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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EEKER:S Story/*소정당협동조합

[해외탐방기] (4) IT가 아니라 사람이다: WEEK 카미야마와 카미야마 탐방기

오노미치를 뒤로하고 카미야마로 떠나는 길은 그야말로 모험이었습니다. 오노미치에서 후쿠야마를 거쳐 다카마쓰로, 다카마쓰에서 다시 도쿠시마로 열차를 타고 이동한 뒤, 도쿠시마 역 앞에서 2시간을 기다려 손님이 거의 없는 버스를 타고 다시 한 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산골 마을 카미야마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를 출발한지 8시간이 지나서야 볼 수 있었던 반가운 표지. "나무의 마을 카미야마"

 

버스에서 내린 카미야마는 그 이름(神山, 신산)다운 자태를 가진 아름다운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었습니다. 비 온 후의 깊은 산에는 안개가 휘몰아쳐서 당장이라도 신이 내려올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숙소 겸 탐방지인 WEEK 카미야마로 이동했습니다.

 

신이 깃든 듯한 산과 계곡의 모습에서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마을의 이름

 

WEEK 카미야마는 조용한 시골 마을 카미야마에 2014년 들어선 위성 사무실 체험형 숙박 시설로, 빠른 인터넷망과 각종 이주 관련 지원 사업 등을 통해 낙후된 마을을 기업의 위성사무실 및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관의 지원에 발맞춰 카미야마 주민 50명이 주주가 되어 만든 지역회사가 운영하는 숙소입니다.

 

체크인을 하며 공유 공간 사용과 숙소에 대한 안내를 받고 짐을 푼 뒤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블로그나 취재 자료, 혹은 홈페이지에서 소개된 내용을 봤을 때는 마치 WEEK 카미야마가 카미야마 위성 사무실의 모든 것을 망라한 대규모 단지처럼 느껴졌으나, 실제로 WEEK 카미야마는 작은 카페 겸 코워킹스페이스가 딸린 곳으로 한국의 펜션과 같은 소규모 숙박시설이었습니다.

 

여덣 개의 방과 공용 욕탕이 전부인 단촐한 숙소

 

 

숙소 안이나 리셉션에 딸린 코워킹스페이스는 물론, 숙소 옆에 위치한 계곡에서까지도 와이파이망을 구축해 WEEK 카미야마의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고, 1인실의 경우 내부에도 계곡 절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작업 데스크가 마련되어 있어 숙소 겸 일터로 사용 가능했으나, 전반적으로는 그 자체가 작업을 위해 지어진 공간이라기보다는 카미야마를 체험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위성 사무실로 카미야마 부지를 고려하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잠깐 머무를 수 있는 숙소 역할에 충실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을의 다양한 행사와 공방 등을 소개하고 있는 리셉션

 

 

대신 카미야마에서 가장 유명한 위성 사무실이자, 다른 위성 사무실과는 달리 특정 기업의 독채가 아닌 공유 사무실로 운영되고 있는 Kamiyama Satellite Office Complex의 바로 옆에 위치해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 해당 공유공간을 방문해 더 전문화된 사무실 공간을 쓸 수 있고, 숙소 리셉션에서도 카미야마 내의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이주에 대한 정보, 지역 행사 정보 등을 공유함으로써 외부인들과 카미야마를 연결하는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소정당 또한 WEEK 카미야마를 통해 카미야마의 위성 사무실 유치와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NPO Green Valley에서 제공하는 카미야마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다음날 투어를 기다리며 하루를 마쳤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다음 날 아침, Green Valley INC.의 이토씨가 자기소개와 함께 카미야마의 위성 사무실에 대한 설명과 투어를 진행해주었습니다.

