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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EEKER:S Story/*사회참여극단 돌쌓기

[사회참여극단 돌쌓기 04] Théâtre de l'Opprimé

돌쌓기는 프랑스로 탐방의 목적지를 결정하기전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도 목적지로 고려한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우구스토 보알이 설립한 억압받은 자들의 극장과 브라질의 민중예술 때문이었다. 그만큼 돌쌓기의 설립에 있어서 '아우구스토 보알'의 '민중연극'이론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번 탐방지 조사를 진행하며 이 '억압받은 자들의 극장'이 프랑스 파리에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두번째 탐방 목적지로 정하게 되었다.



TO의 간판


리옹역 근처에 있는 Theatre of Oppressed(이하 TO)는 우리가 방문했을때 바캉스 시즌으로 대부분의 단원들이 바캉스를 떠난 상태였고 이 시즌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샵 진행을 진행하는 줄리앙과 대표인 Rui Frati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극장을 돌아보며 TO의 현재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극장에는 대학생극단을 대상으로하는 워크샵이 한창이었고 그들의 연습이 끝나고나서야 TO의 극장 내부를 돌아볼 수 있었다. 


100여명이 앉을수 있게 준비된 소극장


무대의 벽면에 있는 코끼리상


100여명이 앉을수 있는 좌석과 작은 포켓, 그리고 많지 않은 조명기구가 달려있는 조명바를 보았다. 처음에 극단을 시작할 때는 건물 속 사무공간밖에 없었던 TO였지만 현재는 공터로 쓰이던 공간까지까지 확장, 소극장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는 유리로 된 천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법률에 엄격한 프랑스이기때문에 극장으로 인가를 받는데 한참동안이나 서류작업을 해야했다고 한다. 현재는 유리천장은 철수되어있고 천막같은 재질로 천장이 꾸며져있다. 무대의 뒷편의 가운데에는 코끼리상이 떡하니 걸려있는데 현재 준비중인 공연의 소품이냐고 물어봤더니 원래 건물의 외부장식이었으나 공터를 개조하여 극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무대의 정가운데를 표시하는 마크로 쓰게되었다고 했다. 루이는 이 코끼리상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철학적인 뿌리를 만난 돌쌓기는 이때까지 진행했던, 그리고 진행중인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라지지않는 개>에서부터 시작하여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하는 목소리>까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소통하고자하는 활동을 한다고 돌쌓기를 소개했고 Rui Frati는 이렇게 되물었다.


"자네들은 연극으로 사회를 바꿀수 있다고 믿는가?"


물론이라고 신대표는 대답했고 이때부터 Rui Frati는 몇년을 함께 일한 동료와 이야기를 하는것처럼 친절하고 자세하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선 아우구스토 보알과 TO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애초에 파리의 TO도 아우구스토 보알이 설립하여 자신에게 맡긴 곳이라는 설명과 아우구스토 보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알이 정치적, 예술적 탄압을 피해 망명생활을 시작했던 것, 프랑스에 정착하여 TO를 설립했지만 끝내는 자신의 조국의 발전을 위해 브라질로 돌아가 활동을 했던것, 그리고 보알과 Rui의 만나게 된 계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Rui Frati와의 환담


그리고 현재 TO에서 집중하고 있는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현재 프랑스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은 질문에 "아무래도 이민자문제라고 할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프랑스는 진보의 정치가 기본인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현재 많은 청년들이 보수화 되어간다"고 설명했다. "기득권이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위해 많은 정치적인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고 청년들까지도 그것에 합류하고 있다. 이민자는 사회의 가장 변두리에 있는 사람이고 가장 권력으로부터 멀리떨어진 사람이다. 그들이 사회의 중심에 도달할수 있는 구조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며 그것이 고착화된다면 프랑스의 발전은 없다"라고 명료하게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TO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혹은 이민, 이주를 테마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주된 작업이 MigrAction(migration + Action)이라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8회차에 접어드는 연단위 프로그램이고 프랑스의 TO 뿐만아니라 타국의 극단과도 함께 연대하여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단절과 분리를 뛰어넘는 예술을 모토로 이주, 이주민을 설명한다고 했다. 


