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들고, 사고, 읽고, 이야기하는 공간 : 파주
파주출판단지는 책의 기획, 생산, 유통이 모두 이루어지는 곳이다. 책이 '소비'되는 공간으로서 서점이나 도서관이 가지는 성격과는 별개로, 파주는 출판사들이 밀집한 공간으로서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생각공방은 팀원 유경이 인턴으로 일했던 출판사인 '돌베개'를 찾아가 한철희 대표를 만났다. 돌베개 출판사 건물의 1층은 북카페 형태로 외부에 개방되어 있었고, 돌베개에서 그동안 출판했던 책들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이하 생각공방 팀원의 이름은 각자의 성이나 끝글자로, 한철희 대표는 '한'으로 줄여 표기한다.)
현: 출판사 건물에 북카페가 함께 있는 것이 독특하다.
한: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꿨다. 이용객들이 책을 찾기 쉽도록 서가도 분류해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진: 출판 업무 외에도 이런 공간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한: 실제로 다른 곳에 공간을 더 꾸릴 생각도 하고 있다. 북카페나 공부 모임 공간의 역할도 지니고, 작가나 앞으로 작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강의/연구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곳을 구상하고 있다. 보통 파주에서 서울로 갈 때는 홍대나 합정 쪽을 많이 거쳐 가니까 그쪽에 공간을 만드는 생각도 했지만, 최근 그 곳들이 소비 문화 중심으로 재편되는 바람에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땅값이 올라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
돌베개 2층에서 내려다본 1층의 북카페. 책꽂이 모양이 무한대(∞)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손: 다른 출판사와의 교류도 하시는지?
한: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이와나미 출판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질문지를 준비해 인쇄해 두고, 인터뷰하는 장면을 모두 영상으로 촬영해 두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인터뷰로는 모자란 느낌이 있다.
권: 생각공방 팀은 '인문학적 소통공간 만들기'를 목표로 국내의 인문학 공간들을 돌아보고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의견을 묻고 싶다.
한: 인간의 삶과 세계, 그리고 사물과 세계가 부딪히는 속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이렇게 인간이 세계에 대한 접촉과 인식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 속의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인문학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이건, 사회/문화/역사적인 차원이건 인간에게는 모종의 시각이나 맥락이 주어져 있는데, 그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개인이건 사회건 부단히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성찰에서는 불변의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도,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짐으로써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요약하자면, 인문학이란 '나'와 '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한철희 대표의 안내를 받아 돌베개 사옥의 업무공간들을 둘러본 뒤, 생각공방 팀은 파주 출판단지를 돌아보았다.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문화공간들과 탁 트인 옥상의 휴식공간 등을 둘러보며 출판단지의 향기를 흠뻑 즐겼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생각공방 팀은 워크샵 장소인 합정의 유자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인문학적 소통' - 다른 계기, 다른 방향, 다른 고민
생각공방 팀원들은 워크샵을 진행하며 그동안 돌아본 장소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현: 우리가 탐방했던 인문학 아카데미 세 곳을 운영하는 분들의 시각이 뚜렷하게 차이가 났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인문학 열풍'에 대한 의견이 대조적이었던 것이 재미있었다.
진: 생각했던 것보다 '인문학 공간'의 형태가 훨씬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북카페를 함께 운영하던 돌베개 출판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손: 한편으로는 인문학 공간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경제적인 지원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우리가 돌아본 곳들 중에는 '뜻있는 분들의 도움'에 의존하여 운영되는 곳들이 있었는데,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곳들도 있었다.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인문학 공간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범: 철학아카데미나 에피의 경우 거의 대학 강의와 비슷한 수준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고, 반면에 인문공간 넛지는 좀 더 가벼운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인문학적 논의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문학 컨텐츠를 만드는 것 사이의 고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권: 언니네 작은 도서관의 경우 도서관의 역할 외에도 일종의 지역 공동체 거점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기술과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파편화되는 현대 도시인들을 인문학 공간이 지역 공동체로서 묶어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이야기는 새벽 두 시까지 이어졌다. 각자가 생각한 인문학의 역할부터 개인적인 고민이나 경험담까지, 생각공방 팀원들은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WRITER 손성호
PHOTOGRAPHER 손성호, 범유경, 김다진
INTERVIEWER 권은진, 손성호, 박창현, 김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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