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Globalwork Story/호흡(공정예술)

네덜란드의 보편적인 디자인을 만나다.8.14~8.16

참 불친절한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

기내에서 스키폴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비행기 안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스키폴공항은 고요했다.
공항내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이제 막 비행기에 내린 사람들의 캐리어의 바퀴소리만 공항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우리는 재빠르게 눈을 이러저리 돌렸다. 자연스레 고개가 끄떡거렸다.
"역시 네덜란드답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미국에서 혼잡하기로 유명한 JFK국제공항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다 해도해도 안되서 초빙한 디자이너가 네덜란드 출신의 파울 메이크서나르가 아니었던가.
이미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해낸 네덜란드. 그곳의 스키폴 공항은 한눈에 보기에도 적절한 인포메이션 디자인과 재밌는 공간연출을 한 상점들이 즐비해있었다. 하지만 공항은 마치 우리를 끝으로 문을 닫을 태세를 하고 있었다. 
공항을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차가 끊길 것만 같은 불안감이 이미 마음속에 가득차있었다. 
 



스키폴공항 내부 - 전체적으로 스키폴공항은 파란색과 노란색을 기본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그것은 비행기, 기차, 트램, 버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통일성은 공공디자인, 인포메이션 디자인이 갖춰야할 아주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엄격한(?) 출국 심사가 끝나고 우리는 암스테르담에 입성했다.
참고로 앞으로 네덜란드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에 준비를 하길 바란다. 프랑스, 스페인처럼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나라와는 달리 네덜란드는 유럽인을 제외하고 출국심사를 꽤 까다롭게 한다. 덕분에 우리는 공항에서 40분 가까이 멀뚱멀뚱 벤치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출국심사 관계자는 무표정하고 시크한 말투로 이런 저런 질문을 우리에게 해댔고 마지막으로 여행자금이 얼마나있냐는 질문에 우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신용카드를 보여줬다. 그는 그제서야 웃으며 공항을 나가도 좋다고 했다. 
마치 우리가 불법으로 이 나라에서 돈이나 벌다 가려는 사람처럼 보였나? 라는 생각에 불쾌감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네덜란드에서의 첫날부터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 참기로 했다.
  
숙소로 가까워 질수록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새벽 3시가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천가지 얼굴





암스테르담의 경찰서 입구 - 텍스트를 보지 않으면 경찰서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해가 밝은 암스테르담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은 암스테르담에 흐르는 강물을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우리는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를 먼저 익히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예상과 달리 경찰서였다. 분명히 'POLITIE'라고 써있는데 아무리봐도 경찰서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경찰서 앞에만 가면 괜시리 긴장되는 우리나라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빽차로 불리우는 경찰차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다.
형광핑크색과 파란색, 옐로우 워커색이 적절히  조합된 그래픽디자인을 보는 듯하다.
혹시 내가 색을 잘못 본것은 아닌지 몇번이나 눈을 깜박거렸는지 모른다.
한편, 이 디자인은 네덜란드에서 소규모 디자인회사를 운영을 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의 작품이란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첫날부터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한없는 궁금증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첫째. 소위 젊은 디자이너가 한 나라의 관공서 디자인을 할 수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가?

둘째. 형광핑크라는 컬러가 디자인에 수용될 수 있을 만큼 이 나라의 클라이언트들은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는가?

셋째. 젊은 디자이너는 그렇다치고 소규모디자인 회사에 대한 어떠한 믿음으로 이들은 디자인을 요청한 것인가? 우리나라는 디자인을 의뢰할 때 규모부터 보지않나?


경찰서를 뒤로하고 우리는 계속 걷고 계속 트램을 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거리는 정말 거미줄과 같다. 이는 지도를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어느 여행자들은 암스테르담이 유럽에서 가장 지저분한 도시라고 하지만 우리 눈에는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로 보였다.
자칫 코를 푼 휴지를 떨어트려도 그 도시에 굉장한 오점을 남길 것만 같은 매우 깔끔하다못해 인공도시처럼 보이는 동네,

대낮부터 마리화나 냄새가 풍기고 세계각국의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카페동네, 눈을 대체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홍등가, 그래피티가 가득한 어두 침침한 골목등 다양한 모습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덕분에 앞으로 탐방할 기관들을 찾아가는 것은 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곳 저곳을 미리 익히며 돌아다닌 이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암스테르담은 교통시스템은 이용하기 쉽게 조성되어 있었다.
물론 교통비가 매우 비싸서 제대로 머리를 쓰지 않으면 몇십 유로가 휘리릭 사라지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렇게 도시를 본다는 것, 읽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가 하는 공공미술은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어떠한 관점으로 보고, 그 곳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만큼 담고 있는지, 예술과 삶이 분리되어 느껴지기 보단 삶이 곧 예술이 될 수 있는 환경은 어떠한 것인지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만지고, 듣고, 느끼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후미진 동네에 놀이터- 천편일륜적인 우리나라의 놀이터와는 달리 평범한 동네에도 재미있는 놀이터가 곳곳에 있다.

2개의 선으로된 조형물 -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조형물, 남자와 여자가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다.

탁구테이블-빌리아레나 앞의 공원에 조성된 다양한 벤치, 테이블들 중 하나인 탁구테이블은 현재 많은 공공기관, 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몇일동안 암스테르담은 유랑(?)하며 느낀 한가지.

"보편적 디자인"

디자인 자체가 보편적이다란 이야기가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이건 못 사는 사람이건, 누구나 '보통 이상'의 디자인, 예술을 느낄 수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가 공공디자인이 잘되어있다는 인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공디자인, 공공예술이 발달되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 스스로 도시를 구성하는데 '보통 이상'의 안목을 가지고 실행한다는 이야기인듯 하다.
보편적인 디자인이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 보편성은 우리나라로 치면 '보통 이상' 수준을 보여준다.
우리가 공공미술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잘 사는 사람도 못 사는 사람도 향유할 수 있는 예술, 어린이도 할아버지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예술, 많은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예술. 우리가 꿈꾸던 그러한 풍경들을 이곳 암스테르담에서 찾을 수 있을 것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