인당 왕복 100유로 가까운 돈과 숙박비, 통역비를 생각한다면 예산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의 모토의 확장으로 이탈리아에 있는 한 교도소의 재소자들과 함께 공연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 설명하며 7월 말에 있을 교도소 워크샵에 돌쌓기도 함께 참석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다.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해진 일정과 예산의 한계가 있었다. 아쉽지만 제안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고, 대신 단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였다. 이를 승낙한 Rui는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한다고 하였고 그 마음에 감사하며 요리는 우리가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몇일 후 루이의 집에 다시 모인 돌쌓기팀은 그들을 위해 맛있는 한국요리를 준비하였다.


요리하는 신대표


이어진 환담에서 포럼연극의 한국워크샵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번도 해외의 극단을 초청한다는 스케일의 구상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돌쌓기로써는 말그대로 신박한 제안이었다. 프랑스 문화원이나 한국문화원과 연대하여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한다면 충분히 TO의 한국방문과 워크샵추진이 가능할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아마 포럼연극 한국워크샵이 추진이 된다면 극단의 위상에 굉장한 반향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포럼 연극의 한국 워크샵을 제안받았다.


세월호의 이야기, 남북관계의 이야기들 한국정세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민중연극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중연극론>의 TO의 근간이 되는 서적으로 아우구스토 보알을 세계적인 연극인으로 올려놓은 저서이다. 70년대에 쓰여진 민중연극론은 그때 집필된 책으로, 읽게되면 현재에 적용하는데 많은 무리가 있다는 점과 그리고 현재는 그 이론에서 많은 정반합으로 생성된 새로운 이론들을 실험을 하고 있다는것들을 이야기했고 그런것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워크샵을 같이 치루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이야기했다. 초청워크샵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아쉬운 식사를 뒤로하고 Rui와의 작별을 이야기했다. 내년이나 그 후년 꼭 한국에서 워크샵을 열겠노라고 약속으로 하며 헤어졌다. 열악한 한국의 상황이지만 지구의 반대편에 근간이 되는 철학을 모토로 활동하는 또 다른 연극인을 만난다는건 참 힘이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Rui Frati와 돌쌓기


아래는 루이프라티와 나눈 이야기의 전문이다.

프랑스의 사회문제와 TO


돌쌓기(이하 돌) 우리는 한국의 사회문제를 연극이라는 예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알지모르겠지만 한국에는 참 많은 사회적인 문제가 있다. 혹시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루이 프라티(이하 루) 잘 알고 있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침략이라던지, 남북전쟁이라던지. 어떻게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나?


한국은 사실주의 연극이 강하고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는 대학로라는 연극의 중심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하는 대부분의 공연이 사실주의에 입각한 공연이다. 나는 그것이 답답하다고 생각했고 매일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은 가진 사람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를 위한 예술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아우구스토 보알을 알게 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떼아뜨르 포럼, 억압받은자들의 극장을 알게 되었다.


