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더 가까운 배움과 생각의 공간에 다가서다
서점에서 <인생학교>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책들이 있다. 이 책들은 영국에 있는 같은 이름의 시설에서 수업을 통해 논의되었던 것들을 담아낸 것들로, '돈', '일', '성性', '시간'등의 주제를 가지고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유명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인생학교는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분교를 두고 있으며, 수업과 컨설팅, 출판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수업과 사교의 공간으로서 인문학적 사유를 일상에 접목하는 인생학교는 <생각공방>팀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곳으로 느껴졌고, 런던 탐방에서의 견학 1순위 시설로 낙점되었다.
아담한 로비, 아늑한 강의공간
런던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는 마치몬트(Marchmont) 가에 위치한 인생학교는, 예상한 것과는 달리 다소 작은 규모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건물의 1층은 로비이자 서점으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인생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업들의 참고도서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로비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오는데, 이 통로를 통해 인생학교의 수업들이 이루어지는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출국 전에 미리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직업 찾기(How to find a job you love)' 수업에 등록을 해놓았던 덕분에, <생각공방>팀은 인생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에 직접 참여해보는 기회를 얻었다.
소통을 통한 수업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직업 찾기' 수업은 30분 동안의 간단한 식사 및 대화 시간이 끝난 뒤 시작되었다. 강의실에 스무 명 정도의 수강생이 모여 앉자 강의실이 꽉 찼다. 강사와 가장 먼 수강생 사이의 거리가 채 5미터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수업은 중간에 2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을 포함하여 총 3시간 동안 이어졌는데, 수강생들이 각자의 경험을 종이에 그림이나 도표, 글 등으로 표현한 뒤 이를 다른 수강생들과 공유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생각공방>팀원 모두가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학부생들로 구성된 것과는 달리, 수업을 들으러 온 수강생들 대부분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며 그 연령대가 20대부터 50대까지 매우 다양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직업 찾기' 수업은 수강생들이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수강생끼리 연락처를 교환하는 시간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비록 단 하나의 수업을 들어본 것 뿐이었지만, <생각공방> 팀에게는 인생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들의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생각공방>팀은 로비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던 윌 브리머(Will Brimmer)씨와 인생학교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브리머씨는 인생학교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손 : 인생학교에서는 새로운 강의를 준비할 때 염두에 두는 점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윌 : 강의를 새로 기획할 때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의견을 수렴하는 대상에는 인생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과 학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모두가 포함된다. 인생학교의 강의를 수강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강의에 대한 제안을 내면 그것들을 인생학교 운영진이 검토하고,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제안들은 실제 강의 기획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권 : 인생학교는 런던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많은 나라들에도 분교를 내고 있다. 다른 나라에 인생학교 분교를 설립할 때 고려되는 점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윌 : 인생학교 담당자들이 모이는 국제 회의가 매년 열린다. 국제 회의에서는 다른 분교에 있는 운영진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업무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같은 것들을 공유하며, 여기에서 분교를 설립하는 문제도 함께 논의하게 된다. 인생학교를 설립하고 싶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지원 서류를 낸 것을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되며, 어떤 팀이 우리가 도와줄 만큼 의지가 있고 신뢰할 수 있는지를 본다. 그러나 정확하게 명시된 지원자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인생학교 분교 설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다.
권 : 이 곳에 오는 수강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던 강좌가 있는가?
윌 :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직업 찾기'가 인기 있는 대표적인 강좌이다. '일과 사랑(Work and love)'도 인기가 있는 편이다. 한 강의가 여러 번 반복해서 열리기 때문에 어떤 수업들이 주로 인기가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권 : 런던에는 포일즈Foyles나 워터스톤즈Waterstones 같은 대형 서점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이 곳 인생학교 로비에서도 서적들을 판매하고 있지만 그 수는 대단히 적은 편이다. 인생학교에서 판매하고 있는 책들의 가짓수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인생학교에서 책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윌 : 우리는 강좌 교재로 쓰이는 책들을 최대한 적게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대한 책들을 굳이 많이 가져다 놓아봐야 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강좌에 쓰일 만한 교재들을 최대한 걸러낸 뒤, 우리가 다루는 주제 각각에 한두 권 정도의 교재들만 할당을 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가끔은 학계에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참고도서들을 엄선하기도 한다.
손 : 인생학교 로비에서 판매되는 도서들 중에는 철학이나 역사를 다루는 책들이 있었다. 문학, 역사학, 철학 같은 분야는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문학적 사유와 실생활과 연결된 주제들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가 궁금하다.
윌 : 인생학교가 제공하는 수업에서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것을 다루기는 하지만, 어떤 강좌도 순수하게 하나의 학문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실제 생활과 관련된 주제들이기 때문에, '일', '사랑' 같은 일상의 주제들이 명확하게 중심에 있고 심리학이나 철학 같은 학문들은 그 주제들에 적용할 사유를 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궁금했던 만큼 아쉬웠던, 짧은 만남
인생학교는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이 설립했던 시설이기에 <생각공방>팀원들 또한 많은 기대를 가지고 견학에 나섰던 곳이다. 수강료를 지불하고 수업에 참여할 만큼 궁금한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장소였다. 그러나 기대와 궁금증이 컸던 만큼, 짧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학교와의 만남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인생학교 임직원들은 11월에만 정식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원칙 때문에 윌 브리머와 짧은 대화밖에 나누지 못했고, 그래서 인생학교의 운영 원칙이나 그동안 겪었던 역경과 같은 깊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자로서는 절대 짧지 않은 세 시간 동안의 수업이었지만, 인생학교에서 제공하고 있는 모든 강좌들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다른 수업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버리고 만 것도 미련을 남겼다.
하지만 이 짧은 탐방을 통해서나마 <생각공방>팀은 인생학교의 운영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몇 가지 알 수 있었다. 인생학교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강좌 위주의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그래서 도서들을 로비에서 판매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이 쉬어갈 만한 충분한 공간이나 커피숍 같은 시설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인생학교는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수강생들을 배려하여 하루 시간을 내어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을 많이 마련해놓았고, 조직에 창의력이나 열정을 불어넣고 싶은 단체나 회사들을 위한 컨설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세계 각지에 분교를 빠르게 설립하여 대규모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 분교들을 매년 진행되는 국제 회의를 통해 관리하고 함께 운영 전략을 세운다는 점도 인상깊었다. 인생학교는 깊은 듯 실용적인 '사유'와 고전적인 듯 현대의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운영방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대단히 세련되면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하나의 '단체'였다.
인생학교 / The School of Life
위치 HQ 70 Marchmont Street London, London WC1N 1AB,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20-7833-1010
홈페이지 http://www.theschooloflife.com
WRITER 권은진
PHOTOGRAPHER 박창현
INTERVIEWER 권은진, 손성호, 박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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