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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Globalwork Story/호흡(공정예술)

네덜란드에서의 최후의 만찬 8.26~8.27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제 네덜란드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곳은 Proef라는 레스토랑이다. 이 곳은 우리가 한국에서부터 사전 조사를 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네덜란드인들이 추천해준 곳이기도 하다. 혹시 우리가 '맛 집'을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Proef는 레스토랑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절대적으로 '맛 집'이라 할 수없는 곳이다. (Proef의 쉐프에게는 미안하다)

 Proef의 모습-암스테르담에 위치해있으며 공원 안에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그렇다면 왜 Proef에 가냐고?
Proef는 음식으로 예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먹는 다는 것'에 대한 예술가의 다양한 실험과 접근방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뿐만아니라 Proef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유기농'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식당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식당이 만났을 때 어떠한 형태를 가질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Proef의 키친-쉐프가 요리하는 모습이 100%로 공개되며 요리하는 소리와 음식의 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Proef의 내부는 정갈하지만 인간적인 손떼가 뭍은 소품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간단하게  Proef의 쉐프와 인사하고 일단은 음식을 주문해보기로 했다.
네덜란드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외식이었다.  사실 우리는 네덜란드에 온 후로 밖에서 무언가를 사먹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캐리어 하나 가득 준비해온 식량들로 매일매일 요리를 해먹거나 도시락을 싸갖고 다녔던 것이다.
Proef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네덜란드에서의 최후의 만찬이었던 것이다.

쉐프는 우리의 주문을 받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펜에 기름을 두로 뭔가를 지지고 볶더니만 요리를 하다말고 자꾸 주방과 앞마당을 정신없이 왔다갔다하기를 반복했다. 왜 그렇게 들락날락하나 봤더니 앞마당에는 채소밭이 있었다. 세프는 그 곳에서 채소를 따다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색색의 꽃들도 한 손 가득 따오는 것이었다.' 저 꽃들로 뭘하려는 거지?'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우리는 매우 들떠있었다.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했던 최후의 만찬이었고, 뭔가 예술적인 음식이 나올 것만 같았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짜~잔~"

Proef의 요리 - 모든 음식재료는 유기농이며 이들이 사용하는 소스 또한 직접 가공한 것들이다.


요리가 나오자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살면서 꽃잎이 올려진 샐러드는 처음 봤다. 뿐만아니라 난생처음보는 채소들이 많았었는데 하나 하나 이름을 물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요리는 '건강하다'라는 메세지를 확실하게 담고 있었다. 
딸기쨈과 비슷한 농도의 소스들도 많았는데 역시 Proef에서 직접 가공한 것들이었다.
Proef의 매니저가 먹는 법을 설명해주었고 매우 맛있을꺼란는 코멘트도 해주었다.

기대에 가득찬 나머지, 빵에 소스를 가득 묻혀서 한 입 메어무는데!
아......... 발냄새난다.
소스에서 발냄새가 났다. 쉐프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먹는 순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네덜란드인들을 보니 너무나도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Proef의 매니저는 '거봐~ 맛있지?'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는데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홍어를 먹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우리 입맛이 너무 토속적인 건가? 라는 별의 별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Proef의 매니저와 쉐프는 한국에서 자신들을 찾아온 우리를 보며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꽃이 함께 버무려진 샐러드는 먹는 순간 마치 숲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한 향기를 내품으며 나의 식감을 자극했다.

음식 맛을 그렇다치고 어쨌든!
Proef는 음식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도 선보이고 있었다. 모든 음식이 흰 색인 식탁을 만들기도 하고 총모양으로 생긴 사탕을 팔기도 한다. 
또한 패스트 푸드에 익숙한 아이들을 위한 요리 워크숍도 진행하는데 그 아이템과 접근 방식이 매우 독창적이었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재밌게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은 단순히 아이디어에서 실행된 것이라기 보다는 세심한 관찰과 연구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어르신들과도 함께 어울리며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이렇듯 예술가가 요리라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먹는 다는 것과 함께 접목된 예술활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하고 누구나 즐겁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Proef의 앞마당에는 각종 채소를 키우고 있었고 심지어는 닭도 여러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Proef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사람 모양으로 된 음식을 조형하는 모습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미술의 접근법은 이러한 것이다.
예술로서의 고유성을 가지고 감상하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상생활의 양식들을 예술과 함께 접목시키고 사람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요리든, 운동이든간에 다양한 매체와 어울어질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본다면 계층과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공공미술을 만들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의 최후의 만찬을 '맛있게'음식을 먹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웠으나 Proef에서 느낀 것들을 우리에게 매우 좋은 자극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우리는 지금까지 수집했던 자료들을 정리해보았다.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의 자료들이 모아졌다. 캐리어 한 개를 가득채우는 정도의 양이 되었다. 손으로 번쩍 들어보니 무게도 꽤 나갔다.
자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네덜란드에서의 일정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낮선 땅에서 너무 바쁘게만 보낸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가 한국 사람 아니랄까봐. 마음의 여유도 없이 이리저리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사실 네덜란드에 와서 느낀 것은 하루를 꼬박 새고 말해도 남을 만큼의 것들이 있다. 아무래도 단순히 여행을 온 것이 아니기때문에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라는 이번 탐방의 제목처럼 우리는 길을 끊임없이 길을 찾아다녔고 길을 물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려는 길은 이미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길이었다. 한국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만날 수 없었다.
그것이 때론 가장 막막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도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창 밖은 캄캄한 밤이다.
비행기 날개 끝의 반짝이는 불빛만이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10년 뒤쯤에 우리의 뒷 세대가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할 때, 우리가 그들의 길에 조그마한 빛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었다. 그때쯤에는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들이 '길'이 되어 누구라도 편하게 오고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도와주신 해외탐방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