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홍대'에서 빨간 팬티를, 스가모
앗코
2012-09-10
[인터뷰] '어르신들의 홍대' 스가모 '마루지'. '할머니들의 하라주쿠', 에도 중기부터 상업과 신앙의 장소로 번성한 '스가모 지조도오리'의 별칭이다. 대형 복합 상업시설이 구 상권을 몰아내는 것은 일본의 도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800미터 가량에 200개 소규모 점포가 모여있는 '스가모'는 오랜 상점가 분위기를 보존하고 고령자층을 대상으로 세대특화를 꾀하면서 지지않고 번성하고 있다.
볕이 뜨거운 7월말, 일본 도쿄 스가모 역에 내려 조금 걷자 기모노 입은 오리가 지키는 '스가모 지조도오리'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스가모지조도오리는 '가모'가 오리를 뜻하는 일본어 '카모'와 비슷하기 때문에 흰색 오리를 캐릭터로 삼았다. 어르신들의 시력을 감안한 영어없는 큼지막한 간판들과, 쉬어가며 쓰다듬도록 놓아둔 대형얼음도 줄곧 눈에 띈다.
오랜 상권이 보존되었기 때문에 대를 이어온 유명한 전통가게도 많다. 붉은 곤약을 비롯해 각종 절여만든 반찬인 '오카즈'를 500여종 판매하는 가게, 전통과자 센베 전문점, 일본 명물의 소금팥떡 '시오다이후쿠'를 만들어 판매하는 80년된 과자 가게가 있다. 성인 손바닥만한 오다이후쿠는 1,700원(120엔) 가량으로 스가모를 구경하며 한입씩 베어물면 허기가 가신다.
'건강' 화두 지역상권 특산품, 빨간 팬티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고 데이트 중인 할머니, 상점가 곳곳의 그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할아버지들, 어르신들을 위한 건강 신발 잡화점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래된 카레우동집 인근, 1891년부터 자리한 '코간지(高岩寺)'는 스가모를 신앙의 거리로 만들었다. 검은 지장보살에 물을 뿌리고 만지면 그 부위가 건강해진다는 속설이 있어 많은 노인들이 찾고 있다.
건강을 화두로 한 스가모에서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상품은 '빨간 팬티'다. 스가모를 방문하는 한국인들도 기념품으로 꼭 사가는 '빨간 팬티' 전문점 마루지의 쿠도 히데지(58) 상무를 찾았다. "1952년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기에 작은 종합의류 가게를 내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문을 연다. '고객의 소리' 투고함 의견을 따라 빨간 팬티를 팔게 되었다.
처음에는 꺼려했지만, 들여올 때마다 물건이 금세 팔려나갔고, 이후에는 조달해오던 오사카의 점포가 문을 닫으며 직접 제조까지 시작하게 됐다. 일본에는 기모노 안에 붉은 속옷을 입는 풍습이 있고, 동양의학에서는 단전에 붉은 색이 침투하면 혈행이 좋아진다고 전한다. 이후 다양한 붉은 속옷 제품을 만들며 매스컴에 소개되고, 스가모의 '필수 제품'이 되었다.
'단골들 찾는 스가모만의 가게 되었으면'
무지 팬티 이외에도, 12간지 자수를 넣은 빨간 팬티, '젊어진다(와카가에루)'는 말을 연상케하는 개구리('카에루') 자수를 넣은 빨간 팬티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일본에서는 '12간지를 다섯번 반복해 60세가 되면, 아이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붉은 옷을 입고 축하하는 풍습이 있어 환갑 선물로 많이 팔린다.
중국 백화점, 전화통판 등 도매 요청 연락도 많이 오지만 수락한 적은 없다. "한 때의 붐으로 팔리면 금세 꺼진다. 하나하나 손님에게 팔고 있고 스가모에 직접와서 사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길고 꾸준하게 팔며 상품가치를 지킨다"는 고집이다. 가치를 알아주는 단골 손님 중에는 오사카, 큐슈, 홋카이도 등 멀리서 오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환갑이 된 단카이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동창회를 하며 가게에서 사간 개구리 자수 빨간 타올 머플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손님과 함께 나이들어온 마루지에서는 1층에서 찬 녹차와 의자를 무료로 내드리며 어르신 손님들을 배려한다. 스가모지역에 뿌리내린 '행복을 파는 가게'가 되고 싶다는 넉넉한 포부다.
- 조각보 주홍
원문 링크 : http://byulsijang.org/xe/coverstory/5737
고로케로 부활한 상점가, 도고시긴자
앗코
2012-09-04
일본의 오래된 상점가를 일컫는 '긴자도오리'의 유래가 된 '도고시긴자' 이야기다. 도고시긴자가 부활하게 된 것은 1999년경. 도고시긴자라는 공동브랜드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서민들의 간식거리인 '고로케'가 지역의 대표음식이 되고 '긴지로'라는 고양이 캐릭터가 상점가 곳곳에 들어서며 거리는 다시 활기를 띄었다. 젊은 커플들이 긴짱이 그려진 상자에 오뎅 고로케, 감자 고로케, 카레 고로케를 점포 곳곳에서 사서 담으며 데이트를 한다.
도쿄에서 7월 말, 상점가진흥조합 이사장으로서 고로케와 긴지로 프로젝트의 주역이자, 1925년부터 삼대째 '갤러리 카메이'라는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가메이 테츠로(49) 대표를 만나 지역상권 활성화의 요모조모를 물었다. '여기에만 있는 지역자원, 고로케'와, 오래된 상점가에 향수를 갖고 있는 지역주민의 '아이덴티티'가 도고시긴자 부흥의 키워드였다. 평범한 관점에서는 시장, 상점가를 활성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관광'을 활용했다.
