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on de AManTO (살롱 드 아만토) :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동체
1) 기본 정보
창립년도 |
2001년 7월 26일 |
현 대표 |
니시오 준 |
연락처 |
TEL +81-6-6371-5840 |
주소 |
1-7-26, Nakazaki-nishi, kita-ku, Osaka 530-0015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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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구성 |
대표인 니시오 준이 핵심 주체이며, 현재 배경이 다른 아티스트 30여 명의 일일 마스터들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표_Jun 12:00~22:00 (연중무휴) |
기관 설립 배경 및 목적 |
예술가로서 준은 자기뿐만 아니라 젊은 예술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공간을 현실적으로 도시 안에서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의 아만토 마을을 발견, 카페를 시작으로 지금의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
현황 |
2001.7.26 Salon de AManTO 天人 개점 |
2) 탐방 결과
방문 일시 |
2012년 7월 9일 (월) ~ 7월 11일 (수) |
방문 장소 |
아만토 마을 |
기관담당자 |
니시오 준 |
방문목적 |
- 청년들(예술가)의 마을 만들기 |
a) 첫째 날. 7. 9.(월)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오사카 역 근처에 있는 아만토 마을로 향했습니다. 오사카에서 머무르는 2박 3일 동안 아만토 마을에서 운영하는 ‘아만토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오사카 역 뒤로 어렵사리 ‘살롱 드 아만토 카페’를 찾아 그 곳에서 직원분의 안내를 받아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AManTo 게스트하우스로 갔습니다. 주택가 사이에 2층 짜리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신발 벗는 공간에 세탁기가 있고, 신발 벗고 올라서면 부엌과 거실이 바로 보입니다. 2층 방으로 올라 가는 길에 목욕탕이 있고, 꽤 경사가 진 계단 끝에 올라서면 정말 작은 화장실이 정면에 보이고 좌측에는 합판으로 겨우 두 공간으로 분리해 놓은 방이 있습니다. 우리들만의 공간이 별로로 확보가 되어 좋았습니다.
화장실 바로 옆의 방이 우리들이 3일간 머무를 공간이었습니다. 하루에 2,000엔이면 꽤 싼 가격이지만 지내는데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만큼이나 더운 오사카 날씨 때문에 가급적이면 잘 때 말고는 방에서 지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다음에 오사카를 방문하게 되면 아만토 마을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에 다시 이곳을 다시 찾을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3일간 아만토 마을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에 좋겠다는 판단에서 그 게시판 맞은 편, 아만토 마을이 운영하는 Shuka 바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온통 네팔 음식뿐이었다. 알고 보니 Shuka 바의 요리사 분께서 네팔인이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첫 식사는 네팔 카레 요리로 시작했습니다. 네팔 아저씨와 함께 바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미나미씨와 아만토 마을, 한류 등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바로 좌측에 있는 천연예술연구소 Tengei를 둘러봐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 후에 그 쪽 공간을 둘러보았습니다. 테이블과 의자들은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 놓은 것처럼 체화당보다 더 허름한 것들이었지만 그 공간이 좋아 보이기만 했습니다.
