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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EEKER:S Story/*훌라

[해외탐방기] 훌라(12) BACK TO DAEGU, 우리에게 남은 것

 우리는 ‘Back to the future, 미래로 돌아가는 여행’이라는 슬로건과 ‘공간의 문화정치와 점거운동 - 도시권의 확장 및 시민 자율성에 근거한 재영토화’라는 주제로 이탈리아의 여러 단체들을 탐방하고 왔다.

 

버려진 공간을 점거하여 폐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만든 이들, 사유지이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는 빈땅을 점거하여 생태공동체를 이루는 이들, 나의 집을 자발적으로 내어놓음으로써 사유공간에서 공유공간으로 그라데이션 하는 사람 등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하는 이들을 만나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도와 방법론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약 2주간 이탈리아 곳곳의 공간을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사전조사를 통해 이탈리아와 유럽 내에서의 점거운동의 흐름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을 하였고, 현지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사전 메일링을 통해 인터뷰 섭외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가서 맞닥뜨리기 전까지 머리로만 알던 것과는 실제 현장에서 부딪혀보는 것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라는 곳에서 민간의 활동가 혹은 예술가들이 펼쳐오고 있는 현장과의 만남은 단순히 자료나 이메일링을 통해 파악하거나 읽을 수 있는 것 너머의 독창적이고 풍부한,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이벤트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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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단체의 슬로건은 ‘도시야생보호구역’이다. 현재 대구 북성로를 중심으로 지역연구에 기반하여 장소성을 계승하는 터무니가 살아있는 도시놀이터를 통한 사회적 업사이클링 무브먼트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MORU'를 운영하며 아카이브, 전시,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밖에 지역 청년,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직접 북성로 자원과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한 업사이클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활동도 겸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개발이 군데군데에서 일어나며 오랫동안 이어져온 지역성이 단절되고 삭제되는 장면들을 목격하며 이러한 식의 변화가 아닌,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을 활성화하고 재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부동산 투기 논리에 대처하는 강력한 대안적 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점에서 이탈리아 여러 사례들이 지니는 시사점에 주목했다. 정부주도의 사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목소리가 주축이 되고, 그들의 일상화된 실천 속에서 어떻게 진정 시민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한 팀이긴 하지만, 팀원들 간에도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활동경험의 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탐방과 인터뷰 형태의 공통의 경험을 통한 되짚기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 지금까지 해 온 우리의 활동의 궤적과 앞으로의 지속가능성과 주체적 실천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쉼표가 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활동을 해 온 지역에서 우리의 비전과 상반된 도시의 욕망이 작동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계속되는 삶‘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고 또 다른 전술을 탐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에 있어서도 이번 탐방은 무척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 문화와 예술, 유휴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프로젝트로 풀어내는 아이디어 촉발

- 지역성과 다양한 코드를 접목한 재생 콘텐츠 기획 아이디어 발굴 및 사업화

- 탐방지 기획자 및 전문인력과 아이디어 네트워크 구축

- 단지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가능성을 펼쳐낼 재원충당 및 인력확보와 사업개발에 필요한 노하우 습득

- 주요 활동 지역인 북성로에서의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 심화개발 및 기술의 집약성이 보이는 사람의 기술력에 대한 지향점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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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라라는 단체가 태동하게 된 것은 ‘놀다가’이다.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공들여서 놀다보니 자연스럽게 공통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어떤 활동들이 만들어졌고, 이는 훌라라는 단체가 사회적으로 존재하며 일종의 가치사슬을 이루는 데까지 이어졌다. 함께 걷고, 발견하고, 기록하고,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도시’를 발견하고 이를 ‘우리의 도시’로 직조하는 과정에서 활동의 동기라던가 방향 등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팀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청년, 주민,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계속해서 확장하는 식으로 사업들이 만들어지고 전개되었다. 도시를 횡단하며 각자의 도시를 찾아내고 ‘도시자존감’을 회복하는 ‘도시탐사대’ 활동이라던가, 도시의 산재하는 소음들을 ‘사운즈’로 재발견해내고 이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운즈오브시티’ 등이 대표적인 확장형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문화프로그램들의 특징은 ‘도시를 공유’한다는 의식이 기반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공유의 방식은 ‘놀이’적으로, 공간을 계속해서 살아움직이게 만드는 활동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터전’인 도시공간이 반드시 존재해야한다. 사유화되거나 소비화되기 이전 혹은 그 이후의 공간들 어쩌면 변방에 속해있는 버려진 공간이나 남겨진 공간들을 일률화된 방식의 개발형태가 아닌 ‘놀이터’로써 재전유할 수 있을 때 이러한 활동은 지속가능성을 갖게 된다. 현재 우리 단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리적 ‘공간’을 ‘놀이터’화 하는 활동기반의 공유공간실험이다. 공식적으로 지자체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모루’라는 공간 외에 놀이터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공간들을 발굴하고, ‘또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재구성하고 이를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실험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탐방은 다양한 주체들의 활동과 네트워크에 내재되어 있는 ‘자유’와 ‘자존’의 정신을 경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성과에 대한 강박이나 지역적 콤플렉스에 구애받지 않고 생애주기형 활동을 펼쳐나가야할지에 대한 숨통을 틔워주었다.

