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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Globalwork Story/탕탕탕(공정여행)

[개별탐방 서홍근] 발리를 발로 걸으며 느낀 이야기.



가끔이지만 나는 무식할 정도로 고지식하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특히 나 자신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서는 정말 유연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면도 제법 있는데..

이 날은 정말 많은 감정이 들었던 날이었지.

"발리를 발로 걷겠습니다." 이게 우리 팀의 각오였었다.

평소에는 아해들과 함께 탐방일정을 해야하니 개별 여행때 한번 제대로 걸어보자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내가 세운 계획은..
아멧에서 해안을 따라서 걷기 시작해서 약 100km의 거리를 한 3일만에 걸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자는 생각.

4일동안 머물렀던 Jos homestay에서 나침반과 지도를 들고 해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전날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왔었던 아멧의 끝자락까지는 뭐 별탈 없이 잘 걸어왔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지.

아멧을 벗어나고부터 등장하는 마을들은 말 그대로..흔히 말하는 쌩깡촌 어촌마을이다.
외국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
우리나라에서 예로 들자면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궁촌항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나.
(삼척의 궁촌항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건 아니다. 그곳에 대한 나의 기억은 정말 깡촌 어촌마을이라서 그런것일뿐)

삼척의 궁촌항에 서양사람이 나타났다면? 관심이 집중되는건 당연하겠지?

내가 발리 동부를 걷고 있을때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아. 내가 외국인이다보니 신기해 하는구나.
영어라고는 정말 헬로우 이 한 단어만 통하는 그런 곳.

알고 있는 모든 인도네시아어를 동원해서 인사를 하고 소개를 하며,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중간중간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나도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

그런데 문제는 혈기왕성한 젊은 녀석들이었다.

정말 깊숙히 들어와서 다시 되돌아 갈수도 없는 그런 애매한 위치에 와 있을때쯤 일거다.

내가 마을과 마을 사이의 휑한 길을 한참 걸어가고 있을때 쯤 집 한 채가 있고, 역시나 외국인인 나를 보고 말을 걸어오더라.
난 또 인사를 하고 계속 걸어가려는데 나보고 와서 앉으라고 하더라.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그러면은 안되는 거지만, 뭔가 날라리 같은 그런 냄새가 확 풍기더라.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되지 하면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름이 뭐냐, 어디에서 왔냐, 어디로 가냐, 걸어가냐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고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나를 조금 붙잡는 듯한 그런 느낌.

그리고 내가 가진 물건들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들.
처음에는 호기심이려니 했다. 약간은 쌔한 느낌이 들지만서도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고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약간은 긴장한 상태로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는 주요 교통수단이 오토바이나 스쿠터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나 스쿠터를 정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타고 다니는 그런 곳.
그런데 갑자기 부~~~~~~~~~~웅 하면서 오토바이 2대가 다가오더니 내 옆에 멈추더라.
방금 전 만났던 혈기왕성한 조금은 날라리 느낌이 나는 이 아해들.

나를 태워다 주겠다고 하길래, 나는 걸어서 가고 있다며 괜찮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그들을 돌려보냈다.
한 십오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또 오토바이소리가 부~~~~~~웅 하는데..숫자가 꽤 많더라.

아까 그녀석들 포함해서 한 8명정도 되는 아해들이 내 옆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아...............................
뭔가 무섭다.
그때부터 나의 공포는 시작되었다.

아는 인도네시아어도 한정이 되어 있으니 그냥 웃으면서 다시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는데, 녀석들이 길을 막고 말을 걸어온다.
뭔가 삥뜯기는 그런 기분.

내 물건 하나하나를 만져보면서 자기에게 주면 안되겠냐.
내가 신고 있던 쪼리를 가리키며 내 쪼리와 바꾸자. 뭐 요런 말들.

애써 웃음을 지으며 난 안된다고, 오늘 목적지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면서 조금은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아..진짜..무섭다.

빼도박도 못하는 그런 곳에 들어왔어.
내가 과민반응을 하는 걸까.
정말 그들은 순수한 호기심인데,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머리속을 굴리고 굴리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정말 이런데서는 객사해도 아무도 모를거야...
아직 죽기엔 너무 이른데..

이제 나를 스쳐지나가는 오토바이 마져도 무서울 지경이다.

그와중에 드는 생각들은 한비야 아주머니 같은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찌되었건 걸음에 속도가 점점 붙기 시작한다.
그녀석들이 또 쫓아오면 어쩌지?? 라는 공포감에 휩쌓여 걷는데 다행히 마을이 등장하더라.

마을이 보이니 그래도 조금은 안정이 된다. 나이가 조금 있는 어르신들도 보이고, 다시 평온한 마음을 되찾아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 가족들과 어울려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먹을 것도 얻어먹고 사진도 찍는다.


역시나 우리의 의사소통 수단은 인도네시아 어 뿐이다.
내가 아는 단어도 한정이 되어있기에 그때부터는 바디랭귀지를 써가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걸어가는 나를 보며 고생한다며 먹을 것도 챙겨주시던 분들.
역시 어디를 가든 나같은 거지여행자는 좋은 인연들을 만나나 보다.

진심인지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말하던..
오늘 하루 여기에서 자고 가는게 어떻겠냐던..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말씀하시던..

아..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하루 자는게 정말 최고였는데..
아까 만났던 그 혈기왕성한 날라리 느낌의 청년들 때문에 난 너무 무서워했었어.
아저씨한테 고맙지만 난 계속 가야할 길이 있다며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마음착한 아저씨는 가는길에 먹으라며 바나나까지 챙겨주시고, 담배도 한개피 말아주신다.
정말 고마워요 T^T

그렇게 말아주신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마을의 끝이 보인다.

그런데....................

마을 끝에 아까 그 혈기왕성한 날라리 청년들 포함에서...이번엔 거의 20명 가까운 인원이 도로에 오토바이를 대놓고 진을 치고 있다...

아.....................................좀!!!
그때부턴 정말 무섭다기 보단 짜증이 나기 시작하더라.

사람을 미워하면 안되건만..상황이 상황인지라..
말도 안통하니 욕을 할 수도 없고.

될데로 되라는 식으로 그들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에게 말을 걸며 내가 가진 물건들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만지는 아해들.
하지만 이제 무서움따위는 집어치우고 좀 빡쳐버린 나는 인상을 써 가면서 아해들에게 하지 말라고 말을 했지.

안그래도 험악하게 생긴 얼굴인데, 인상을 쓰니 아해들에게 좀 먹히나보더라.

의기소침해진 아해들을 놔두고 그렇게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리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더랬지..

아..정말 서홍근 아직 멀었구나.

정말 대낮인데도 무서울수도 있구나..사람이 정말 무서운거구나..라고 느꼈었던 하루.
하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 또한 느꼈던 하루.
그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가라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던 하루.
무소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었던 하루.

어쨌든..현지사람들과 동화되려면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겠다. 홍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