저녁 식사와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향후 탐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열쇠를 건네받은 Salon de AManTO天人로 갔습니다. 카운터에서 아이스커피(200엔)를 주문하면서 계산하고 직접 받아오는 셀프 서비스 시스템이었습니다. 카페는 탐방 전에 홈페이지에서 본 사진과는 달리 다소 허름한 모습이었습니다. 2층 좌식 공간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에는 마을 방송국인 것처럼 보이는 장비들과 그 위에 ‘FM radio’라는 팻말이 보였고, 그 바로 벽면에는 아시아 어린이들이 찍힌 사진 작품들이, 맞은 편에는 아만토 마을의 거리를 스케치한 drawing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둘째 날 준과의 인터뷰에서 이 drawing들이 고경일 교수님(상명대 만화디지털 콘텐츠학부)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페의 상징일 것 같은 대나무 가지에는 아마도 이미 이벤트에서 사용했음직한 각자 뭔가를 바라는 문구들이 형형색색의 끈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b) 둘째 날. 7. 10.(화)
우리가 머무르는 어제, 오늘 7시부터 9시까지 天劇キネマトロン에서 리츠메이칸대학 영상학부 졸업 작품 영화 「お父さんですよ♪」(코미디, 38분)를 상영한다는 일정을 탐방 오기 전에 확인하고 보려고 했으나 결국 오늘 상영시간을 놓쳐 버렸습니다. 영화 상영으로도 이용되고 있는 체화당 지하 공간과 비교를 해봤음 했습니다. 상영 중인 상태의 공간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공간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바에서 일을 하고 있는 히로시씨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제는 네팔 아저씨와 미나미씨가 있었는데, 식사 시간대에만 슈카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늦은 밤에는 바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슈카의 실질적인 운영자로 그는 매니저 ‘히로시’라고 합니다. 히로시씨 덕분에 영화관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체화당 지하의 1/5정도로 관객은 20명 정도가 들어서면 꽉 찰 정도로 아주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좁은 공간이라도 확보해서 독립영화 전용극장이라고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그 드넓은 지하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을 둘러보고 나와서 바 운영하느라 여유가 없는 히로시씨에게 미안함을 무릅쓰고 이것저것 아만토 마을에 대한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아만토 대표 준이 옆 공간에 와 있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 보겠다고 했고, 생각지도 않았던 인터뷰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 아만토에 대해서 소개해주십시오.
Jun 아만토는 한자로 天人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곧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텝들이 이렇게 해줬으면 합니다. 이곳의 공식 지명은 나카자키(中崎) 정(町)입니다. 아만토 공동체는 2001년 당시 120년 된 옛날 연립주택을 개조해 카페 ‘살롱 드 아만토’를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그 후 옛날 민가를 리노베이션하여 독립영화전용극장, 공연장, 바를 오픈했습니다. 나아가 서점, 게스트하우스, 라디오방송국을 만들었습니다. 연극, 춤, 미술 등 분야가 다른 아티스트 30여명이 멤버들 간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예술 이벤트를 해왔다. 지금은 갤러리, 건강음식레스토랑, 접골원, 점성치유센터 등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영어 스페인어 등 어학강좌, 서예교실도 진행합니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 할 수 있는 한에서 일한다, 지역주민과 결합한다.”
이것은 아만토에서 저의 활동원칙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기 점포를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처음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는?
Jun 8개월에서 1년 동안 이 마을에서 지내면서 지역주민, 특히 할머니나 어머니들에게 카페를 한다면서 인테리어 자문이나 조언을 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이 버리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함께 카페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 의사결정시스템과 운영원칙
Jun 아만토에서는 아티스트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자기 점포를 운영하고 싶은 20대 청년, 동네 주민들, 50대 후반의 평범한 아주머니들이 다양한 욕구와 방식으로 아만토와 인연을 맺고 자원 활동을 합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 이것이 이들 관계의 원칙입니다. 아만토의 일원이 되는 가게의 경우에도, 까다로운 계약조건은 없습니다.
― 지역화폐
Jun 발행 한 달 뒤면 소멸돼 지역사회 나눔의 선순환을 부르는 ‘아만토 화폐’의 유통 기한은 1개월입니다. 쌓이고 유통이 안 되면 도움이 안 됩니다(저장 기능이 없습니다).
― 준 → 아만토 마을 → 세계...지역과 세계를 함께 걱정하는 정신
Jun 아만토는 일본, 세계 공동체에서의 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동북지역 지진피해지역을 스스로 조사하고, 자원 봉사 버스 투어를 몇 차례 조직했습니다. 지진피해로 붕괴 위기에 처한 일본 동북 지역 조선학교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 하반기에 구상이나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Jun 마을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택시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제작된 택시의 실제 모습 사진을 보여주며) 몇 개 정도 이미 제작이 끝난 상태이며 직장이 없는 젊은 친구들에게 운행을 맡기고 직접 수익을 챙겨가도록 할 생각입니다.