 

- 행정기관 및 지주와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되, 이들을 견인할 수 있는 민간의 플래너 및 전략적 실천기업으로 발돋움

- 도시에 쌓인 시간이나 기억 등을 담고 있는 장소성을 존중하고, 장소에서 비롯되는 도시재생방안 구상

- 기존 도시재생 사업에서 고려하지 않은 도시향유자/사용자 계층 확대

- 다양한 계층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기억의 총량이 많은 도시 지향

- 지역의 사이클이 단절되지 않고 새롭게 해석되고 계승되는 연속성 있는 도시문화 생성

-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며 만들어갈 권리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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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공간을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머물기도 하면서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스쾃 공간들은 저마다의 동기와 맥락을 지니고 있었지만, 시민들의 자율성에 근거하여 제도화된 공간사용법의 경계를 허물고 문화정치적인 활동들로 도시권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이 사례들을 보면서 단지 먼 타국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하고 맞닥뜨리는 현실과의 관계성 속에서 작지만 유의미있게 해 나갈 수 있는 우리의 활동들을 각자 그려보고, 훌라라는 팀의 측면에서 어떻게 이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단지 도시재생사업이라는 형태로 단기간에 성과 중심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관계맺기를 통해 모두 다르지만, 모두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진짜 ‘재생’이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방향성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에 대해서도 이후에 계속 논의해가고 있다. 무언가를 쌓고 성장시키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공적자본을 연결하지 않더라도 민간 차원에서 먼저 실험하고 의제를 발굴하여 펀드를 조성하거나 자급자족하는 방안 등에 대한 ‘작지만 단단한 스팟’을 구축하는 것의 중요성도 새삼 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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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경우, 해외탐방은 외국의 사례를 선망하고, 국내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단시간에 옮겨오고자 하는 정책적 시도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씨커스를 통해 우리가 경험한 이번 해외탐방은 단순한 비교나 벤치마킹이 아닌 현상의 배경과 활동주체에 주목함으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지역현실의 배경과 우리와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특수성과 보편성을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인풋과 아웃풋을 화이트박스에 넣듯 바로 수식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 생태계에 대한 간접경험은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어떤 가치사슬과 생태적 연결고리를 중심에 두고 구체적 해결책들을 찾아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남겼다.

 

 

모든 길을 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중첩되어 이루어진 거대한 잎맥과 같다. 하지만 어떤 길도 저절로 나진 않는다. 누군가 걸었던 곳을 또 다른 사람들도 걷기 시작하며 그곳은 길이 된다. SEEKER:S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를 통한 해외탐방은 아직 나지 않은 길을 찾는, 모험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좋은 떠남의 기회이다. 우리 또한 그 문을 통해 무언가 찾기 위해 길을 떠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 길에서 보낸 시간과 머물렀던 공간, 그리고 우정을 나눈 친구들과의 기억을 되새기며 우리의 길을 이곳에서 이어가려 한다. 마침표가 아닌 이어쓰기, 다시쓰기로.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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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팀원들의 소감 코너!

 

 

김효선

내가 딛고 서있는 땅과 공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들을 경계 짓는 기준은 무엇이며, ‘소유’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어 지는가?‘라는 생각 말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공간 소유는 부동산에 의해 결정되고, 온 지구를 덮고 있는 피부인 땅은 경계가 지어져 조각조각 나있다. 이런 곳에 딛고 사는 사람들은 분리되고, 고립되며 소유하기 위해 천박한 자본논리에 쳇바퀴처럼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땅은 마치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인간 말고도 살아가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이번 탐방을 통해서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이들을 만났다. 이들을 통해서 사유화된 공간이 어떻게 비소유권(공공의 것)으로 재구성되고, 재구성된 땅에서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았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예술영역에서 공간을 재직조하고, 공간생태계가 회복되는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사람이든 또 다른 종이든 생명이 살아가고, 숨 쉴 수 있는 미소서식지(마이크로 해비타트)가 있는 그런 도시의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탐방이 팀에게 미친 영향

우리팀이 활동하고 있는 대구 북성로는 현재 아파트 개발로 과거의 시공간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순간적으로 허망했다. 탐방을 통해 받은 감동들이 괜히 헛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탐방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도 처음은 쉽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까지 만나지 않았는가. 그들의 혁명적이고도 꾸준한 걸음을 생각하기로 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차곡차곡 하자는 묵직한 의지가 생겼다.

