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가락 에세이
_ 세 손가락의 '꿈을 향한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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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날아야하는 이유
각자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꿈을 꾸던 우리.
우리는 고등학교 때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영상에 대해 배우고 싶었고
,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런 건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할 수 있는 것이니 학생은 학생이 해야 하는 것을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항상 학생들은 꿈을 꾸는 데 있어서 나중만을 기약해야 했다. 그래서 꿈은 지금의 것이 될 수 없었고, 결국은 실체가 없는 정말로 꿈같은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모두들 청소년과 청년은 아직 꿈을 꿔야하는 나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순간 소소한 경험들은 그저 낭비라 생각하면서 진짜 꿈을 꾸는 것에는 인색해져 있었다.
그래서 무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꿈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지금의 친구들이 자유로이, 한번쯤은 무턱대고 설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다. 물론 아직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 지, 무대 위에서 뭘 할 수 있는 지 확신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대에 서기 전에 꿈부터 찾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무대 위로 한발씩 내딛을 수 있게 기다려주면서 자신의 것을 펼쳐 보이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청소년, 청년의 꿈꾸는 무대 만들기 프로젝트’, 세 손가락 프로젝트는 그렇게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무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우리는 친구들이 누군가 만들어놓은 무대가 아닌
스스로 만든 무대 위에 서기를 바랐다.
그래서 함께 무대를 만들어갈 청소년, 청년을 모집하려 했지만 주변에선 분명히 잘 안될 거라고 했다. 함께 할 사람들을 모집하기 위해 포스터를 돌리기로 했고, 사정이 좋지 않아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걸 흑백으로 복사한 후 또 그 위에 색칠을 했다. 직접 포스터를 만드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무대 만들기’에 낯선 친구들에게 우리가 하려는 것을 이 작은 종이에 어떻게 담아내는가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모집분야도 뚜렷하지 않은 모집공고를 보고 과연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줄지는 의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그마한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 손수 제작 중인 포스터 ▲ 4월 20일, 싸이클롭스에서 열린 '조막조막 설명회'
무대를 왜 만들어야하는 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명회의 발표에서는 우리의 꿈이 어떻게 변했는지,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말하면서 왜 우리에게 무대가 필요한지, 우리가 만들어야하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포스터 배포와 설명회 까지 끝마친 후, 주변의 걱정이 무색하게 30명 정도가 되는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왔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다시 20명의 친구들을 데려와주었다. 50명의 친구들이 한 곳에 모였고 그렇게 세 손가락 프로젝트는 첫 발을 내딛었다.
(아쉽게도 그 50명의 친구들이 모두 끝까지 함께 가지는 못했지만...)
5월 26일, 함께 할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짜고짜 무대를 만들자는 이야를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세 손가락이 앞으로 어떤 모습의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했다. 친구들에게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 경우와 ‘좋아하는 게 뭐야?’라고 물었을 경우의 반응이 많이 달랐다. 좋아하는 것을 물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식으로든 대답이 나왔지만, 꿈을 물었을 때는 꽤 많은 아이들이 오랜 시간 ‘내 꿈이 뭐지?’하고 망설였다. 자신이 ‘꿈꾸는’ 무대를 만들기에 친구들은 아직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씨커즈 3기 오리엔테이션 때 들었던
모티브하우스 소소(서동효 대표)의 강연이 생각났다.
꿈꾸는 것이 어떻게 힘든지, 꿈이 뭔지 등의 이야기가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고, 고등학생 친구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강릉에 커뮤니티카페로 만들어진 ‘품’이라는 곳을 빌려 ‘꿈살롱’이라는 이름으로 소소의 강연을 한 번 더 불러오기로 했다.
우리는 꿈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오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꿈은 재능이나 실력이 수반되어야만 꿀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고, 꿈은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 건지에 대한 질문이 아님에도 우리는 직업의 형태로만 꿈을 꿔왔다.
꿈살롱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꿈 성장 워크숍’에서는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또 명함 크기의 작은 종이에 자신의 꿈을 적어보고 그 꿈(대부분 직업이었다.)을 가치로 확장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원래 자신의 꿈을 가수라고 적은 친구가 있었다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가수처럼 어떤 가치를 붙여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꿈을 직업이 아닌 가치로 확장해서 꾸게 되었을 땐 훗날 가수라는 희망직업에 흥미를 잃더라도 자신이 이루고 싶은 가치에 따라 또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6월 1일, 커뮤니티카페 '품'에서 소소의 강연을 흥미롭게 듣는 아이들
2.우리 비행기, 이륙 준비 중입니다.
