ココルーム & カマンメディアセンタ (코코룸, 카만! 미디어센터)
Field Tour ② 둘째 날. 7월 20일(금) 14:30 ~ 15:30
통역 : 이강재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 도시샤대학교 교환학생)
어제와는 다른 쪽으로 견학을 나섰습니다. 몇 분 걷다가 OASIS라는 호텔 간판을 달고 있는 건물 앞에 섰습니다. 원래 이 건물은 ‘도야(간이숙박소)’라는 생활보호수급을 위한 맨션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이처럼 배낭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숙소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싼 가격 때문에 외국인 젊은 여행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또 한참을 가다가 가게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아침 5시부터 밤 8시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LOCKER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면서 짐을 맡기고 가는, 지금은 텅 빈 공간들이 많았지만 산업화시절 이곳이 어땠는지 분위기를 가늠케 해주었습니다.
LOCKER 수만큼이나 활발한 노동 시장이었던 ‘니시나리 노동복지센터’는 지금 예전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많은 사람들이 비둘기들과 한 데 뒤엉켜 있는 실로 처참한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너무 두려워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2층으로 향했고 예전에 번성했던 모습들이 여기저기 흔적으로 남아 보일 뿐입니다. 한 쪽 구석으로 가보면 자신의 이름과 나이, 출신지를 적은 종이들이 게시판에 붙어 있었습니다. 일본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고 더구나 더 충격이었던 것은 장년층이 주일 것만 같은 이곳에 2,30대도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근처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전화 부스와 매달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창구들이 마
련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카나요상이 전해 준 소식지 한 장. 2012년 7월 15일 창간해서 446호를 맞고 있는 ‘センターだより(센터로부터)’라는 이곳의 소식지었습니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기술 무료강좌 일정, 지난 달 구인 통계, 구인정보 등 여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헌법의 다음 조항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일본국 헌법 제25조 생존권 국가의 사회적 사명 (1)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 한도의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2) 국가는 모든 생활 면에 있어서 사회복지 사회보장 및 공공위생의 향상 및 증진에 힘써야 한다. |
카마가사키의 유일한 꽃집 사장님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고 카나요상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런 곳에서 꽃이 팔리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나도 전철 건너편에 있는 일본인(?)들과 다를 바 없는 옹졸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 옆 모퉁이를 지나면 ‘생활도로청소사무소’라는 간판을 단 곳이 있었는데 일이 없는 노동자들의 경우 이곳에서 자고 일도 할 수 있는 곳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대각선 방향에 있는 한 초등학교. 홈리스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이 거리는 군것질 가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담장 아래로 화분에 물을 주는 호수 관과 중간 중간에 화분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보면 외관상 좋게 꾸며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담 벽에 노숙자들이 기대거나 눕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화분에 물주는 명목으로 아래쪽을 경사지게 재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칸이 있는 벤치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노숙자들이 누워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들 합니다.
근처 딸 코코미짱이 다니고 있다는 보육원에 들러 딸 코코미짱을 데리러 다함께 들어갔습니다. 마당에 큰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이왕 온 김에 2층까지 올라가 봤습니다. 내색은 차마 안했지만 쾌적하지 않을 정도로 시설은 허름했습니다. 딸 코코미짱을 데리고 허름한 텐트들이 가득 차 있는 한 공원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공원 우측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우리를 상당히 경계하는 건장한 남자들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들 중에서 결국 야쿠자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카나요상의 말에 의하면 일본인들도 이런 곳이 있는지 매우 놀라들 한다고 합니다.
어제도 그랬지만 카나요상의 딸 코코미짱은 카마가사키에서 나름 유명인사입니다. 지나가는 노동자와 홈리스들이 인사를 건네면서 갑니다.
