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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SEEKER:S Story/*생각공방

[해외탐방프로젝트 #5] 독서문화의 심장, 서점 탐방 / 생각공방

영국 소프트파워의 핵심, 독서문화


영국은 2011년 잡지 <모노클Monocle>이 선정한 소프트파워 1위 국가였다. '소프트파워'란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조셉 나이Joseph S.Nye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로 교육, 학문, 예술 등 인간의 이성 및 감성적 능력을 포함하는 문화적 영향력을 뜻하는 말에 해당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옛날의 영광이 지나간 후에도 영국이 강력한 문화적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영국에 깊게 뿌리내린 책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들을 비롯한 각종 문학, 사회과학, 철학 분야의 고전들부터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등의 판타지 소설까지, 영국인들은 책을 통하여 문화적 소양을 기르고 국가적 자존심을 유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독서문화가 나라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서점을 적극 이용하는 풍토를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런던에는 블랙웰즈Blackwell's, 워터스톤즈Waterstones, 해처즈Hatchards 등의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한편으로, 특정 분야의 도서만을 다루거나 고서적들만을 취급하는 소형 서점들도 활성화되어 있어 어디에서건 쉽게 책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런던의 서점들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이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저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독서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도서관, 서점, 저자 강연회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런던에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독서를 많이 하게 되고, 그만큼 시민들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도 더욱 고양되는 것이다.


원래 척박했던 기반에 인터넷 도서구매의 등장, 한국인들의 전자기기 이용 시간 증가 등이 겹쳐 더욱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책문화를 몸소 느껴왔던 <생각공방>팀은 영국의 독서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생각공방>팀은 런던의 고서점들이 늘어서 있다는 세실 코트Cecil Court 거리를 비롯하여 블랙웰, 워터스톤즈 등 런던에 자리잡은 대형 서점들을 견학할 계획을 세웠다.



비슷한 듯 다른 대형 서점들의 매력



<생각공방>팀은 런던에 있는 대표적인 대형 서점들인 블랙웰, 워터스톤즈, 해처즈를 순서대로 둘러보았다. 서점들은 모두 5~6층에 달하는 건물 전체에 도서들을 구비해 놓고 있었으며,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를 비롯해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분야별로 다양한 서적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서점의 지하나 꼭대기층에는 방문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 저자 강연회나 전시회 등이 열릴 수 있는 강당과 같은 공간들도 갖추어져 있었다.



방문했던 서점들 모두가 각자의 구조와 디자인을 가지고 방문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공통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책을 직접 읽어본 사람들이 활자나 직접 쓴 글씨를 통해 그 책을 추천하는 쪽지들이 서가에 붙어있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는데, 특히 책의 독자가 직접 쓴 듯한 추천사들은 그 사람의 책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각자의 글씨체를 보며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였다. 또한 서점마다 유명 작가들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고 저서 사인회 등을 적극적으로 개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방문객들에게 서점에 자주 찾아오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저자와 독자들 사이의 소통을 다양화하고 심화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해 보였다. <생각공방>팀이 워터스톤즈를 방문했을 때에는 마침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자 강연이 공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 대형 서점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운영방식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역사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블랙웰 서점의 경우 본래 옥스퍼드 지역에서 학술서적 전문 유통업체로 시작했다가 런던까지 자리를 잡게 된, 13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워터스톤즈는 1982년에 설립되어 <생각공방>팀이 견학했던 세 서점들 중 역사가 가장 짧았지만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서점을 런던에 보유하고 있었으며, 해처즈는 1797년에 설립되어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한편 그 명성 덕분에 <해리포터>의 저자인 조앤롤링을 비롯한 많은 유명 저자들이 사인회를 열기도 하였다. 해처즈는 현재 워터스톤즈가 그 운영을 맡고 있으나, 처음 설립된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운영을 하며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저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등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역사의 숨결을 손끝으로 느끼다, 고서점 거리


런던에는 고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고서점들이 늘어서 있는 세실 코트라는 거리가 있다. 이 거리에는 점성술과 명상 관련 서적 및 물품을 다루는 서점, 오래된 도서들의 초판본만을 소장하고 판매하는 서점 등 일반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든 책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생각공방>팀은 영국의 고서점들이 소장한 책들이 궁금해져 세실 코트에 직접 찾아가기로 하였다.



<생각공방>팀이 세실 코트에서 탐방한 서점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피터 엘리스Peter Ellis 서점이었다. 이 서점은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서적을 비롯한 대부분의 책들의 초판본을 위주로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생각공방>팀은 이 곳에서 영국의 유명 여성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lf가 1922년 직접 사인했던 <제이콥의 방Jacob's Room>과 1653년 발행된 <아스트로노미카Astronomica>를 눈앞에서 직접 보는 진귀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오래된 서적들이 가지는 가치를 알고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영국인들의 문화에 감탄하면서도, 식민지 통치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유산과 서적들을 잃어야 했던 한국의 안타까운 역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행복했던 탐방에 이어 더욱 깊어진 고민


기본적으로 책을 판매하는 역할을 지닌 서점들을 둘러보았을 뿐인데도, 그 규모와 운영 방식으로부터 영국의 독서문화가 얼마나 넓고 깊게 뿌리내려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인들에게 서점이란 단순히 책이 판매되는 공간을 떠나 저자와 소통하고, 오래된 책의 종잇장에서 수백 년에 걸친 역사를 느끼며, 내부에 마련된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독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종합 문화공간이었다. 영국의 대형 서점들을 둘러본 경험은, 한국에 있는 세련된 모습의 대형 서점들은 과연 방문객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서점 탐방이 영국의 독서문화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모두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서점도 기본적으로는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의 수요가 있어야 비로소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에, 인터넷을 통한 도서 판매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시내의 대형 서점들이 이만큼 유지될 수 있는 데에는 중장년층의 종이책 사랑이 꾸준했던 것도 한 몫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특히 아직까지 전자기기라는 매체의 한계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키우며 종이책의 지위를 위협하는 e북을 영국 서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독서 매체의 변화에 대한 앞으로의 대처 방향은 구체적으로 어떤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블랙웰즈 / Blackwell's Bookshop

  위치 100 Charing Cross Road, London WC2H 0JG,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20-7292-5100


워터스톤즈 / Waterstones Booksellers

  위치 203-206 Piccadilly, London W1J 9HD,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20-7851-2400


해처즈 / Hatchards

  위치 187 Piccadilly, London W1J 9LE,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20-7439-9921


포일즈 / Foyles

  위치 107 Charing Cross Road, London WC2H 0DT,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20-7437-5660


피터 엘리스 / Peter Ellis

  위치 18 Cecil Court, London WC2N 4HE,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20-7836-8880


WRITER 박창현

PHOTOGRAPHER 손성호, 권은진

INTERVIEWER 권은진, 박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