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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EEKER:S Story/*기억발전소

[기억발전소 해외탐방] ⑨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탐방 마지막 날, 기억발전소는 유대인 박물관으로 향했다. ‘개인’의 삶과 기억들이 공적 기억이 되는 사례 기관으로서 유대인 박물관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커다란 인종적 차별이라는 아픔을 견디고 만들어진 기념관 겸 박물관이다. 다른 생활양식의 차이, 역사, 문화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의 여러 이민이나 사회적 다양성이나 정체성에 관한 주제로 연결지어 꾸준히 특별전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소수자 아카이브의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933년 설립된 유대인 박물관은 이후 나치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2차 대전을 겪고 난 뒤 한참의 시간이 흐른, 2001년 9월 11일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식 개관하였다. 유대인계 미국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건축설계로 지어진 유대인 박물관 건물은 과거 프로이센의 법원으로 사용되던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확장한 것으로, 새로 지어진 건물은 유대인을 나타내는 다윗의 별이 왜곡된 형태를 띄고 있다. 박물관의 외벽뿐 아니라 전시장 내부의 건축은 ‘직선’과 직선이 만나는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공동, 공허감, 공백을 뜻하는 단어 보이드(Void)를 표현하기 위해 건축가가 의도한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중세시대부터의 유대인의 역사에 관한 상설전시와 홀로코스트 타워를 비롯한 유대인이 겪은 학살이나 차별에 대해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행해진다.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 의도와 닿아있는 메인 콘셉트는 “VOID” 즉 공동, 공허감이라는 단어이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유대인 학살과 함께 유대인과 관련된 많은 기록물이나 자료도 함께 사라졌다 이 비어있는 틈이 바로 유대의 역사에서 사라진 기억, 사라진 기록을 의미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유대인의 역사와 건축이라는 예술이 주는 울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였다.
전시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연속성의 축(Axis of Exile)’이라 부르는 첫 전시장을 만나게 된다. 경사진 바닥을 걸으며 당시 유대인이 사용하였던 물품, 주고받았던 편지, 가족사진 등을 보게 된다. 또한 24m 높이의 홀로코스트 타워를 비롯하여, 야트막한 경사 위에 세워진 콘크리트 기둥이 있는 ‘추방의 정원’이 있다.

 

연속성의 축

 

 

추방의 정원

 

다음 전시장은 메모리 보이드(Memory Void)로 쇠로 만들어진 얼굴 형상의 오브제 1만 여개가 바닥에 깔려있는 샬레헤트(Shalekhet, 낙엽) 위를 지나다니며 철이 부딪히는 소리를 느끼게끔 하는 전시와 빈 공백이 있다.

 

 

이후 유대인의 2천년 역사와 유대인과 독일의 관계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대인의 풍습에 관한 비디오, 여러 지역의 디아스포라의 모습, 유대인 과학자들의 성과, 일상적인 유대인 학생들의 공간이나 가정의 공간 재현 전시, 구술을 들을 수 있는 공간 등 다양한 전시 방식이 활용되어 긴 세월 동안의 유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전시 공간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유대인의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둥그런 소파 형태의 시청각 섹션, 참여와 체험을 유도하는 디스플레이, 아티스트의 작업을 통한 관객 참여, 기억을 바로 수집/녹음할 수 있도록 만든 테이블, 주제별로 구술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섹션 등)와 예술과 기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접근방식이 있었다. ‘한 개인의 경험’을 제공해주고 그것들을 기억함으로서 나의 ‘감정적인 체험’으로 습득할 수 있게 하는 세심한 프로세스가 인상적이었다.

 

 

 

 

 

‘복종(Gehorsam; Obedience)’이란 제목의 특별전은 신을 따르고, 자신의 아들을 신을 위해 희생시키고자 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시작점 삼아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와 멀티미디어 작가 사스키아 보데케(Saskia Boddeke)는 영상과 음악, 오브제 설치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15개의 방을 구성하여 아이작에게 신과 명령과 아버지의 대한 사랑 사이의 무엇이 더 강한가? 그리고 복종과 믿음에 관한 현대적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유대인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온 뒤, 모두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유대인 박물관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파장이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가장 잘 보여준 탐방지가 아닐까 싶다. 입장과 동시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비극적인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상징적 장치들로 관람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축 설계가 인상적이며, 다양한 시도와 예술과 기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접근방식그 안을 채우던 희생자들의 일기, 편지, 앨범과 같은 평범한 삶의 풍경이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을 더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박물관의 상설전과 별개로 특별전과 연계하여 현재진행형의 기록이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다시 작품으로 적용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핍박과 억압 속에 되살아난 유대의 역사를 한 축으로 보여주되 특별전에서는 동시대의 ‘이슈’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눈깜짝할새 2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유대인 박물관을 끝으로 베를린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29일 이른 새벽, 런던 히드로를 경유하여 인천을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택시를 타고 테겔 공항으로 향하는 길, 밖에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적막 속에서 2주 간의 탐방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