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 SEEKER:S Story/*훌라

[해외탐방기] 훌라(2) 로마: 산 로렌조 자유공화국 LIBERA REPUBBLICA DI SAN LORENZO, 누오보 시네마 팔라쪼 NUOVOCINEMAPALAZZO

화요일마다 어셈블이 열린다는 단서를 붙잡고 이동한 '산로렌조 누오보팔라쪼'에 도착했다.

 

 

심각하게 논쟁 중인 어셈블하는 모습을 보며 옆에서 기다렸다. 한국에서 발송했던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우리의 소개와 인터뷰지를 들고 관계자와의 접촉을 진행했고, 로마에서의 인터뷰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중요한 스쾃공간들도 소개해준 에밀리야, 이탈리아인이 아님에도 로마 산로렌조의 스쾃에 감명 받고 멤버가 된 미국인 역사전문가 패트릭, 인류학자 스테파노와도 연결됐다. 

 

우리의 keywoman이 되어주었던 에밀리야 :)


 

※아래는 산 로렌조 자유공화국 멤버 패트릭과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했다.

 

반 파시스트 투쟁과 학생운동의 상징 "산 로렌조"

- 로마역(테르미니역) 북쪽에 위치한 지구다.

 

140년 전만 하더라도, 로마는 이탈리아가 아니었다.

로마는 '교황의 도시', 교황령이었지만

1880년대 후반, 이탈리아가 통일 될 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듯, 이탈리아의 수도로 지정되었다.

 

수도에 걸맞게 도시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로마에는 철도 노동자, 석공을 비롯한 많은 육제 노동자와 장인들이 이주해 왔는데,

이들이 모여살던, 열악한 재료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건설된 주택이 모여있던 곳이 산 로렌조다.

 

이주 노동자들의 서민지구로 형성이 되었지만,

현재는 "반 파시스트 투쟁""학생운동"의 상징으로 인식 되고 있다.

 

그 이유는,

1922년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기 위해 로마 진군을 강행했을 때,

로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무솔리니의 로마 행진을 막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7만 명이 모여 행군을 막았는데, 이때 주민 13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다쳤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무솔리는 로마 진군에 성공하긴 했지만,

산로렌조는 이때부터 '반 파시스트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로마 폭탄 테러 당시 산 로렌조

또한 산로렌조는 세계 2차 대전때, 연합군에 의해 폭격 당한 곳이다.

 

2차 대전 당시, 전 세계적으로 도심지를 직접 폭격 당한 곳은 몇 없었다.

그런데, 로마는 그 중 가장 첫 번째로 폭격당한 도시로, 이 사건은 로마 폭탄 테러라고 불리고 있다.

 

주로 로마역(테르미니역)을 중심으로 폭격되었고,

전체 사망자 3,000명 중 1,500명이 산 로렌조 주민이었을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다.

무엇보다 로마는 '교황의 도시'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전쟁 피해가 없으리라 예상했던 민간인들에게는

정신적인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로마 폭탄 테러 사건은 무솔리니 정권 실각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했다.

 

폭격 이후 산 로렌조에는 집시, 매춘부, 시골에서 온 가난한 이민자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그로 인해 다른 지구에 비해서 땅값이 싸고, 또한 버려진 건물도 많아

1960년대 후반, 가난한 학생들의 학생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학생 운동의 중심지가 된 후, 학생들이 많이 오게 되자

술집과 레스토랑 등의 다양한 유흥시설 또한 함께 자리 잡게 되었고

현재에도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가 산 로렌조 지구에 있기 때문인데,

이 대학교는 1300년대에 로마에서 최초로 세워진 대학교이며,

유럽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고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상하이의 자오퉁 대학 다음으로 학생 수가 많은 규모가 큰 대학교이다.

이 영향으로 지금도 산 로렌조의 상점가들은 트렌디하며, 거리는 스트리트 아트로 넘친다.

 


 

산로렌조 '자유 공화국 독립 선언'

 

산 로렌조 자유공화국이란?

반파시스트 정신과 학생 투쟁의 정신을 이어 받아, 지역을 시민들에게 해방시키고 미친 투기 프로젝트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도박장이 될 뻔한 지역의 오랜 극장을 누오보 시네마 팔라쪼 Nuovo Cinema Palazzo’라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2013년 독립선언으로 통하여 자유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사익에 의해 민영화 되거나 관리될 수 없는 자원(, 문화, 도시의 자연, 네트워크, 광장, 공공 공간 등)공동으로 관리하고 공공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활동을 확장했으며 반 파시스트, 반 금지 주의, 반 인종차별주의를 선언하여 동일한 이상과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단체와도 연합하고 있다.