세 손가락 페스티발의 모든 프로그램은
청소년, 청년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낸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무대(프로그램)를 만들고 싶어?”라고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이제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탓에 구체적인 답변을 얻기는 어려웠다. 이제 막 좋아하는 것에 솔직해지고 있는 친구들에게 “네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무대는 뭐였어?”라고 물어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 기대했던 세 손가락의 이상적인 모습을 조금 양보하고 지금의 친구들에게 맡도록 천천히 만들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개개인에 따라 관심 있는 것들이 다양했다.
관심 분야에 따라 연극(야외극)팀, 영화제팀, 잡지팀, 공연팀, 영상팀으로 팀을 나눴다. 각 팀별로 회의를 해서 어떤 모양의 무대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이야기해나가기로 했다. 또 팀별로 너무 나뉘어져 행동하기보단 하나의 모임이라는 느낌을 이어갈 수 있게 전체 회의를 통해 각 팀끼리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도 가지기로 했다.
▲ 7월 14일, 전체회의를 통해 진행상황을 공유하는 세 손가락 구성원들
연극팀은 먼저 창작극을 만들기엔 경험과 시간이 모자라다고 판단해
기존에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배봉기 교수와 여러 청소년들이 함께 쓴 <UFO를 타다>를 비롯해 여러 아마추어 작가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쓴 <공동우물>이라는 희곡집과 이미옥 작가의 <꿈의 다이어리>라는 동화가 공연할 작품의 후보로 올랐다. 연출을 맡게 된 친구들은 작품을 읽어본 후 <UFO를 타다>에 수록된 <이런 물음표>와 <나를 위한 이유>를 약간의 수정을 통해 짧은 연극으로 만들어보기로 했고, <꿈의 다이어리>를 뮤지컬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연극팀의 전체적인 흐름은 우리 중에서도 한솔이 맡아주기로 했다. 아직 2학년이지만 학교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연극이 만들어지는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실내에서 하는 연극 말고 야외에서 마당극처럼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에 따라 강릉 구정리 마을에서 야외극을 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에 구정리에서 ‘강원도 골프장 난개발 문제’와 관련해 투쟁이 있을 때 그에 관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때 구정리와 나름의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해서 다른 지역보다 섭외가 쉬웠고, 또 우리의 행사가 구정마을의 상처나 후유증을 만져줄 수 있겠다는 것이 우리가 후에 찾아낸 ‘구정에서 연극을 하는 이유’였다.
▲ 구정마을에서 야외극 리허설을 하고있는 연극팀
영화제팀은 어떤 영화를 상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처음 영화제팀의 회의는 굉장히 설렁설렁, 어떤 영화를 상영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지나갔다. 세 손가락 페스티발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무대로 이루어지는 행사인데 그렇다면 영화제도 영화제팀원들이 남들과 함께 보고싶고 틀고싶은 영화를 틀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영화제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 여러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가운데에 영화제를 한다면 하나의 맥락은 있어야한다는 충고를 들었다.
우리들이 틀고 싶은 영화를 틀되
영화제 전체의 큰 맥락이나 세션 하나하나 속에는 공통점들이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회의를 거듭하고 영화제의 큰 맥락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상영기회를 많이 갖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영화나 20대 청년들의 영화를 우선적으로 상영하기로 결정했고 여러 영화제 사이트의 자유게시판 등을 이용해서 작품 공모를 냈다. 첫 영화제인데다 정확하게 어떤 단체에서 하는 영화제인지도 몰라서인지 출품된 작품의 수는 턱없이 모자랐다. 때문에 우리는 여러 온라인 상영관들을 떠돌며 작품들을 살펴봐야 하는 고생을 더했지만 덕분에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고 청소년 영화들의 현 주소가 어떤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전시팀에서는 좀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흔히 전시하는 사진과 그림, 조형물 말고도 시나 프라모델 같은 좀 더 넓은 분야의 전시물이 있는 전시장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미술팀의 전시는
기술적인 미술을 강요하는 세상(?)에
발칙한 반항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작품을 걸어주지 않아 서러워하는 게 아니라 전시할 공간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놓은 채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가다 보니 보는 사람의 입맛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솔직하게 쏟아낼 수 있었다.
미술팀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덕분에 미술팀 안에서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정신세계(미술팀의 전시 테마는 ‘나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겠다’였다)를 이해하며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야작 중인 전시팀
또 사진팀은 ‘이와’와 함께 협업하여 서부시장의 사진을 여러 방향으로 찍고 전시할 수도 있었다.
사진팀은 서부시장의 모습을 각자 지급받은 카메라로 각자의 취향에 맞게 담아냈다.
이 팀은 비교적 무난한 전시회를 가졌지만, 서툰 사진을 찍으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지나쳤던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또 ‘이와’와 함께 했던 작업 속에서 청소년들이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도 가질 수 있었다.