아주 정석적인 코스로 우리를 알게 된 것 같다. 우선 연극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반갑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잘 알다시피 떼아뜨르 포럼은 공연에 참가하는 모두에게 이야기가 열려있다. 관객에게 공연 중의 쟁점사항을 이야기하게하고 토론을 통해 그 주제를 어떻게 실천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한 후 공연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사회는 그런 토론이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그것을 연극이라는 장치로 옮겨온 것이다. 이런 형식은 현재 포럼연극이라는 이름이 아니라도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공연장치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형식은 주제의식을 사람들에게 보다 살갑게 느끼게 한다. 현재 우리는 Migraction(migration+action), 이주자들의 액션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가 8회차 진행인데 이 작업은 유럽에서 하고 있는 큰 두 작업 중에 하나이다. 알다시피 프랑스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가 혼재해있는 나라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이민을 오는 사람도 많고 거리에는 동유럽에서 온 집시들도 많다. 그들에게 이주라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그 이주자들에 대한 소통의 이야기이다. 현재 프랑스는 급격히 사회가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이민자들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사회적인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에서 이런 고착화가 가져오는 것은 퇴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를 테마로 한 이 프로젝트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6월 말에 올해 Migraction이 끝났다. 함께 할수 없어서 아쉽다. 현재 극장도 바캉스기간이라 워크샵공연을 제외하면 공연은 없는 실정이다. 혹시 810일에 워크샵공연이 있는데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 720일에서 22일까지 이탈리아에 초청을 받아서 그곳의 교도소 극단과 함께 워크샵을 할 예정인데 돌쌓기도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함께 가서 워크샵을 진행하는 게 어떤가?


우선 예정이 되어있는 일정이 있다. 매우 끌리는 제안이긴 하지만 예산을 보았을 때 힘들 것 같다. 그리고 8월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맙고 상당히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지만 사정상 함께할수 없음에 참 아쉽다. 제안에 감사드린다. 그럼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프랑스의 가장 큰 사회적문제를 이민자가 유입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민자가 유입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근대사를 보면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배하지 않았나? 어찌보면 그에 대한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차별을 받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소수이기 때문에 배척되고 단절되는 이들이 없어야한다.


그럼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공연예술로 표현하고 있나?


요즘은 이 단절이라는 것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5월에 각 나라에서 15명씩을 모아서 포르투갈에서 공연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아픔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들었을 때 각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문화에 따라 그 단어에 대한 신체적인 표현이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차별과 단절은 극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서로의 다름을 한 장소에 모여서 워크샵을 통해 공유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고국에 돌아가서 한 번 더 공연할 기회를 가진다. 나는 이 공연을 좀 더 발전시킬 계획이다. 앞으로 9월에는 이렇게 고국으로 돌아간 각국의 공연단을 다시 하나로 모을 것이다. 물론 한 장소에서 모여서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닌 미디어를 통해서이다. 그들을 자신의 나라에서 공연을 하지만 극장에 설치된 커다란 비전을 통해서 공간적인 단절을 뛰어넘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포르투갈, 프랑스. 세 개의 국가의 세 개의 공간이 한 극장 안에서 하나로 모이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발상인 것 같다. 단절이나 이민자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나?


나는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브라질 출신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문화를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며 자랐다. 그래서 그것이 섞였을 때 일어나는 멋진 화학작용도 잘 알고 있다.



아우구스토 보알과 루이 프라티


한국에서 아우구스토 보알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민중연극론>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출간된 아우구스토 보알의 책은 <민중연극론><배우를 위한 연극론>이 전부이고 더 이상 아우구스토 보알의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책들을 다 읽어보았나?


물론이다.


