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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EEKER:S Story/*훌라

[해외탐방기] 훌라(11) BACK TO ROME: 다시, 포르테 프레네스티노C.S.O.A. Forte Prenestino

첫날 거부 당했던 포르테 프레네스티노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오르비에토 농장의 '마이'가 직접 소개해준,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멤버 로렌조를 통해 '환대'를 받으며 방문하게 됐다. 이제는 '믿을 만한 팀이 된 우리'에게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채, 지난번의 까칠했던 관리인은 사라지고 친절한 안내자 '마리오'를 마주하게 되었다:)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 의미부터 정말 상세히 알려주던 마리오. 지인찬스 감사합니다.....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이곳은 과거 군사요새(1편 기억나는가. '강한 요새!!')였으나, 1986년 이래로 시민들이 점거하여 자체관리하는 소셜센터가 됐다. 공동 결정과 윤리에 동의하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연합했고, 이에 기초하여 자체적으로 공간을 구성하거나 공유하며 그 활동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즉, 시민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구성하는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마리오가 직접 요새를 안내해줬다!!

 

"궁금증"

우리는 국가 소유의 땅을 점거하고 30년 넘는 시간동안 자율적으로 운영해오며 소셜센터로서 시민들과 이 공간의 경험을 공유해온 과정이 궁금했다. 어떤 배경과 맥락 속에서 그리고 어떤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또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실제로 버려지거나 방치되는 공간과 사람들에게 부족하고 필요한 공간은 어떻게 상응할 수 있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사점 역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에게 먼저 우리가 준비해간 '훌라' 라는 팀 소개와 이러한 궁금증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버전을 메일로 보냈었는데, 미리 숙지한 그는 우리에게도 신선한 궁금증을 많이 갖게 된 듯 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물론, 우리가 연구자이자 아티스트(!)로서 이 공간들이 흥미로울 것이라며 요새의 '지하공간'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계단이 있었고, 벽면 가득한 그래피티와, 공간의 규모에 압도당했다. 겉으로 볼 땐 요새의 특성이 잘 안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 요새로 쓰일 당시, '마굿간'으로 사용했던 지하공간이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인터뷰와 함께 사진으로 풀어보도록 하겠다! :D

(인터뷰 전문을 옮기니, 관심있는 분들은 꼼꼼하게 함께 읽어나가면 좋겠다)

 


 

"인터뷰: 포르테 프레네스티노의 관리자 마리오"

Q. 이곳의 역사에 대해 좀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A. 이곳은 9세기에 지어진 군사요새 중 하나이다. 당시 이탈리아 왕이, 프랑스 사람들이 로마를 침입할 것을 두려워해서 지어졌다.

20-30년 후에는 전쟁의 방식이 달라졌다. 비행공습이라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의 형태가 생겨던 세계대전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면서 이 요새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이러한 요새들이 갑자기 버려지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이곳은 마니페스토를 위해 사용되기도 했지만 2차세계 대전 이후에는 아예 버려졌다.

45년 경에는 독일 나찌군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미국에 의해 격투당하면서 그들은 동쪽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곳은 로마의 동쪽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당시 나찌가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들이 격퇴당한 후 이곳은 다시 버려졌고 약 50년 전쯤 우리네 할머니들 세대에게 이곳은 그저 거대한 방치상태의 성으로 인지되고 있었다.

이것이 이곳의 역사적인 이야기이다.

'우리'의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이야기는 198651일에 시작한다. 그때 이곳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982~6년 사이에 여러 곳에서 점거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노동자계층 중에서도 극빈층들은 집 없는 사람들이 많았고, 파시즘 국가가 만들어지면서 실직자가 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오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펑크족들도 포함해서.

 

 

벽면에 있던 밖으로 난 창살은 요새로의 침입에 대비해 적을 쏘기 위한 틈이라고 했다

 

Q. 그들이 이곳을 점거한 배경은 무엇인가?

A. 방치된 공간을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해방하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Q. 이 공간의 특징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A. 이곳은 요새로 지어졌다보니 바깥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수많은 공간이 있다. 성벽을 따라 위쪽은 현재도 몇몇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적 공간으로 개방하지 않고 있으며, 각각의 방들은 여러 용도로 사용자에 따라 각종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양옆에 날개처럼 큰 뜰이 있어서 이곳에서 대규모 파티나 콘서트, 회합 등을 열곤 한다.