잡지팀은 문화평론가를 꿈꾸는
여학생 한사람으로 이루어진 개인 팀이었다.
때문에 홀로 20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잡지는 세 손가락 프로젝트의 소개, 주제에 맞는 음악과 영화 소개, 일러스트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금은 미숙하고 어색할지는 몰라도 우리가 직접 생각하고 쓴 글을 모아 잡지로 만들어 남에게 선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영상팀은
겨울협의회와 함께 극영화를 제작할 극영화팀과
세 손가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다큐팀으로 분리되었다.
겨울협의회와 함께 했던 극영화팀의 작업은 영화 아이템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도 작은 논쟁이 있었는데, 작업을 몇 번 해본 후 눈높이가 조금 높아진 겨울협의회의 구성원과 이제 막 처음 영화 작업을 해보는 신입 구성원 중에 어느 쪽에 눈높이에 맞는 작업을 진행해야하는 지에 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여름을 맞아 새로 모집된 친구들이었고 이번 작업 방향은 자연스레 새 구성원들의 눈높이에 맞춰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큐팀의 경우 세 손가락을 기록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두고 다양한 기획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사실 세 손가락 페스티발을 준비하면서 몇 십 명의 청소년들이 한데 모이다보니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 손가락 페스티발을 하는 데 있어 축제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친구들끼리의 관계맺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이들의 관계를 조정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 노력 중 하나가 그것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39인 다큐>는 다시 세 손가락을 기록하자는 성격을 조금 수용해서 만들어진 다큐이다. 세 손가락에 참여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자기소개, 자신이 속한 팀, 자신의 꿈’등을 물었고 그것을 한데 모아 편집함으로서 세 손가락에 어떤 친구들이 모여있는 지 보여줄 수 있는 영상으로 만들었다.
또 <부모님다큐>는 교외활동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둔 세 명의 친구와 교외활동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시는 부모님을 둔 한 명의 친구를 대비하여 보여주는 약간은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다.
공연팀은 잡지팀과 더불어 유일하게
세 손가락 기획팀이 개입되지 않고 청소년들로만 구성되었던 유일한 팀이었다.
처음 공연팀에서 회의를 시작하면서 아무 노래나 부르는 공연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진행이 많이 지체되기도 했다.
늦게나마 ‘네가 부르고 싶은 노래는 뭐야?’라고 물으며 각자 하고 싶은 노래를 몇 곡정도 연습해서 공연 레파토리로 사용하자고 이야기했다. 리플렛이 만들어지면서 공연팀은 렛츠라는 커뮤니티 게임과 연계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하기로 결정했다.
3.우리 비행기, 이륙합니다.
8월 30일, 세 손가락 페스티발은 개막했다.
이날은 어쿠스틱밴드 한 팀과 문성고등학교 댄스동아리 ‘Temptation’, 강릉 힙합뮤지션 ‘돌중’과 클론댄스 공연팀이 초청공연으로 무대를 장식해주었다. 이후 17편의 단편과 3명의 감독이 GV를 찾아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영화제’가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진행되었고, 7일에는 영상팀과 겨울협의회의 합동상영회와 더불어 5-6일로 예정되었던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취소되면서 강릉 시내에서 버스킹 공연도 열렸다. 8월 31일부터 9월 15일까지 서부시장 지하상가에는 미술팀의 미술전시가 매일 열렸고 13일부터는 서부시장 사진전이 함께 진행되었다. 9월 8일에는 폐막 공연으로 강릉 구정리에서 <멈추어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단편 야외극 3편이 공연되었다.
▲ 세 손가락 페스티발 개막식_팀별 프로그램 ▲ 영화제│씹다 세션 .
인터뷰│ 잡지팀 김연진, 사회자 황철준 _ 정갑영 감독(우), GV 중인 연우(좌) .
▲ 영화제 | 맛보다 세션 시네토크 진행 중인 소정 ▲ 겨울협의회+영상팀 상영회 .
다큐멘터리 GV 중인 철준(좌)와 준극(우)
▲ Fingusking Street ▲ Fingusking Street .
거리공연 중인 세 손가락 공연팀 거리공연에서 노래하고 있는 현진 .
▲ 전시회 │ 미술팀 성훈의 작품 <말장난> ▲ 야외극 │ 두 개의 작품을 관람하고 다음
작품으로 이동 중인 관객과 배우 .
