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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SEEKER:S Story/*생각공방

[해외탐방프로젝트 #2] 문화센터로 거듭난 도서관, 아이디어 스토어 / 생각공방



공립도서관의 고민


한국인의 독서시간이 전 세계적으로도 짧은 편이라는 신문 기사를 우리는 자주 접하곤 한다. 실제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책을 읽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길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한국에는 독서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어있지 못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의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인지도가 낮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것이 주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하는 공립도서관의 고민은 영국 런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런던의 타운 햄릿 지역에는 해외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고 지역 주민들의 소득 또한 낮은 편이었는데, 1998년 시행했던 시민들에 대한 도서관 이용 조사에서 당시 공립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던 것이다. 타운 햄릿 의회는 당시 여론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영국의 문화미디어스포츠부에 타운 햄릿 지역의 새로운 도서관 건립에 대한 계획을 제출했고, 이를 통해 예산을 지원받아 설립된 것이 오늘날 타운 햄릿 지역의 공립도서관인 아이디어 스토어Idea Store였다. 서울로 치면 하나의 구區 정도에 해당하는 타운 햄릿 지역이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공립도서관의 혁신을 꾀하고,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 대한 서비스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었다는 점은 <생각공방>팀의 눈길을 끌었고, 런던에서의 두 번째 탐방 장소로서 직접 찾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주민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1998년에 시행되었던 설문 조사에서 타운 햄릿 주민들의 98%는 도서관 서비스가 삶에 있어 중요하다고 답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당시 타운 햄릿 지역의 도서관들이 낡았으며 서비스의 질또한 좋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는 실제로 타운 햄릿 지역 주민의 70% 이상이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추세로 나타났다. 타운 햄릿 의회는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던 지역 주민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요구받았다.


1) 도서관 개방 시간을 늘릴 것

2) 쇼핑 공간과 근접한 위치에 있을 것

3) 지역 의회 의정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할 것

4) 일요일에도 개방할 것

5) 예술작품 전시를 병행할 것

6) 비디오 대여 서비스를 제공할 것

7) 양질의 도서를 제공할 것


요구사항들을 살펴보면, 타운 햄릿 주민들은 공립도서관이 평소 주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생각공방>팀은 이런 요구사항들이 공립도서관의 혁신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을지를 궁금해하며 아이디어 스토어 화이트채플Whitechapel관을 찾았다.


아이디어 스토어 화이트채플관은 우리가 방문하기 위해 이용했던 지하철 역을 나오자마자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기관 담당자인 세르지오 도글리아니Sergio Dogliani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손 : 한국에도 공공 도서관은 많이 건립되어 있는 편이지만 이곳 아이디어스토어와의 주요한 차이점을 꼽자면 쇼핑공간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는 것이 다를 것 같다. 주민들의 쇼핑 공간과 가까운 곳에 아이디어 스토어를 건립한 뒤 방문객 수가 증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러면 방문객들이 공립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겼나?


세 : 아이디어스토어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조사의 결과를 기반으로 진행된 것이기에,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점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주민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하던 1998년 당시에는 런던에서 타운 햄릿 지역이 도서관 서비스 수준이 가장 떨어지는 곳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던 것이 주요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으레 도서관에 책이 더 많기를 바라거나, 더 오랫동안 개관하기를 바라거나, 인터넷 접속이 잘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당시 여론조사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던 경향은 바로 주민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오가는 경로에 도서관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1998년 당시에 타운 햄릿 지역에 있던 공립 도서관들은 대개 골목이나 정원, 공원 근처에 있었고 대로변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도서관에 찾아가는 데 번거로움을 느낀 것이다. 

  그 외에도 아이디어 스토어가 그 전의 공립 도서관과 비교했을 때 추가되거나 개선된 점들이 많다. 도서관 안에 카페 공간, 미술 전시관 등을 마련하고 도서관 서비스와 함께 평생 교육 서비스도 아이디어 스토어에서 제공하게 된 것이다. 특히 성인들 중 추가 교육을 받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 더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평생교육 서비스의 수요가 높은 편이었다. 여기에 개관 시간을 연장하여 일주일 내내 개방하는 등의 조치들이 합쳐지니 이제는 아이디어 스토어 건립 이전과 비교해 약 4배에 달하는 숫자의 주민들이 타운 햄릿 지역에서 공립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었다.


손 : 도서관의 수가 아이디어 스토어 건립 이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렇다면 도서관에서 일하던 전체 직원 수도 함께 줄어든 편인가?