Interview 둘째 날. 7월 20일(금) 17:15~18:30
인터뷰 : Kanayo ueda, yuko ueda
통역 : 전은휘 (오사카시립대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참석자 : 정동욱, 우승현, 심재은, 김지형, 김지연
― 지역주민들이 생각하는 코코룸에 생각은 어떻습니까?
카나요 홈리스를 지원하는 주민들이 있는가하면 이들이 빨리 죽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 카마가사키에서 코코룸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카나요 코코룸의 주요한 역할은 카마가사키에 대한 미디어의 부정적 보도에 적극적으로 대응, 이미지 개선을 하고자 합니다. Art NPO는 19개 정도이지만 예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수는 적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자리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 여러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인력풀은 어떻게 구성이 됩니까?
카나요 저의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 프로그램은 어떻게 기획하십니까?
카나요 하는 일이 힘들다보니 직원들이 잦은 교체가 빈번합니다. 직원의 성향에 따라 프로그램이나 이벤트 장르가 한 쪽으로 편중될 경우 직접 조율하고 있습니다.
― 맨션 관리인을 통해서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습니까?
카나요 맨션 관리인 역할은 적은 급료이지만 홈리스 분들과 교류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 그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혼자 죽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합니다.
― 후쿠시마 원전 이후 코코룸도 원전 관련한 여러 가지 워크숍이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구체적인 활동이 있으시면 소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나요 리서치를 위해서 직원 중 한 명(테라니상)을 후쿠시마에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방사능 때문에 곧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 미래의 청사진은 무엇입니까?
카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해 나가는 것입니다.
― 코코룸의 조직체계는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카나요 이사가 10명이고 observer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 연중무휴. 3년 전에 함께 여행을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의 재능 기부라고 볼 수 있고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 없습니다.
― 운영에는 어려움이 없는지요?
카나요 재정은 주로 카페 수익이고 최근 사실 손님이 2,30% 떨어지면서 줄고 있다. 술이 돈이 많이 남지만 술은 제한하고 있습니다. 기부를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바자회 수익. 조성금은 건강상담회(조성금이나 자원봉사), 인건비는 조성금에서 아니면 기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참가 둘째 날. 7월 20일(금) 19:00~20:00
3박 4일 동안 머무르면서 코코룸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확인했습니다. 7월 20일 저녁 7시와 8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다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21일 점심 시간을 전후로 3시간 일일 카페 체화당을 운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카나요상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① てんのじ会 (19:00~20:00)
코코룸 카페의 다다미를 무대로 혼자 5분간 춤, 노래, 연주 등 어떤 것이든 자신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카나요상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코코룸에서는 이곳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취지에서 매번 열리는 행사였습니다.
당일 신청을 받고 있었는데 원래는 1인만 무대에 설 수 있지만 우리는 특별히 다 같이 김광석의 ‘일어나’를 불렀습니다. 우리말고도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 팝송을 읊는 어르신, 자신이 찍은 사진을 설명해주는 사람, 피아노를 들려주는 사람, 카나요상은 딸 코코미짱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 뭐랄까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소박한 행사여서 그런지 그 나름대로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② 帰ってきたミックスジュース・ナイトフィーバー! (믹스 쥬스, 20:00~22:00) (강사: 梅山くん)
8시에 시작하기로 했던 행사는 한 사람이 늦어지는 바람에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기다렸습니다. 30분을 기다렸을까 기다렸던 참가자가 왔고 시작했습니다.
진행은 심플했습니다. 참가자들이 가져온 재료 하나를 마스터가 믹스에 넣어가며 주스를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일본사람들은 이런 소소함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더 시도해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코코룸을 알고 지내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아이템은 소소했지만 부담 없이 즐거웠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소소하고 밋밋하다가 단골이나 지인들에게 이러한 행사 한번 열 생각을 못했습니다. 동욱이는 돌아가면 체화당에서 이 프로그램을 한 번 해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마스터 다음에 다른 참가자가 제조를 해 가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들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이 프로그램을 했다가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아서 올해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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