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Globalwork Story/호흡(공정예술)

네덜란드의 진짜 매력은 암스테르담 밖에 있다. 8.23~8.25


오늘부터는 암스테르담을 떠나 에인트호벤과 덴하그 로테르담을 가려고 한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을 떠나 대전, 대구, 부산을 가는 것이리라.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암스테르담의 중앙역으로 향했다.

 Eek & Ruijgrok BV의 전경


기차로 2시간여동안 달려 우리는 에인트호벤에 도착했다.
순간 박지성이 떠올랐다. '내가 온 이 에인트호벤중앙역에 박지성도 왔을까?'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접어두고 우리는 서둘러
Eek & Ruijgrok BV를 찾아갔다. 지도를 확인하니 중앙역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위성지도 상에서 확인해본 결과 Eek & Ruijgrok BV의 주변에는 논, 밭과 숲, 그리고 작은 규모의 주택단지가 있었다. '여기에 정말 Eek & Ruijgrok BV가 있단 말이야'라는 말을 계속 되풀이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Eek & Ruijgrok BV의 내부 - 이곳이  Eek & Ruijgrok BV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다소 실망했다.
벽돌로 만들어진 공장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여기가 정말  Eek & Ruijgrok BV이야?" 하지만 이런 생각을  Eek & Ruijgrok BV에 들어서자마자 싸그리 사라졌다.

레스토랑, 공장, 사무실, 전시실을 둘러보는 동안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Eek & Ruijgrok BV의 생산 시스템이었다. 이곳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과정을 오픈해두었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Eek & Ruijgrok BV의 제품에 대한 신뢰를 갖게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Eek & Ruijgrok BV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Eek & Ruijgrok BV는 두사람이 공동창업한 회사로 Eindhoven출신의 가구디자이너인 Piet Hein Eek와 Ruijgrok가 대표를 맡고 있다. Piet Hein Eek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구디자이너로서 그를 스타 디자이너로 만든 작품은 네덜란드의 폐가구, 폐자재를 활용한 가구디자인이었다. 환경적 차원의 의미를 넘어서 그의 디자인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서로 다른 색의 폐목재들이 조합되어 아름다운 칼라배치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인데 최근들어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벽지로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다.

Eek & Ruijgrok BV를 둘러보면 경영, 마케팅이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단순히 한 예술가의 창의성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철두철미한 검증과 논리적이고 효율적이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Eek & Ruijgrok BV는 가르쳐준다.

더군다나 Eek & Ruijgrok BV는 네덜란드에 수도인 암스테르담이 아닌 에인트호벤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 Eek & Ruijgrok BV를 제외하고는 볼꺼리가 없는 동네에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Eek & Ruijgrok BV를 보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우리나라의 서울에 각종 문화예술기관이 몰려있는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이제 Eek & Ruijgrok BV는 에인트호벤의 자랑이 되었다. 

놀라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덴하그로 출발하였다.
사람들은 덴하그가 흔히들 행정수도라고 이야기한다. 관광책자에는 왕궁이나 동상따위를 안내하곤 하는데 그것으로 덴하그에 다른 것은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덴하그의 대안공간 1646의 클라라

우리가 덴하그에서 만난 사람은 대안공간 1646의 큐레이터로 있는 클라라이다. 그동안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그녀가 매우 친절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인줄은 몰랐다. 
그녀는 동료 2명과 함께 대안공간 1646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왜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덴하그에 갤러리를 만들었냐고 묻자 그녀는 '이곳이 진짜 미술을 볼 수 있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구야말로 진짜 미술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구에서 미술관을 찾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어쨌든 클라라는 우리에게 끝내주는 향을 자랑하는 커피를 내려주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새 커피향이 갤러리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1646외에 덴하그에 있는 다른 좋은 갤러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인 그녀에게 우리는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대안공간을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좋은 예술가들을 발굴해내고 그들을 알릴 수 있는 갤러리를 꼭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또 비싼 상품으로 변하는 작품이 아니라 판매가 될 수없는 작품이라도 훌륭한 메세지를 갖고 있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사람들에서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국적을 떠나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덴하그에는 상업화랑거리가 발달되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운영하는 1646을 비롯한 젊은 기획자들이 대안공간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제 단순히 잘 팔리는 작품뿐만 아니라 진중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작품을 사기위해 덴하그의 상업화랑거리를 찾았다면 이제는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물론 팔지 못하는 작품을 전시하기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자신들의 신념이고 큐레이터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기획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 너희도 우리와 같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열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녀 역시 우리를 응원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날의 날씨는 꽤 쌀쌀했지만 우리가 1646에 있는 동안은 마음도 몸도 무척이나 따뜻했다.
클라라가 다음에는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우리가 로테르담을 간다고 하자 그녀는 로테르담에서 가보면 좋은 갤러리와 건축물로 추천해주었다. 아... 천사다.

 로테르담에 있는 NAI의 아카이브 도서관

그녀의 따스함을 마음 깊이 새기며 우리는 또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로테르담이다.
지금까지 에인트호벤, 덴하그에서 느꼈던 감동들처럼 '로테르담은 어떨까'라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로테르담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자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헉!'
숨이 절로 막혔다. 이게 웬걸, 로테르담은 전쟁터였다. 
건물을 짓기위한 전쟁터. 
사방이 공사중이었고 온갖 소음은 귀를 따갑게 내리찔렀다.
지금까지 봤던 정겹지만 큰 매력이 있었던 에인트호벤, 서정적인 풍경 속에 문화에 젖어있는 덴하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로테르담의 첫인상은 강남이었다. 로테르담에는 빌딩숲이 우거져있었다.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기 위해 우리는 관광안내소를 가보기로 했다.
'로테르담의 매력'이라고 쓰여져있는 리플렛이 눈에 띄었다. 이 관광 상품은 자전거를 타며 로테르담의 건축물을 투어하는 것이었다. '건축물투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 로테르담에는 '건축'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하려고 했던 NAI도 건축협의회였다. 공공미술하는 사람들이 왠 건축이냐고 물을 수도 있었지만 사실 공공미술과 건축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두 개의 분야 모두 도시 환경을 좌우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사람을 담고 공간을 구상하고 구축한다는 점에서 공공미술은 건축의 프로세스를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도 해외의의 경우 많은 공공미술프로젝트들을 건축가가 실행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바쁜 일정속에 NAI를 방문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네덜란드의 도시를 구축했던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한눈에 볼 수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가장 효율적으로 네덜란드를 볼 수 있는 장소였다.

NAI안에는 갤러리며, 워크숍실이며,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었지만 우리는 아카이브도서관으로 직행했다.
예상이상이었다.
수많은 건축, 도시환경, 문화예술 서적은 물론 네덜란드에서 실행했던 프로젝트들이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있었으며 그렇게 정리된 서랍을 열면 수 많은 프로젝트들의 프로세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도서관과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신세한탄을 하면 뭣하랴.
우리는 열심히 우리에게 도움될 만한 자료들을 찾고 기록하고 사진을 찍었다.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면서 서울이 생각났다.
모든 것이 밀집해있는 수도 서울.
감히 서울 외에 다른 지역에서 문화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을 충고한다.
지방이 수요가 있냐고.

우리는 비록 서울토박이지만 '지역성'을 고민하는 사람들로서 지금의 서울의 모습이 참 깝깝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활동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의 문화예술활동의 필요성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과연 살아온 터를 떠나 새로운 터에서 목적성만 두고 활동하는 것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본 하늘은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