세 : 실제로는 증가했다. 아이디어 스토어 이전에는 타운 햄릿 지역에 13개의 도서관이 있었는데, 단순히 갯수로만 따지면 타운 햄릿은 런던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도서관이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도서관들 중 일부는 규모가 대단히 작았고, 충분히 오랫동안 개방하지도 않았으며 서비스의 질이 높지 못해 책 창고 이상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래서 기존의 공립 도서관들을 아이디어 스토어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의 수 자체가 절반 가량으로 줄었지만, 실제로는 더 오랜 시간동안 개방하고 도서관의 규모 각각이 커지면서 방문객의 수도 함께 늘어나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직원이 필요해졌다. 아이디어 스토어가 처음 개관했을 때에 비해 지금은 직원의 수가 약 30% 가량 늘어났으며, 도서관 직원 외에도 강사나 수업 관리 매니저등을 고용하기도 하였다.



손 : 아이디어스토어가 대학생 이상의 성인에게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중 일부의 소개를 부탁드린다.


세 : 학습과 독서가 대단히 밀접한 연관이 있음에도 그동안 영국에서는 학습 운동과 독서 운동이 함께 한 적이 별로 없었고, 우리는 아이디어 스토어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그 시도를 해보기로 하였다. 지금은 아이디어 스토어 화이트채플관에서 매년 약 900여개에 달하는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종류는 아프리카 댄스, 발레와 같은 춤 강좌부터 기타나 드럼 같은 음악 강좌, 경영 강좌, 포토샵 활용 강좌, 디자인 강좌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 강좌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대단한 인기가 있어서 매년 만 천여명이 등록하고 7~8천명이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교육의 기회 측면에서 타운 햄릿 주민들에게 많은 변화의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 : 처음 아이디어 스토어Idea store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도서관이나 지역 회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립 도서관의 이름을 '아이디어 스토어'라고 짓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세 : 1998년 설문조사를 했을 때 타운 햄릿 지역 주민들의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지역에는 이민을 온 다양한 민족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아시아나 남부 아프리카 출신이고 특히 방글라데시 출신 이민자들이 이 지역 인구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했는데, 그들에게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고등 학업 교육 시설로서의 인상을 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지역 주민들중 상당수가 '도서관'의 이름 때문에 스스로 심리적인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이는 곧 공립 도서관이 실제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알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도서관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를 새로 고민해야 했다.

  아이디어 스토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도서관 서비스뿐만이 아니었기에,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뒤에 붙여서 사람들이'책'만을 떠올리게 하는 일은 피해야 했다. 시설에서 새로운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그 의미를 너무 한정짓지 않기 위한 단어를 고민하던 중 '아이디어'를 붙이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유럽의 언어들 대부분에서 그 발음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단어 그 자체로 간단하고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한편 그 뒤에 붙은 '스토어'는 미국에서 주로 '가게'를 의미하지만 영국에서는 창고로서의 의미도 담고 있는 단어였기에 기술을 배우고 지식을 얻어가는 공간의 성격을 나타내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영국의 일부 도서관 관계자들은 이름에 '도서관'을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우리 시설을 '아이디어 스토어'라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성공한 실험, 그러나 끝나지 않은 변화


아이디어 스토어는 지역 주민들에게 질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방문객의 숫자를 획기적으로 늘린 대표적인 사례였다. 화이트채플관의 컴퓨터실, 아동용 도서실 등을 견학하며 <생각공방>팀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시설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디어 스토어에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디어 스토어는 방문객의 증가와 교육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이 아이디어 스토어의 원래 역할이었던 도서관으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가 분명히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세금으로 이뤄진 국가 예산을 받아 건립되고 운영되는 공립 기관이기에 지역 주민들의 수요에 집중하다 보니 역사나 철학 등의 인문학 강의는 거의 개설되지 않고 대부분 실용 기술이나 기타 취미 강좌 위주로 운영되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이디어 스토어는 1998년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가 설립의 주요한 동기로 작용했고, 이후 10년이 지난 2008년 다시 설문조사를 실시한 뒤 운영 계획을 수정하고 개선하였다고 한다. 오랜 시간 지역 주민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꾸준히 노력하는 공공기관의 자세에 감명을 받은 <생각공방>팀은, 앞으로도 아이디어 스토어의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기를 희망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디어 스토어 / Idea Store

  위치 321, White Chapel Road, London E11BU,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20-7364-4332

  홈페이지 http://www.ideastore.co.uk


WRITER 박창현

PHOTOGRAPHER 박창현, 권은진

INTERVIEWER 권은진, 손성호, 박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