 

 

카미야마 투어를 진행해주신 Green Valley INC.의 이토씨



<Kamiyama Satellite Office Complex>

“Kamiyama Satellite Office Complex”는 사용하지 않고 버려져 있던 지역 소유의 재봉공장을 재사용해서 만든 코워킹스페이스로, 관과 Green Valley INC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카미야마의 자연경관과 온천, 그리고 IT 인프라 덕분에 카미야마로 이주하려는 사람과 사무실은 많아졌지만, 지역의 부동산을 알지 못해 제대로 묵을 곳이나 일할 곳을 구하기 어려워하자 지역 주민들이 직접 버려진 집을 찾고 그것을 수선해 연계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데 있습니다.

쓰지 않는 봉재 공장을 재사용하여 만든 카미야마 위성사무실 컴플렉스

 

본인 (이토씨) 역시 나라에서 이주한 이주민이고, 이런 활동 덕분에 손쉽게 카미야마에서 살 곳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카미야마의 공가들은 정말로 버려진 채로 방치된 집들이 많아,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에게 지급하는 돈 외에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일이라 모든 작업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받지 않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Kamiyama Satellite Office Complex의 경우, 현재 16개의 사무실이 회원사이며 주로 도쿄, 오사카, 도쿠시마 시내에 본사를 가진 IT기업이 많습니다. 다양한 크기와 형식의 공간을 마련해 위성사무실을 원하는 기업의 니즈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시청의 카미야마 담당 부서 역시도 하나의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유석(핫데스크)을 비롯해서 다양한 크기의 사무실이 공존하는 카미야마 위성사무실 컴플렉스 내부

 

사무실의 한쪽에는 이 공유사무실을 사용하는 회원들과 또 다른 이주민들,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카미야마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습니다. 이곳은 공유사무실의 한 칸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독자적인 회원제도를 가지고 회원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공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고, 지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러 공작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카미야마 시내>

카미야마 메인 스트리트에는 젊은 이주민들에 의해 프렌치 레스토랑, 수제화 가게, 도시락 가게 등이 생겼습니다.

집의 상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많은 수리가 필요한 버려진 집의 경우 월세 2만엔 정도의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집 전체를 임대할 수 있어서 점차 카미야마를 찾는 기업인과 예술인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한복판에서 "수제 정통 아메리칸 버거"를 즐길 수 있는 붓다 카페



<엔가와 오피스>

카미야마의 위성사무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엔가와 오피스로, 도쿄 에비스에 본사를 둔 직원 수 70여 명 규모의 TV 광고 회사인 PLAT EASE의 위성사무실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혼자 사시던 오래된 주택을 매입해 사무실과 창고로 사용 중이며, 2013년에 사무실을 조성하면서 6명의 직원은 도쿄에서 이주해왔고, 근방 지역에서 6명의 직원을 새로 채용해 12명의 직원으로 위성사무실을 시작하였습니다. 현재는 총 15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며, 처음 시작과 같이 대부분 도쿠시마 시내에서 출퇴근하거나 (현지 거주 직원), 카미야마 내에 다른 집을 구해서(도쿄 이주 직원) 출퇴근 중입니다.

카미야마에서 가장 유명한 위성사무실이라는 PLAT EASE의 엔가와 오피스

 

엔가와(일본 전통 주택)을 그대로 활용한 외관과 대비되는 안쪽의 모니터들

 

카미야마의 위성사무실을 둘러본 후에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산속의 몇 가지 작품들도 함께 안내받을 수 있었습니다.

 

투어가 끝날 무렵 느낀 것은 과거 인구 6천여 명, 고령화율 46%에 달하던 카미야마를 현재의 카미야마로 만든 것은 익히 알려진 IT 인프라가 아닌, 카미야마에서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관의 고속 인터넷망 확충 사업에 발맞춰 기꺼이 자원봉사로 지역의 빈집을 찾아내서 수선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주를 원하는 사람, 마을을 찾아오는 예술가, 위성 사무실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마을을 소개하고 정착을 지원해주는 사람들,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 예술가의 작업을 위해 나무를 옮겨주고 돌을 깎아주는 사람들. 결국 기술이 아니라 이들이 현재의 카미야마를 만들어 낸 숨은 열쇠였습니다. 이 사람들을 이끈 원동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