상점가만이 가진 장점은 수제 음식이었다. 오뎅집처럼 예전부터 전해온 안심 먹거리를 직접 만드는 곳이 남아있다. 대량으로 생산해 맛이 똑같은 편의점, 대형마트 제품과는 다르다. 고로케는 일본 어디서나 판매하는 음식이지만, 상점가다운 서민적인 먹거리라고 생각했다. 도고시긴자 안의 정육점에서는 멘치고로케(여러 고기를 섞어다짐), 어묵집에서는 어묵고로케, 중국집에서는 만두고로케 식으로 다양한 고로케를 팔고 있었다.
처음에는 6개 점포가 연합, 인근 릿쇼대학과 협력해 행정기관의 '고로케 지역활성화' 보조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대학생들이 고로케 지도를 만들고, 고로케를 팔러오기도 하면서 프로모션에 참여했다. 고로케는 한 개에 100엔(1,400원)도 되지 않기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젊은 커플은 둘이서 고로케를 세 개씩 먹고도 1000엔(14,000원)에 거스름돈이 생길 정도다. 옛고향의 풍경을 따라 발길이 늘고 참여업체도 20여 점포로 늘었다.
지도를 만들 때에는 워크샵을 열어 상점가 사람들과 지역주민들이 추천하는 맛집을 실으며 입소문 효과를 노렸다. 티비나 신문, 잡지에서 일요일에 아이돌의 '고로케 여행'을 내보내고, 사람들은 따라하고 싶어한다. 프로모션이 효과를 거두며, 코코이찌방같은 프랜차이즈 체인점도 카레 고로케 등 특별 메뉴를 만들어 협력했다. 어느새 지역민들만의 상점가가 아닌 외부 관광객이 지도를 따라 고로케를 먹으며 걸어다니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다' 긴지로 스탬프 모으기
또 하나의 성공 포인트는 캐릭터 브랜딩이었다. 긴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긴지로는 고양이를 모델로 했다. 일본속담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바빠지고 싶은 상점가의 소망을 담았다. 노란 털에 머리에 별무늬가 있는 긴지로는 한 달에 세 번 정도 와서 상점가를 활보하며 고로케 선전을 하거나 이벤트를 도와주고 있다. 명함도 있고 스스로 운영하는 블로그도 있다.
상점가가 길고 도고시긴자, 도고시역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길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돌아가기 일쑤다. 유출을 막기 위한 장치를 설치했다. 상점가 곳곳에 러블리긴짱, 럭키긴짱이 있어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일반 상점가는 목적이 있어서 오지만, 목적없이 온 사람은 즐거워야 한다. 관광지처럼 '여기까지 가서 스탬프찍고 긴짱 머리를 쓰다듬으면 연인사이가 좋아진다'든지, '좋은 일이 있다'든지라는 식으로 재미를 더했다.
"안경점에서는 안경 쓴 긴짱, 오뎅집에서는 오뎅을 든 긴짱, 우유집은 우유를 마시는 긴짱이 있습니다. 디즈니랜드가 될 수는 없지만, 디즈니랜드와는 다른 도고시긴자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긴짱, 고로케 등 여러가지 일을 복합적으로 하면 지역주민들도 기뻐하고 잡지에 이렇게 실어주면 '한번 여기 가보고싶다'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도고시긴자의 포부다.
어묵 한 길 50년, 연예인 찾아오는 어묵 고로케
도고시긴자역에서 상점가를 따라 걷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포스의 어묵집 '고토가마보코(고토어묵)'가 나타난다. 점포 자체는 허름하지만, 뒷쪽 벽면을 가득 메운 상장들과 다양한 어묵 제품이 '한 길 인생'을 보여준다. 생선을 갈아서 만들고 안에 넣는 재료에 다양하게 만든 튀긴 어묵이 주종이다. 한 켠에는 6종류의 꼬치 어묵을 팔고 있고, 고구마, 당근, 피망, 양파, 가지, 우엉, 오징어, 새우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튀김류를 판다.
2대, 50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고토 마나부(51) 대표는 '유동 인구 많고 활기찬 상점가에서 아버지가 가게를 여셨다.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직접 만드는 제품이 팔리는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손님으로는 일반 주부가 많은데, 아직도 평일에는 인근 단골이 꾸준히 찾고 있다. 고로케 프로젝트에 참가한 초기 6개 업체 중 하나로, 일본의 유명 아이돌인 아라시가 지난해 말 찾은 이후, 어묵고로케 2종(오뎅, 한뻰)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한적한 오후, 마침 젊은 커플이 나타나 어묵 고로케를 주문했다. 가게 옆에 마련해놓은 작은 시식공간을 찾은 남녀는 도쿄 고마자와 대학교의 선후배 사이. '30분 거리에 살지만 처음으로 도고시긴자를 찾았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에게도 도고시긴자는 꽤 유명한 편으로 TV에서 보고 산책삼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명물 '어묵 고로케'를 먹은 소감은? "밑간된 무가 들어있어 정말 맛있어요. 겉은 바삭바삭, 안은 쫄깃하네요"라고.
- 조각보 주홍
원문 링크 : http://byulsijang.org/xe/coverstory/5414
***조각보는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 SEEKER:S' 프로그램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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