 

발굴한 사례를 중심으로 한 향후의 계획 및 확장 가능성

내가 활동하고 있는 예술영역을 중점으로 사례를 발굴했다. 그 중에서 나폴리의 알토페스트 사례를 꼽고 싶다. 실험적 예술 운동인 이 축제는 공간 소유자들에게 사적 공간(집, 테라스, 지하실, 마당, 주차장 등)을 공유 공간으로 오픈하게끔 방식인데 이 방식을 일정부분 도입하여서 북성로 공장들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자발적 공유공간으로 오픈하게끔 하려고 계획 중이다.

 

탐방 후 전반적인 감상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형태에서 살아온 나로썬 급박하게 바꾸는 것은 힘들겠지만 조금씩 덜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극한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내 집에 난민들이 온다면? 안 쓰고 있는 공간들을 내어줄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스쾃 운동 자체가 유럽에서는 많은 경우 위법행위에 해당한다(넓은 세계관에서는 합당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들과 접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이탈리아로 갔고, 한사람, 한사람 만나가면서 관계 엮어 나갔고 우리가 선택했던 곳들을 모두 가볼 수 있었다. 이런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그러나 깊은 관계망은 흥분되었고 이는 즉흥적이면서도 그루브를 탈 수 있는 마치 째즈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년도 탐방팀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세상은 글로벌한 곳으로 눈을 확장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내가 두발로 딛고 서있는 그곳을 좁고 깊게 바라보고 뒤틀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깊게 땅을 파다보면 반대편의 세계가 나오는 진리처럼 말이다. 해외탐방을 통해서 많은 사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 스스로 아쉬웠던 점은 내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그곳에 대한 고민들이 깊지 않았구나라는 것이다. 두 발이 떠나기 전, 지금 딛고 있는 땅을 얼마나 깊게 파고 들어 가봤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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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찬미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팀원들과 이탈리아 스터디를 하던 때부터 스스로 해결되지 않던 개념이 바로 ‘공동체’, ‘점거’였다. 팀의 주제이자 중요한 개념임에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개인의 영역에 대한 확고한 선이 있는 사람이고, 지켜야 한다고 정한 규칙을 어기는 것에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어서다. 내 나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이해되지 않는 개념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카메라 프레임으로 한꺼풀 벽을 세운 뒤 주고 받는 대화를 ‘엿들었다.’ 그리고 ‘눈에 인상깊은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기록해나갔다.

 

그렇게 비로소 나온 정치와 점거에 대한 내 결론은 ‘신념을 향한 운동’. 그들은 ‘나’와 ‘나의 사람들(이 영역에는 마을, 동네, 공동체, 같은 점을 지향하는 인간으로 확장되어 간다)’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공동의 공간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운영해나가기 위해 갖가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신념을 운동으로 이어간다. 약간의 모금이나 워크숍에서의 적은 수익 외에는 공동체의 멤버들 스스로 돈을 벌어 점거지를 운영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는데, 바로 이 점이 나를 그간의 모든 해소되지 않던 갈증을 해결하게 했다.

 

훌라가 지향하는 인간과 동물의 도시권에 대한 의식은 우리가 하는 ‘사업’들로만 실현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관심 있는 영역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사업화해 수입을 내고, 이를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로의 혁신적 활동에 직접적으로도 투자하는 방식이 지금껏 훌라가 진행해온 사업-활동 방식이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를 흔들림 없는 깨끗한 목표의식으로 가기 위한 방법은 이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탐방한 곳들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것을 함께 하며,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이탈리아식 스쾃이라 생각했던 나는,계속해서 너희가 하던 방식으로 해 나가면 어떻게든(!) 변화가 자리 잡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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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현

공존, 말 그대로 '함께 존재하다.' 이 한 문장으로 내가 느낀 바는 귀결된다.

 

끊임없이 존재하기 위해 틈을 만들고, 공간을 되찾고,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가며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와 다른 무언가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스쾃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스쾃하는 공간을 찾아갈 때 일반 주민에게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ㅡ심지어 포르테 프레네스티노에 갈 때에는 ‘철문이 나올건데, 문을 두드리면 열어 줄거야.’ 라고 친절히 들어가는 방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ㅡ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직감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일까 생각을 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착하다. 준법정신이 뛰어나서, 누군가 법을 어기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다.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불법을 감행하는 사람들이었고, 불의한 법에 대항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법을 넘나드는 실천은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꺼이 나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자본의 논리와 같은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을 것이다.

 

이 목소리에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른 생명들 또한 포함되어있다. 이탈리아에서 봤던 공존의 모습 중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동물들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지금 많이 변화되고 있는 중이지만 여전히- 동물은 사람의 소유물이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서로가 경계하는 대상으로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공존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동물이 사람 사이를 거니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사람도 동물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