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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소식

[한겨레] 청년들의 도전적 창업, 위험부담은 사회가 맡는다(2015.10.06)

청년들의 도전적 창업, 위험부담은 사회가 맡는다

1. 알토디자인팩토리가 진행하는 ‘부트캠프’ 모습. 캠프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트업의 제품과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알토디자인팩토리 제공

‘스타트업 강국’ 핀란드의 창업 현장 

1990년대 세계적인 강소국으로 부상했던 핀란드. 하지만 2008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실패한 노키아의 몰락은 곧 국가의 위기였다. 노키아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국가 전체 법인세의 4분의 1을 떠맡아온 만큼 핀란드 경제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겨레>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던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도 “노키아의 몰락은 큰 충격이었고, 이제 겨우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핀란드는 기존 대기업 노키아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9월14~18일 소셜벤처들의 사업자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는 ‘소셜앤쿱’이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나 ‘클래시 오브 클랜’ 등이 보여주듯 스타트업 강국으로 알려진 핀란드의 창업 생태계를 찾았다. 이번 방문은 사회적 경제 지원조직 사단법인 씨즈가 주관하고 한화생명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후원하는 청년창업 지원 사업 ‘2015 씨커스(SEEKER:S)-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알토대 ‘디자인팩토리’ 혁신 플랫폼
학제간 융합형 제품개발 실무교육
비영리·기업, 문제 제시·비용 부담
‘글로벌임팩트’ 통한 현지 체험도

정부 ‘기술혁신지원청’ 통해 지원
중소기업에 ‘대기업 R&D 성과’ 나눠
노키아 4천여개 기술 이전 작업중
창업 6년 미만 신생기업 투자 확대

알토대학교가 위치한 에스포시는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 26만명의 핀란드 제2의 도시로, 노키아 본사가 자리하고 있어 ‘노키아의 고향’이라 불린다. 노키아를 비롯해 에릭손, 컴팩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들과 핀란드 국립기술연구센터(VTT), 국립기술혁신지원청(Tekes) 등이 있어 창업을 위한 최고의 입지환경으로 평가받는다. 알토대학교는 2010년 헬싱키 경제대, 헬싱키 디자인예술대, 헬싱키 공과대 등 3개 대학이 합병해 만들어진 학교다. ‘실천을 통한 배움’(learning by doing)을 강조하며 창업을 촘촘히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명성이 높다. 청년 기업가 공동체인 알토기업가정신동아리(AaltoES), 현직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이 직접 창업코치로 참여하고 있는 스타트업 사우나(Startup Sauna), 창업가와 투자자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슬러시 콘퍼런스 등이 대표적이다. 학제간 기술융합형 제품 개발과 제작 중심의 실무교육을 제공하는 알토디자인팩토리는 창업 분야에서 최고의 지원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손꼽힌다.

2. ‘코끼리 수도꼭지’를 사용하고 있는 우간다 어린이들.  알토디자인팩토리 제공
2. ‘코끼리 수도꼭지’를 사용하고 있는 우간다 어린이들. 알토디자인팩토리 제공
알토디자인팩토리는 이름 그대로 공장이었다. 창고처럼 생긴 건물 안에 시제품을 개발하거나 제작 실무를 직접 해볼 수 있는 작업실과 각종 기계가 잘 구비되어 있다. 알토디자인팩토리의 과제는 지구상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곳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티나는 “알토디자인팩토리는 일종의 혁신을 위한 플랫폼”이라며 “상품을 중심으로 한 산업 디자인은 물론 환경오염, 교통·건강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걸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고 설명한다.

이곳에선 매해 공학, 디자인,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부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35~40개의 융합전공과정이 운영된다. 대표적인 게 ‘제품개발 프로젝트’(Product Development Project)라는 교육과정이다. 민간기업이나 비영리단체가 제품에서 사회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알토디자인팩토리에 제시하면 아이템을 선택해 1년 동안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매달린다. 알토디자인팩토리의 교수와 매니저들은 곁에서 학생들의 문제 해결 과정을 돕고, 해당 문제를 제출한 각 기업과 단체는 학생들이 시제품을 개발하는 모든 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한다. 2014년에만 19개의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혁신 시제품은 주로 문제를 제시한 해당 비영리·민간기업에 제공되지만 학생들이 이 솔루션을 기반으로 직접 창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3. 알토디자인팩토리 직원들은 따로 정해진 자리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한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3. 알토디자인팩토리 직원들은 따로 정해진 자리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한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알토디자인팩토리가 유니세프와 함께 만든 손씻기 도구 ‘코끼리 수도꼭지’(elephant tap)는 이 공장의 해결방법 도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보여준다. 유니세프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이 팩토리 소속이었던 이레나는 “우선 팀 전체가 아프리카 우간다로 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현지인의 관점으로 살펴봤다. 그곳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자 아이들의 건강 문제가 눈에 보였다”고 밝혔다. 우간다 학교는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아이들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들은 우간다 아이들이 깨끗한 물로 손을 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알토디자인팩토리 학생들과 유니세프, 우간다 현지의 대학생들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철로 만드는 펌프나 수도꼭지처럼 돈이 되는 재료들은 주민들이 훔쳐가기 일쑤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야 하니 내구성이 높아야 하고, 사용법이 간단하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이들은 우간다와 핀란드를 오가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드럼에 고무꼭지를 달아 손으로 누르면 물이 나오는 코끼리 수도꼭지를 개발했다. 한번 누르면 20초 정도가량 작은 양의 물이 나와 간단히 손을 씻을 수 있다. 다시 잠글 필요도 없어 어린아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우간다 현지 업체와 상용화를 논의 중에 있다고 한다.

알토대 안에는 개도국이나 저개발국 현지의 사회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핀란드 기업과 현지 기업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도 있다. 사회혁신 어젠다를 발굴·연구하고, 소셜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스타트업을 지원·촉진하는 ‘알토글로벌임팩트’라는 기관을 통해 이뤄진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학생들은 스리랑카, 브라질, 페루, 멕시코, 우간다, 남아프리카 등지의 실제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창업 생태계 재편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핀란드 국립기술혁신지원청은 고용경제부 산하 정부기관으로 미래 산업을 발굴하고 신규 창업자들에게 자금과 기술 혁신을 지원하는 곳이다. 주요 업무 중 대기업의 연구기술개발 성과를 벤처와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특히 노키아의 4천여개 미활용 특허 혹은 기술을 이전하는 제반 업무를 진행 중이다. 이미 개발되었지만 잠자고 있는 아이디어들을 활용하고, 자체적인 연구개발이 어려운 벤처나 중소기업에 기술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수익 창출을 기대하는 것이다. 국립기술혁신지원청은 또 청년들의 도전적 창업에 따른 위험을 사회가 부담한다는 취지로 창업 6년 미만의 신생기업에 대한 자금 투자를 확대해왔다. 이곳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에바는 “경쟁력을 갖춘 역량 있는 기업을 선정하는 내부 과정은 매우 엄격한 편”이라면서도, “장기적인 연구개발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해 개별 기업의 위험은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자금 투자 원칙을 강조했다. 이번에 동행한 씨커스 프로그램 책임자 ㈔씨즈 최예지 팀장은 “청년들의 다양한 상상과 실천이 가능해지도록 대학과 정부기관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서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잘 살펴 한국의 창업 생태계 혁신에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에스포/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obo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