― 정부에서 허가는 받으셨습니까?
Jun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다.
Jun 다음 주에 고경일 교수(상명대 만화디지털 콘텐츠학부)*) 방문 예정입니다. 마지막에 다시 오사카에 온다면 그 때 한번 들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 2010년 1월 오사카에 갔다가 우연찮게 발견했고, 귀국 후 성미산 마을에 아만토를 소개했습니다. 그 이후로 두 차례의 상호 방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그 분은 어떤 일로 방문을 합니까?
Jun 아만토 마을의 여기저기를 그리십니다.
슈카 바 책장에서 「じつは, つながっていた (사실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이라는 준과 아만토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실릴 법한 책을 발견, 500엔 주고 구입했습니다. 대략 뒤적이면서 보니 아만토 마을의 배경과 활동에 대한 내용들이 사진과 함께 담겨져 있는 듯 했습니다. 아만토 공동체는 한국에서 꽤나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특히 최근에 성미산과의 네트워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인터뷰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c) 셋째 날. 7. 11.(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혼자 마을 이곳저곳을 조깅 겸 산책했습니다. 가정집 대문 앞에는 다음 주 마을의 마츠리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여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준이 이 마을사람들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그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체화당도 자기 집 대문 앞에 마을음악회, 마을학교 등 마을 행사를 붙여줄 지역주민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카페가 오픈하기 전에 서둘러 기후로 떠나야했던 우리는 덕분에 잘 머무르다가 갔다는 메시지를 체화당 엽서에 써서 어제 카페 직원과 약속한 카페 앞 우체통 속에 열쇠와 함께 넣고 아만토를 떠났습니다.
3) 탐방 성과
아만토는 한 정치학 교수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체화당과는 그 태생적인 배경이 다릅니다.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 아만토 마을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준의 말은 우리들에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필요’라는 단어를 언급했습니다.
'내 스스로가 체화당을 필요로 했던 적이 있었을까?'
이 질문을 달리 다시 던져보면, 체화당과 내가 같은 꿈을 꾸고는 있었을까? 아니면 체화당에서 내가 그리는 꿈은 있었을까? 그 안에 있는 나와는 별개로 체화당의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저 잘 되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본 가능성은 체화당이 걸어온 역사 속에서 본 것이라기보다는 체화당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의 가능성이었습니다. 가끔 한 자리에 만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선배들은 자신들이 있었던 때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면 그 때 당시가 체화당의 전성기였다며 과시합니다. 모두들 그 당시를 회상하며 체화당은 늘 추억의 안주거리이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추억과 향수의 고향으로만 그 정체성을 확고히 굳혀나가고 있는 체화당은 12년 동안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주인 없는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간단합니다. 현재와 미래에 우리들 각자 삶에서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함께 이곳에서 공부하고 일감을 해 왔던 서로가 만났을 때 어색함을 떨쳐 낼 하나의 이야기 소재꺼리로서만 체화당을 간절히 필요로 할 뿐입니다.
내부 경제를 통해 돌아가는 아만토 마을 시스템. 작년부터 봉원교회 청년부를 대신해서 원룸 축제를 도맡아 기획을 해했던 나는 현실적으로 체화당이 자리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성미산이나 아만토와 같은 마을 만들기는 어렵다라는 판단입니다. Jun처럼 ‘영웅’이 등장한다면 다른 문제이겠지만...
4) 시사점
7,80년대 계몽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운동의 접근 방식은 지금 수정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가끔 아니면 자주 우리는 활동을 하면서 많이 힘들고 지치고 그런 순간에는 왜 내가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으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정도로 깊은 고민에 빠져들면서 활동했던 그 시간들에 대한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 이 활동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June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내 스스로에게 카페 체화당이 필요로 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8년 동안 체화당이 날 필요로 했었지, 내가 체화당을 필요로 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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