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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소식

[한겨레]도시재생은 시민 손으로…‘1유로의 기적’은 어떻게 이뤄졌나 (2019.08.19)

[더 나은 사회] 네덜란드 도시재생 현장 가보니
로테르담 ‘발리스블록’ 재생 프로젝트
입주자들이 리모델링부터 운영까지
사회혁신 실험실 된 ‘드커블’ 지역
시민들의 참여와 책임이 성공 열쇠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로테르담 169 클뤼스하위전’ 주택 전경. 2004년 로테르담시는 단돈 1유로에 주택을 시민들에게 매매해 입주자들이 직접 리모델링을 설계하고 비용까지 부담하게 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민들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도시재생을 꾀하는 사단법인 ‘어반베이스캠프’가 ‘2019 씨커스(SEEKER:S)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 프로그램에 참가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네덜란드 도시재생 현장을 찾았다. ‘2019 씨커스(SEEKER:S)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 는 사단법인 ‘씨즈’가 2011년부터 진행해온 청년 사회혁신가들의 해외 혁신 사례 탐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한화생명이 후원하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도 씨즈의 후원으로 동행 취재를 다녀왔다.

 

‘현대 건축물의 전시장’으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중심부에서 트램을 타고 서쪽으로 10분 남짓 달리면 나지막한 주택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발리스블록 거리가 나온다. 방학을 맞아 또래들과 한창 놀이에 빠져 있는 대여섯살 꼬마들과 유모차를 몰고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하는 젊은 여성들…. 여느 주택가나 다름없는 평범한 풍경이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사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만일 단돈 1유로(약 1300원)에 당신 집을 가질 수 있다면? 스팡언 지역의 변신은 아마도 황당하게 느껴질 법한 1유로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로테르담 서쪽에 위치한 스팡언 지역은 오래전부터 마약 거래, 매춘 등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범죄율도 무척 높았다. 로테르담시는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으로 모두 9곳을 지정했고, 스팡언도 포함됐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은 진척이 더뎠다. 시 정부가 지역 땅을 매입해 개보수 후 시장에 내놓았으나, 사려는 사람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땅 매입을 위해 무리하게 재정을 투입한 부작용으로 사업이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해법이 없을까? 정부도, 민간기업도 손뗀 이 지역을 살리기 위해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가장 큰 걸림돌인 개발비용 문제도 시민들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1유로에 집을 사세요.’ 로테르담 지역방송에 실린 광고 문구다. 로테르담 ‘169 클뤼스하위전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무상으로 집 주는 복지사업 아냐”

“정부가 만든 표준화된 거리나 주택보다는 가족이 살 집, 이웃과 함께 사는 동네를 내가 직접 만드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겠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티 블룸 매니저는 프로젝트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시민이 주도한 로테르담 169 클뤼스하위전 프로젝트가 무상으로 집을 제공하는 복지사업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1유로로 집을 장만하는 대신 입주자들은 공사 진행과 관련 비용을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수리에는 적잖은 비용이 들어갔다. 첫 입주자 공고가 나간 직후 지원자가 400명 넘게 몰렸지만, 최종적으로 42가구만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주자들은 건물 외벽 보수부터 공용 공간인 정원 리모델링, 입주 가구별 공간 배치까지 모두 함께 결정하고 진행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정사각형의 오래되고 낡은 4층짜리 건물 169개로 구성된 주택단지는 공용 공간인 정원을 둘러싼 42개의 다양한 주택 공간으로 바뀌었다. 건물 모양만 변한 게 아니다. 건축가와 예술가 등 젊고 창의적인 거주자들이 몰려오자, 스팡언 지역의 이미지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적 없이 스산했던 거리에선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학교와 공원 등 관련 시설도 하나둘 들어섰다. 그로부터 10여년. 클뤼스하위전은 지역주민들이 가장 살고 싶은 주거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초기 입주자들이 떠난 자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입주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2007년 완공 당시 4층짜리 주택 기준 평균 시가가 30만유로였던 클뤼스하위전 한 채 매매가격은 현재 70만유로로 2배 이상 올랐다. 최근에는 위트레흐트, 암스테르담, 덴하흐(헤이그) 등 다른 도시에도 ‘제2의 클뤼스하위전’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시민 주도로 도시재생이 진행됐다는 점은 성공 비결 가운데 첫손에 꼽힌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했다는 입주자 베르트 시싱흐는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다양한 공간과 입주민들의 우호적인 사회관계망을 강조했다. “클뤼스하위전은 입주민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나 규율이 따로 없어요. 입주자들이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가 공간을 소유하고 책임진다는 가치가 아직도 남아 있죠.”