투기 프로젝트와 싸우는위원회로써 매주 화요일마다 집회를 열고 있으며, 씨네마 팔라쪼를 비롯하여 popula gym, Fondian Bastianelli, Grande Cocomero, Esc 및 인근 스쾃 공간들과 연대하고 있다.

 


 

누오보 시네마 팔라쪼

누오보 시네마 팔라쪼 극장 공간 & 우릴 적극적으로 안내해주던 연극관계자와의 인터뷰 중

앞서 언급했듯, 누오보 시네마 팔라쪼는 이 지역의 극장이었으나 장사가 잘 안 되면서 당구장이 되었다가, 이후에 마피아에게 팔려서 도박장이 될 위기에 놓였던 공간이다. 당시 이를 두고볼 수 없었던 지역주민들이 이를 막기위해 점거했고, 경찰들까지 와서 주민들을 끌어내고 폐쇄하려 하여 스쾃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간이 구축됐다.

 

"경찰들은 5년전부터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도 더 이상 이곳에서 대치하면서 잠을 자며 지키진 않는다.

우리는 이웃에 긍정적인 효과를 끼치는 일들을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마약이나 알콜중독 문제가 있기도 한데,

우리는 이 공간 덕분에 많은 문화활동들을 해 나가고 있으며

이런 활동을 두고 경찰에서는 좋게 평가하고 있다. "

 

 

이 공간은 지역회사 소유였지만, 마피아에게 팔렸고, 여전히 마피아에게 법적 소유권이 있다. 법적 소유권자들의 요청으로 로마 의회에서는 점거자들을 내보내려 5년 전에 법적 소송을 걸었는데 이탈리아는 소송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

소유권자는 이들을 내쫓고자 하지만, 의회와 판사는 여기서 하고 있는 이들의 활동이 지역공동체에 좋은 활동들이므로 일시적 점거 권한을 준 상태로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시민들을 위한 공유공간

1

매주 화요일마다 어쎔블을 열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 공연, 모임등이 이뤄진다

또한 작은 식당이 있어서 함께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남아메리카의 난민들에 관한 사진전시를 하고 있었고,

그날 저녁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연극 연습이 예정돼 있었다.

 

 

2

라디오 스튜디오와 작은 서가가 마련되어 있다.

인근의 사피엔자 대학은 수업이 끝나면 학생에게 조차 공간을 개방하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을 케어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서관도 작아 지역 대학 내에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공부할 충분한 공간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이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공유공간으로 2층 서가를 개방하고 있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운영방식

 

"누구도 리더 역할을 맡지 않는다."

이곳에는 2개의 그룹이 있다.

(1) 젊은 그룹

- 누오보 시네마 팔라쪼를 스쾃하는 그룹이다. 최근 5년동안 경찰이 오지 않아 이제 그들도 여기서 잠을 자며 지키지는 않는다.  경찰이 들이닥치기도 했던 그 시절에는 여기서 숙식을 해결하며 공간을 지켜냈다.

 

(2) 산로렌조 이웃들이 활동하는 그룹

- 1946년도 산로렌조 폭격을 기억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논의를 통해 많은 활동들을 조직하고 거리에서 뮤직페스티벌을 연다거나 하는 이웃들과의 많은 활동을 한다.

이게 산로렌조 자유공화국의 활동들이며 이는 나를 비롯해 이곳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이 장소에 와서 어쌤블을 통해 함께 하는 일들이다.

 

이 위원회에는 대표도 없고 모두가 평등하다.

 

자금은 기부금을 내거나 사용자들로부터 보통 5유로 정도 사용비를 받아 전기세라던가 기본적인 비용을 충당한다.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돈이 필요없다.

 

여전히 도시를 지켜내기 위해 저항중인 산로렌조

현재 갈리아 공원 보호를 위한 저항운동을 5년째 진행하고 있다이곳을 공원이 아닌 주차장으로 바꾸려는 시의 계획에 대한 반대이며어제도 이 문제를 주장하기 위해 모임을 했다. 공원-주차장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니, 이젠 5성급 호텔을 짓겠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 호텔을 짓는다면 보기엔 아름다울지 모르나, 그곳이 외부인과 부동산 소유주를 위한 것이지 동네와 이웃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 않은가.

촛불행진이라던가, 자가 공간관리라던가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공공공간으로서의 공원을 지켜내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또한 이와 유사하게 땅 투기에 반대하는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활동들을 펼쳐나갈 것이다.

 

패트릭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우린 다음 인터뷰 약속을 잡았던 스테파노와의 만남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산로렌조 자유공화국의 케이스에 감명을 받고 그 소속이 된 비이탈리아인의 시선으로 본 패트릭의 이야기에 이어,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스쾃과 이탈리아의 현상황을 이어서 연구한 스테파노의 시선은 분명 또 다른 시사점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