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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SEEKER:S Story/*생각공방

[액션프로젝트 #1] 철학 향기 가득한 아카데미를 찾다 / 생각공방



설레는 시작, 철학의 향기 가득한 곳을 찾아


액션프로젝트는 본격적인 해외탐방에 앞서 국내에서 각 팀이 나름의 '주제'와 '테마'를 가지고 유사한 기관을 방문하고 인터뷰를 하며 향후 해외탐방의 방향성을 다듬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한 첫번째 프로젝트로 국내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인문학 공간·아카데미'를 찾아나섰다. 어디를 가야할 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 막막하던 차 "인문학? 그럼 문사철? 이런 걸 가르쳐 주는 곳은 어디 없나?"라는 생각으로 검색창에 '철학'와 '아카데미'라는 두 글자를 입력했다. 맙소사! 그렇게 우리는 철학 아카데미를 만났다.





열린 사유의 공간, 사유를 열어가는 광장


그렇게 우연한 검색으로 만난 철학 아카데미를 찾았다. 경복궁역을 따라 한참 걸었을까. 고즈넉한 골목 한 켠에 '철학 아카데미'라 쓰여지 조그마한 간판이 나타났다. 시민을 위한, 모두를 위한 손쉬운 철학의 이해를 목표로 14년 전 문을 열었던 철학 아카데미는 조금씩 입소문을 타, 이제는 제법 북적이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누구나 수업에서 배운 이야기와 고민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위층에는 제법 어엿한 카페도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박남희 선생님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을 만나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권 :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곳 '철학 아카데미'에 대한 짧은 소개를 부탁드린다. 어떤 동기에서 출발한 곳인지, 만드신 분들은 어떤 분들이신지. 자유롭게 말씀해주셔도 좋다.


박 : 철학 아카데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문학'만을 위한 시민 대학으로 문을 연 곳이다. 우리가 이런 공간을 열게된 이유는 간단하다.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제대로 '생각'할 여유와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인간으로서 놓치지 말아야할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신념, 그런 것들이 철학 아카데미라는 공간을 열도록 만들었다.


정부나 관공서보다도 더 빨리, 그렇게 가장 먼저 '인문학'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한 곳이 바로 이 곳 철학 아카데미이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서 사회 전반에 철학이 가진 힘이 퍼져 나가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는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이다.


손 : 14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철학 아카데미가 이런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움직임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라는 것은 몰랐다. 요즘은 철학 아카데미와 유사한 공간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혹시 다른 공간과 달리 철학 아카데미만이 가진 강점이 있다면?


박 : 철학 아카데미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수준별, 주제별로 다양한 선택을 가능케 해주는, 넓은 강좌폭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전공의 교수님들이 강의를 열어주시고, 또 그 수도 많다. 또 한가지는 바로 수강생의 폭 역시 넓다는 점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 아쉬워하시던 교수님, 어린 학부생들부터 문화·예술계 PD, 은퇴 후 노년을 즐기고 계신 여느 할아버님들, 유명 연예인까지 그 층이 굉장히 다양하다. 강좌와 수강생이 갖는 '다양성'은 그 어떤 공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철학 아카데미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권 : 말씀해주신 것처럼 올라오는 계단과 복도 가득 엄청난 수의 철학자들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강좌 소개 팜플릿을 보며) 여기 안내 자료에도 보면 실제로 굉장한 수의 강의들이 매학기 열리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많은 '다양성'에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수강생들은 없는가? 처음 철학 아카데미를 찾은 수강생들이 나에게 맞는 강좌를 찾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박 : 말씀해주신 부분이 맞다. 혼란스러워하는 분들도 분명 있다. '철학'이라는 걸 난생 처음 접하시는 분도 계시고, 어느 정도 기초 소양이 쌓여서 이 곳을 찾으시는 분들고 계신다. 이렇게 수강생이 다양하기 때문에 강의도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시간별, 대륙별, 전공자별, 학자별 게다가 특강까지 더하면 엄청난 수의 강의들이 쏟아진다. 그래서 처음 찾아오시는 분들은 우리가 한 분씩 상담을 하고, 또 이 곳을 찾을 이유를 여쭤서 적합한 프로그램을 추천해드리고 있다.


손 : 말씀해주신 것처럼 1:1로 밀착 상담과 추천, 지도를 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수강생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계속해서 그런 방식을 이어가기가 어렵지는 않은가?


박 : 물론 어려운 일이다. 이 곳을 찾는 학생의 이름을 하나씩 모두 다 기억하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가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철학 아카데미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강의를 원하는 학생이 단 1명이라도 있으면 폐강없이 수업을 진행한다. 또, 수업 인원도 소규모로 유지해 서로 수업 이후에도 친목을 도모하고 동아리를 만들어서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강의를 진행해주시는 선생님들께서도 스스럼없이 뒷풀이까지 함께 하며 수강생들과 1:1의 인간적인 유대를 끈끈히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꼭 이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권 : '인문학의 위기'를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이런 공간을 운영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을 것 같다. 꽤나 긴 시간 공간을 운영해오셨는데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


박 : 시세에 편승하지 않고, 철저히 수강생에 맞춰진 강의를 구성하다보면 때때로 '돈 안되는' 강의들만 넘쳐나는 학기도 있다. 실제로 여러번 고비도 있었다. 어쩌면 14년이나 이 철학 아카데미가 굴러온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른다. 위기가 닥칠 때면 운영 위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낸다. 강사료라고 쥐어드리는 돈도 그냥 아카데미 살림에 보태라고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이 계셔서 우리도 더 처음 공간을 열었을 때, 그 순수한 마음과 뜻을 잃지 않으려고 더 경계한다. 일례로, 한달에 2번 정도는 "행복한 책읽기"라는 프로그램이나 토요 아카 포럼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무료 행사를 열기도 한다. 그 곳을 찾아와서 제각기의 답을 찾아 돌아가는 분들의 모습이 현실적인 재정 상의 문제, 운영 상의 문제들로 고민할 때마다 떠올라 큰 힘이 되곤 한다.


손 : 이번에는 정반대의 질문이다. '인문학의 위기'와 함께 한쪽에서는 '인문학 트렌드'를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른바 인문학이 '붐'을 맞았다는 거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박 : 글쎄.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가볍고 쉬운 인문학, 트렌디한 인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철학 아카데미는 우리가 걸어오던 길을 그저 우직하게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정통의 방식 그대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나름의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개인이 역사 앞에서, 그리고 각자의 삶 안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비판'할 수 있고 '물음'을 던질 수 있도록 철학이라는 녀석을 잘 소개해드리고 알려드리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권 : 긴 시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철학 아카데미를 찾을, 혹은 찾았던 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박 : 인문학은 결국 '사람을 형성하는 내용'을 다루는 학문이다. 먹고, 입고, 자고 그 모든 것과 관계된 것들. 세상의 모든 사물과 관계된 것들이 인문학이라 불릴 수 있다. 때문에 여러분이 주위에는 인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소재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사람'은 무엇으로 형성되는가라는 질문이 시작된다. 인문학이 별거냐.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또 찾아주시길, 그리고 언젠가 찾아주시길 바란다.




지금 여기, 철학 아카데미를 나서며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기에 더욱 의미있다' 말하는 박남희 선생님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즐거움' 뒤에 묘하게 피어오르는 '씁쓸함'에 더욱 더 생각공방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라는 말이 갖는 무게를 새삼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WRITER 손성호

PHOTOGRAPHER 범유경, 김다진

INTERVIEWER 권은진, 손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