암스테르담 북쪽에 위치한 드커블 카페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14년 문을 연 드커블은 민간기업들이 오염된 폐조선소 부지를 친환경 기술을 활용해 창조적 산업 공간으로 일궈낸 대표적인 시민 주도적 도시재생 사례로 꼽힌다.

 

버려진 배 위에 꾸며진 ‘선상 사무실’

네덜란드 곳곳에선 시민 주도의 도시재생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로테르담에서 70㎞가량 떨어진 수도 암스테르담에도 시민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협력으로 탄생한 도시 공간이 있다. 오래전 암스테르담 운하를 누볐을 다양한 모양의 선박들이 모여 있는 친환경·창조적 사무공간 드커블이 그 주인공. 드커블의 설립 배경도 로테르담 169 클뤼스하위전과 비슷하다. 2000년대 초 폐업한 조선소 부지였던 드커블 지역의 재생 방안을 두고 고심하던 시 정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정부가 내건 조건은 단 두 가지.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지역을 정화하고, 창조적 작업 공간이 되도록 할 것’이었다. 정부는 그 대가로 10년간 380여평의 공간을 무상임대하고 20만5천유로(약 3억6천만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까다로운 조건에다 적은 혜택 탓에 공모에 지원한 팀은 건축회사 스페이스앤매터와 친환경기술 경영컨설팅 업체인 메타볼릭뿐이었다. 집 한 채 짓기도 부족한 예산으로 선박유와 중금속으로 뒤범벅된 오염된 땅 위에 사무실을 새로 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들이 생각해낸 방안은 버려진 배 위에 사무실을 꾸미는 ‘선상 사무실’. 오염된 땅을 정화하기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배를 땅 위에 세워 사무실로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아이디어는 열매를 맺었다. 운하가 많은 네덜란드에서는 개인 소유 보트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쓸모없는 보트를 폐기하는 데만 우리 돈으로 약 400만원의 비용이 든다. 두 회사는 사무공간으로 쓸 보트를 1유로에 매입하겠다는 광고를 냈다. 폐기 비용으로 골머리를 앓던 보트 소유자들이 너도나도 호응하고 나섰다. “이곳은 암스테르담 센터와 대중교통으로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아요. 우리가 내세웠던 연간 임대료도 1㎡당 약 65유로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요. 무엇보다도 선상 사무실을 내가 직접 꾸미고 개발한다는 점이 스타트업 기업가와 예술가들에겐 재미있고 혁신적인 도전으로 다가왔던 거죠.” 드커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메타볼릭사의 마르크 더호프 매니저는 입주자 모집이 쉬웠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4년 16채의 선상 사무실로 문을 연 드커블은 단순 사무공간이 아니라 사회혁신 실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오염된 토양과 오수는 정화 기능을 가진 특수 식물과 친환경 기술로 처리되고, 공용 카페 대중화장실에서 수집된 소변은 카페 2층의 식물들을 키우는 데 사용된다. 이밖에도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해 공급하고, 남은 에너지를 사무실별로 거래하고 암호화폐로 전환해 공용 카페에서 사용하게 하는 ‘암호화폐 줄리에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모두가 드커블에 입주한 기업들이 낸 아이디어다. 드커블을 사회혁신의 거대한 실험실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드커블 선상 사무실의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드커블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20%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사무실별로 생산하고 소비한 전력을 데이터로 기록해, 쓰고 남은 전력은 사무실 간에 거래도 가능하고 암호화폐로 전환해 드커블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게끔 했다.

 

“드커블의 실험은 현재진행형”

여분의 인력과 자원 투자가 필요한 이런 실험들이 활기차게 진행되는 이유는 뭘까. 더호프 매니저는 “아이디어만 제안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직접 실현 가능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커블이야말로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게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입주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드커블이 사회혁신의 사회적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한몫했다. 드커블 입주사들을 드커블 운영 협의회를 조직하고 해마다 운영이사진을 투표로 선출한다. 이들은 다달이 드커블 입주사 회의를 열어 운영 및 관련 행사를 기획하는 일 등을 맡는다. 운영이사 외에 일반 직원들도 매주 최소 4시간씩 드커블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안내하거나 드커블 공용공간 청소 및 행사 지원 등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드커블은 현재 새로운 도전과제와 맞서고 있다. 청년들이 이 지역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집값과 사무실 임대료가 상승했고, 결국 거주자들이 지역을 떠나는 ‘둥지 내몰림’의 조짐이 나타나서다. 입주사들은 지역과의 연대 강화에서 해법을 찾으려 한다. 드커블 카페 공간을 활용해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연다거나, 가구나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주민들이 드커블 카페에서 입주사들에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게끔 지원하는 등 주민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지역의 변화를 꾀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은 드커블의 핵심 가치예요.” 더호프 매니저의 입에선 “드커블의 실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네덜란드)/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

기사원문: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062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