두 책은 물론 좋은 책들이다. 하지만 테크닉을 아는 상태에서 책을 읽어야지 확실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 활자로 쓰여진 설명과 실제는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알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잘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잠시 쉰 후에 자리를 옮겨서 보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내가 어릴 때, 상파울로에서 자랐는데 그때 보알은 이미 청년이었다. 보알은 원래 연출가가 아니라 화학연구자였다. 노동자였지. 그는 주변에서 알아주는 똑똑한 기술자였다. 그래서 미국으로 195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에서 미국의 현대연극을 만나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브라질로 돌아온 보알은 신연극을 하는 기성극단에 들어간다. 그 시기는 브라질이 군부독재로부터 막 해방되어 청년이 문화적으로 엄청 힘을 쓰던 시기였다. 브라질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었다. 그래서 군부독재의 종식 후, 사라져버린 근대의 브라질 고유의 문화를 찾기 위해서 노동자, 학생 등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 그때 떼아뜨르 아레나라는 단체가 있었고 새로운 드라마투르그로 보알이 입단을 하게 된다. 그는 브라질음악을 발구하고 공연에 도입하려고 노력했고 그와 동시에 희곡을 쓰고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했다. 1964년 새로운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제 갓 자리를 잡아가는 브라질의 고유문화를 다시 탄압하기 시작했다. 문화탄압은 점점 심해져 1969년 보알은 체포당하여 고문을 당한다. 감옥에서서 풀려난 그는 아르헨티나도 망명하게 된다. 그는 아르헨티나 상파울로에서 어떻게 연극을 계속할건지를 고민했다. 그는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극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실행에 옮겼다. 내가(루이) 대학생이 된 1972년에는 이미 아우구스토 보알은 유명인이었다. 대학가는 이미 죽어있었고 저항이나 시위를 하지 않았다. 나도 연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라질은 더 이상 예술을 할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고 브라질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우리는(보알과 루이)1972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곳에서 연출(루이)와 작가(보알)로 함께 일을 했다. 처음 그와 작업을 할 때, 나는 사실 연극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말들이 불편했다. 그래서 그의 팀에 소속되기보단 그의 객원연출이나 배우로 함께했었고 보알은 결국 파리에 TO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TO를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라질의 정치적인 문제가 풀려 보알은 브라질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지금 해결해야하는 것은 고국의 문화라고 말하며 TO를 나(루이)에게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연극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불편했던 나에게 이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와 이미 수많은 작품을 객원이지만 함께해온 나로써는 참 거절하기가 힘든 제안이었다. 그리고 보알과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이 극장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극장운영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보알은 브라질에도 TO를 설립하며 서로 동반자가 되었다. 사무실밖에 없었는 프랑스의 TO를 극장으로 만들어내고 첫 공연을 올렸다. 그때 개관공연을 보알이 연출을 했다. 브라질에서 큰 유명세를 떨치고 돌아온 그 덕분에 파리의 TO도 세간의 주목을 받는 극장이 되었고 각자의 나라에서 극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런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멀리 떨어진 두 형제의 극장은 서로의 기법과 시스템을 교류하고 피드백하면서 발전을 하게 되었지만 속해있는 문화와 나라가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결론과 답을 내릴 순 없었다. 나라가 달랐기 때문에 집중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도 다를 수밖에 없었고 보알의 연극기법을 참고하고 우린 또 그것을 새롭게 발전시키고 나아갔다. 현재도 브라질의 TO와는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하진 않는다.



한국에서의 포럼연극 워크샵


당신들이 하고 있는 사회참여연극은 어떤 것들인가?


그러면 그 전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아까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나(신규환)은 사실주의와 보는 사람만 보는 연극에 지쳐서 연극을 그만두고 대안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하며 생활하던 도중에 문득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연극이란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거리극을, 그리고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은 원전집약도가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나라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사라지지 않는 개>라는 제목의 공연을 동해안 원전지방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고 작년에는 세월호 문제, 올해는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GMO작물 표시제도를 위한 퍼포먼스 등을 하고 있다.


상당히 열심히 활동을 하는 것 같다. 포럼연극 형식도 도입해서 하고 있는가?


아직 그런 식의 공연은 시도해보지 않았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단절이나 포럼연극 워크샵을 한국에서도 열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일정이 도와주지 않아서 함께 워크샵을 진행할 수 없어서 아쉬웠던 점들을 풀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작년에 타이완에서도 문화원을 통해서 초청을 하는 방식으로 해서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문화교류회나 한국의 프랑스문화교류회를 이용하여 교류 워크샵을 추진해볼 의사가 있는가?

돌 당연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해당사업이 있는지 찾아보겠다. 이르면 내년에 추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에도 포럼연극을 많이 알렸으면 좋겠다. 이런 좋은 조언을 해주어서 고맙다. 그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어릴 때의 당신이고 당신은 우리에게 보알과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