 

지하 부분은 100 개의 세포라는 의미에서 "센토 첼리 (cento celli)"로 불리는데, 알다시피 로마에는 수많은 지하시스템이 발달했었다. 요새로 사용될 당시 군수품이 이곳에 저장되어 있었다. 1986년에 처음 이곳을 점거했을 때 이곳에서 상자, 시체, 세탁기 등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된 나치 유니폼과 많은 군수품들이 있었다. 이것은 안뜰에서 거대한 모닥불 땔깜이 되었다. 당시 쓰레기로 가득차 있는 모든 방들을 청소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의 모든 장소, 특히 지하 물건을 탐험하진 않았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작업한 작가의 작품을 설명해줬다.

아래층(이곳은 입구가 요새라 입구가 2층 레벨이고 그 아래 1층 레벨이 숨겨져 있다)은 예전에 말을 두던 곳이다. 인터뷰 당시 이곳은 크랙페스티벌 기간이라 각 공간은 작업물로 칸칸이 채워져 있다. 크랙페스티벌의 경우 웹사이트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신청을 받는데, 이 방이 다 찰때까지 신청자를 받는 방식이다. 선정은 정치적 의제를 보고 채택한다. 공간마다 다른 아티스트가 작업하면서 계속 그 공간을 바꿔가는데 자유롭게 둔다.

 

 

 

Q. 이곳에서는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나?

A. 이 장소를 살아있게 위해 여러 가지 워크숍이나 활동을 한다. 음악을 가르치는 곳, 활을 만드는 곳, 공방, 체육관 등을 운영한다. 지금은 7월이라 대부분의 공간이 닫혀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 가지 워크숍들이 열린다. 펍이나 식당은 워크숍이나 콘서트 있을 때 열린다. 3월에 와인축제를 하거나 타투컨벤션, 만화나 실크스크린 미팅 등이 매년 벌어진다.

 

 

1층 레벨의 뜰에서 활쏘기를 하던 요새의 멤버

 

이곳은 90년대 레이브(Rave)의 성지이기도 했다. 많은 로마 스쿼트가 레이브 파티가 벌어졌다. 1990년대에 그들은 정원과 버려진 건물에서 레이브를 했다. 많은 공간들이 있지만 그 중에 작은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실내공간도 있다. 이곳에서는 언더그라운드밴드, 펑크밴드 등 비주류 음악밴드들의 공연이 벌어진다.

이 날도 공연이 한창 준비 중이었다.

 

라이팅룸에서는 포스터나 현수막을 손으로 직접 만든다. 실크스크린 작업과 핸드라이팅을 하며, 별도로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자전거 수리소가 있다. 바깥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돈 없이 자전거를 수리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 스스로 수리를 할 순 없다. 이 공간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안뜰에서 성벽까지 매우 넓은 공간은 야외로 곳곳에 많은 과실수가 있고, 우리는 양봉을 하고 채소밭도 가꾼다. 그리고 오늘도 콘서트가 열리며, 오는 이들을 위한 펍과 가게가 열린다

반문화, 펑크, 하위문화, 행동주의, 업사이클링, 정치적 예술, 페미니즘 문화 등이 이곳의 활동들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Q. 이 공간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는가?

A. 기부금을 받기도 하지만 왠만하면 우리가 자가수급하려고 한다. 워크숍이나 축제 파티 등을 열면서 어느정도 모은다. 이곳은 임대료는 없지만 약간의 전기나 수도 세금은 내고 있다.

 

 

Q. 이곳을 소셜센터라고 부르는데 이는 스쾃과는 어떻게 다른가?

A. 스쾃과 소셜센터는 다른 것이다. 스쾃공간을 지붕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행위이다. 소셜센터커뮤니티에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커뮤니티 센터를 돌려주기 위한 장소이다. 이곳에는 이 공간을 살아있게 하기 위한 몇몇의 사람만 이 안에 살 뿐이다.