4.다음 이륙을 위한 착륙
되돌아봤을 때, 잘했던 점보다는 아쉬운 점들이 훨씬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볼거리가 조금 부족하거나 미흡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개막식을 기획할 때도 인터뷰와 퀴즈로만 구성된 지루한 기획안을 큰 문제제기 없이 추진하려 했던 것이 생각난다. 초청공연이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초청공연이 주가 되어버리면 세 손가락 친구들이 소외받을 것 같다는 걱정 때문에 섣불리 초청공연을 부르자는 결정을 내릴 수도 없었다. 그런저런 핑계들로 그냥 추진하려던 기획안을 ‘돌중’이라는 한 뮤지션이 우연히 보고 충고를 줬다. 그제야 우리는 볼거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깨닫고 초청공연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돌중’의 도움을 받아 4팀의 공연팀을 초청했고 개막식은 나름 완성도 있게 마무리되었다.
아직 해결해야하는 문제점은 남아있었다.
전체적으로 지루한 가운데 초청공연의 무대만이 볼거리였다는 점은 분명한 문제이기도 했다. 결국 세 손가락의 개막식에서 세 손가락보다는 다른 공연팀의 공연이 주인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영화제를 만들고 난 후에는
좀 더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상영한다는 건, 단순히 영화만 틀어주고 관객은 그걸 보고 상영이 끝나면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일종의 액션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흔한 형태의 그 액션이 이번 영화제에서 진행했던 GV와 시네토크인데, 명색이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코너인데 준비된 질문만 대본에서 읽고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GV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전체 프로그램과 비교해봤을 때, 영화제의 관객이 유난히 적은데 이것은 홍보가 미흡했던 점도 있지만 영상, 특히 청소년영화나 단편영화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가 상당히 저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상과 관해서 청소년들이 설 무대가 만들어지려면 청소년 영화에 대한 지역 주민의 접근성에 관한 문제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팀에서 이틀을 준비한 프로그램은 하루도 문을 열지 못하고 모두 취소됐다. 결과적으로는 버스킹을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200명에 가까운 지역 사람들에게 세 손가락이라는 얼굴을 비췄지만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준비한 프로그램은 진행할 수 없었다. 세 손가락 페스티발을 꾸려오면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번에 공연팀의 공연과 엮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봤지만, 사람들의 흥미와는 정확하게 비껴갔다. 커뮤니티를 위한 행사라고 해도 사람들은 그 안에 있는 컨텐츠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이 행사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해 봐요~’라고 홍보할 것이 아니라 ‘노래하는 것이 즐거운 아이들의 노래가 있는 네트워킹 콘서트’라는 식으로 홍보를 했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에서는 다른 문제보다는 기본적인 운영의 미흡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팀원들끼리 어느 날짜에 전시장을 열 것인지를 서로 정하지 않아 전시장이 예정보다 늦게 열리는 날도 있었다. 또 전시장에 작품의 작가들이 항상 자리하지 못하고 불규칙적으로 전시장을 지키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기회도 조금은 부족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야외극을 진행하면서는 마을 주민들께 너무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 그럼에도 정확하게 마을에 야외극을 진행하는 방식이나 순서 등을 공유해드리지 못해 마을 주민들이 공연을 보러 나와서 3개 중에 1개의 공연만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마을 부녀회에서 공연 뒤에 먹을 음식들을 준비해주셨는데 감사인사나 정당한 비용의 지불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서툴러 오해를 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든다. 뿐만 아니라 공연 무대를 셋업 하는데 기술적인 능력이 되는 사람이 부족해서 혹은 사전에 어떤 방식으로 무대를 세울 건지가 이야기되지 않아서 두세 사람이 세 작품의 무대를 모두 셋업하다가 준비가 늦어져 관객들을 기다리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공연이 과연 재미가 있을까에 관한 고민에 있어서는 우리가 원했던 대로 학생들이 만드는 무대, 참 귀엽다, 기특하다는 식으로 무대를 흐뭇하게 바라봐주셔서 공연 후기는 대체로 긍정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쉬운 점이 매우 많다.
전체적인 일정 자체가 늦어져 홍보할 시간도 모자랐고, 온라인을 통해 효율적인 홍보도 서툴렀다. 페스티발이 모두 끝난 후에도 공연을 바라본 사람들의 생각이나 어른들의 조언을 수집하지 않아서 우리의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집고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분명히 페스티발을 열기 전과 페스티발을 열고 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상당히 바뀌어있다.
처음 모였을 때만 해도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이끌어주기를 바랬던 청소년 친구들은 스스로 다음에 할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또 분명히 이번에 하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들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 모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가 완전히 뚜렷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 낯설던 순간에서 출발한 우리들이 스스로 또 다른 경험을 목말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벌써 다음에 진행할 프로젝트의 기획팀도 새로 꾸려졌다. 또 다른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세 손가락은 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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