 것 정도라도 지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요. 저의 고민도 제글을 더 어떻게 많이 읽히게 할까 하는 것이거든요. 만약 50명 정도가 독려해준다고 해서 우쭐해지지 않고 더 겸허해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이 만들어낸 흑인들의 인권도, 그냥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닌 듯이요. 저는 학창시절에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열혈 청소년이었어요.  그러고나서 대학교를 갔는데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크고, 생활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대학교 가서 처음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은 학생회를 뽑기 위해 투표를 하는데 투표율이 너무 낮으니 크리스피를 나눠주며 투표하라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너무 충격적이었죠. 이게 뭔지? 내가 변화를 추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럴 때 즈음 하워드 진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은 80년을 그렇게 사셨는데, 수많은 벽과 좌절과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낙관적이셨어요. 좀 무모할 정도로. 문득 들었던 생각이 20년 살면서 내가 해본 게 뭐길래 벌써부터 포기하려고 하였는가. 나의 무기력이 부끄러워졌죠. 이게 얼마나 자기합리화이고 나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라는걸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밌고 참신한 기획들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느끼는 갈등, 어려움 이런 것들에 대해 지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해요. 스스로 즐겁지 않은 혁명과 운동은 전혀 진행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똑똑한 낙관주의가 필요한거죠.



Q5. 케이: 마지막으로 정리하듯이 얘기해주셔서 질문을 굳이 더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짧게 마지막으로 제가 질문하고 마무리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 이야기의 연장선일수도 있는데 요즘 특히 저 같은 경우에도 비슷한 무기력함을 많이 느낍니다. 현장에서 운동을 하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자본과 권력 앞에서는 아무렇게 쓸모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희가 3개월 정도 넥스트 서울을 뜨겁게 활동해왔는데 우리는 과연 이 활동과 운동들이 진짜 사회를 변화 시키는데 얼마나 기여를 한 것일까? 무기력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진행해 간다는 게 더 무기력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 하나와, 운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내가 직접 가질 수 있는 그런 위치까지 올라가서 거기서부터 변화시켜야겠다, 하는 청년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5. 편집장님: 사실 저는 인디고 서원에 강제로 보내졌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공부는 잘했었습니다. (웃음) 아버지가 저의 폐쇄성이 저의 인생을 망칠것이라 생각하시고 억지로 인디고서원에 보냈었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해를 거듭해서 결국엔 지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활동에 굉장히 많은 의의를 두었었어요. 고3이 되니까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책을 그만 읽고 수능공부를 하라고 하시길래. 그 순간 아버지에 대한 모든 존경심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말만 진보적인 사람이지 속은 정말 썩을대로 썩은 보수적인 인간이다’ 부터 시작해서 ‘학벌주의를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이 왜 자기 자식은 학벌에 맞춰서 보내려고 하는가’ 이런 갈등이 계속 되었었고, 타협을 본 지점은 ‘니가 하고 싶은거 해라 그대신 이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해라.’ 였습니다. 그래서 수능을 완전 전투적으로 보았습니다. 평소보다 썩 좋지 못한 성적이 나왔고 저는 만족스러웠지만 아버지는 너무 안타까워하셨어요. 아버지는 재수를 원하셨지만 나는 괜찮았었다. 다시 타협을 본 지점이 이대를 가는 것이었어요. 근데 사실 만약에 아버지의 그런 요청이 없었다면 나는 어땟을까 가끔 상상을 해보거든요. 정치인이 되던 사회운동가가되던 로스쿨을 가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죠. 서울대나 로스쿨을 간다고 속물이 아니란 것이죠. 서울대 갈 사람이면 가야지 얼마나 좋아요. 청소년을 만날 때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은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에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역량을 다해 세상을 바꾸면서 나는 이렇게 되어야겠다 라는 비전을 가진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던 권력을 잡던 못 잡던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맥락에서 내가 나중에 뭐가 되어서 세상을 바꾸겠다라는 사람은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봐요.


모두가 각자의 크기와 역량은 다르겠지만 그런 힘들이 모였을 때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힘들을 믿어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세대도 탄생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도 도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이 구성원 이대로 다시 만날 일은 평생에 없을 것입니다. 이게 최후의 순간인 거에요. 이 문을 나가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또 각자의 몫인거죠. 제가 오늘 드린 말들 중 어떤 하나라도 가슴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면, 그 것만으로도 굉장히 유의미할 것 같습니다.  인디고잉도 많이 분들이 구독해주세요(웃음), 그리고 이번 8월에 인디고 북페어가 진행됩니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구요, 오늘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민주주의 오픈스터디.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