이곳은 소셜센터이다. 이것은 어셈블이 한 결정이었다. 매주 9시마다 어셈블리를 연다. 연합에 속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이 어셈블에서 모두가 함께 이곳에 대한 결정한다.

 

 

실내 체육관이 있어 요새에서 수련을 하기도 한다.

Q.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사용료를 내는가?

A. 이곳에 있는 체육관도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보수를 받긴 한다. 하지만 외부의 일반적인 체육관과의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소셜센터의 정신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한달에 12유로 정도로 가격은 저렴하면서 수준은 외부와 같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지불할 수 있는 수준 정도에서 충분히 이런 사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버는 돈으로만 생활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외부에서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번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은 공동의 꿈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런 경험을 지속하는 것이다.

 

 

Q. 이웃들은 이 공간에 대해 잘 알고 이용하고 있는가?

A.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점거공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잘 알려져있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 이웃 중에도 성향에 따라 이곳을 좋아하는 이도 싫어하는 이도 있다. 파시스트들도 많이 살고 있고.

 

 

Q. 이곳을 운영하기 위한 규칙이나 회칙같은 것이 있는가?

A. 이곳에서의 모든 활동은 아나키즘에 바탕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도구라 부른다. 일종의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칙들은 어셈블을 통해 만들어지며, 현재는 보통 40명정도가 참석한다. 7월은 다들 휴가를 가거나 하기 때문에 좀 적은 편이다. 어셈블에는 같은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반성차별주의, 반혐오주의, 반파시스트, 자유 지상주의자 등.

Q. 당신은 언제부터 여기서 머물었나?

A. 2000, 18살때부터이다. 우리 가족은 이 근처에 살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타는 걸 좋아했고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Q. 지방정부에서 쫓아내려고 한 적은 없나?

A. 우리는 정부와 연락을 취하지 않으며 어떤 정치인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가나 정치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 쓰레기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 ^^ 우리를 쫓아내려고 한 적도 있지만 우리는 계속 저항해왔다. 우리는 여러 경험을 통해 충분히 저항할 만큼 강해졌다. 거기다 이곳은 30년 가까이 된 역사가 있는 만큼 주변에 여러 친구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를 변호해주고 함께 지켜주고 있다.

 

 

Q. 이곳의 목표는 무엇인가?

A. 우리에게 돈이나 소수 정치가들로부터 독립된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Q. 당신은 이러한 경험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보는가?

A. 나는 이런 류의 경험이 사람들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폭풍이 시작되려면 작은 빗방울이 모이기 시작해야 한다. 빗방울이 모이다보면 폭풍 이상의 것이 되기도 한다.

 

 

Q. 이곳의 영향을 받은 다른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이곳에 연락을 하고 오는 이들이나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달린 것이다. 당신이 여기에서의 경험을 가지고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린 것이다.

이곳은 또 다른 사회의 예시일 뿐이지 이곳에서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가지고서 또 다른 뭔가를 만드는 건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존재함으로써 사람들이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하는 게 전부다. 자유의지 가진 사람만이 스스로 변화할 가능성 지니고 있다.

 


 

 

 

이렇게 요새의 공간들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누었다. (뼈가 있는 인터뷰였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우리는 콘서트와 함께 열린 팝업샵에서 음료를 마시며 쉬기로 했다. 그때 또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이날 공연을 보러 온 미술작가와 CSI 뉴욕 음악감독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마침 자리로 돌아온 마리오가 그들에게 우리를 소개시켜주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우리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내년에 이탈리아에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며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래서 올해 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긴 시간 우릴 안내해준 마리오와 로렌조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우린 너무나 큰 환대와 안내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마리오가 뜻밖의 선물까지 안겨줬다. 바로 그들이 연구하고 제작한 책!!

 

정말 그 가슴뭉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귀한 자료인데, 선물로 턱! 하고 쿨하게 준 것이다. 비록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그림 위주로 읽었지만(...) 우리에게 이탈리아어 마스터(!)의 의지를 불태우게 해준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간 복잡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던 멤버들도, 평소에도 관심이 많아 스쾃을 연구하던 멤버도, 포르테 프레네스티노를 마무리하며 많은 메시지를 얻고 돌아갈 수 있었다. 아쉬움은 있었으나 헤어지는 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