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5 SEEKER:S Story/*기억발전소

[기억발전소 해외탐방] ⑩ 탐방 후기

지난 2주가 어떻게 갔는지 실감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2주가 2달같이 느껴졌지만, 돌아와서 자료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2주라는 시간이 꿈같이 느껴진다. 영국 런던, 브라이튼,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를 오가며 총 12개의 기관, 9명의 담당자를 만났다. 개인사 및 시각예술 아카이브 중심의 탐방기관들이 주를 이뤘던 영국, 시니어를 위한 전시 ‘시간과의 대화’를 거쳐 독일에서의 최종 탐방지인 ‘유대인 박물관’은 영국과 독일에서의 경험을 모두 모아 기억발전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탐방을 통해 반갑고 유익했던 기관 방문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의 다양한 문화도 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팀장 박소진

 

  2015년 6월 15일 기억발전소는 런던으로 떠났다. 5개월간 늘 매일의 체크리스트에 자리하던 시커즈. 그간 마음 한켠에 두고두고 쌓아두었던 묵은 보따리를 풀어낼 시간이었다. 돌아오면 마무리 되어있을 전시 준비에 한창 정신을 쏟아 떠나기 전 날의 설렘을 채 느끼지 못했다. 길고 긴 12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런던에 도착하니 한국의 가을처럼 날이 참 맑았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가는 길에 자그마한 카페와 상점, 성소수자들을 위한 서점,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가 자리해 있었다. 우연히 만난 ‘인생학교’ 앞에서 우리는 시커즈 탐방길의 첫 날이 훗날 우리 인생의 소중한 이정표였을거라 기대했다.

  15일의 일정 중 하루 하루가 소중했고, 방문한 기관들 역시 많은 시사점을 남겼지만 기억발전소의 비즈니스 차원에서 큰 수확이 된 주요 기관들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런던에서의 첫 주요 목적지는 영국국립기록보존소(The National Archives)였다. 오기 전 출장으로 국가기록원에 다녀왔던터라 차이점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접근성은 두 나라 모두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곳이 훨씬 개방적이고, 활기차다. 예상대로 가족사 파트가 인상적이고, 뿌리를 찾으려고 가족이 총 출동한 시니어 무리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오기 전 우리가 주목한 아카이브(역사/개인사) 를 활용한 워크숍, 그리고 그 결과들을 바탕으로 짜게 될 비즈니스 툴이 떠올랐다. 식민지와 피식민지 각각의 입장에서 봐야할 아카이브 큐레이션을 고민하게 되었다. 3일차에 방문했던 오토그라프 에이비피(Association of black photographers)는 1980년대 흑인 사진가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려 세워진 곳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흑인'이라는 단어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냄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에 대해 다시 되묻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리가 던진 질문은 특히 '시각예술'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번 탐방 기관 중에서 가장 이미지를 중요 매개로 활용하는 단체였기 때문에 ABP의 활동에서 기억발전소가 배워야 할 점은 많았다. 특히 시각예술분야이기 때문에 사진가, 예술가들이 개인사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소수자의 문화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해 사진과 소수자의 기록을 연결하여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법들이 다채로웠다. 사실 ABP의 활동도 초창기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확장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진만 고수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만큼 강력하게 관객에게 다가가는 매체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동의하고 있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PYMCA(Photographic Youth Music Culture Archive)의 유스클럽(Youth Club)는 말 그대로 청년문화와 서브컬처, 라이프스타일, 음악, 패션 등의 연구를 위한 아카이브로 6만 점의 사진을 포함하여 아직 스캔되지 않은 15만 점 이상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문화연구와 전시 등을 진행해왔다. 초기에는 매거진으로 시작되어 이미 쌓아놓은 다량의 사진 아카이브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다루는 방법이나 주목하는 점이 우리와 교차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곳은 영리영역으로 사진 에이전시와 같이 운영되는 PYMCA, 비영리 영역으로의 Youth Club 두 개의 이원화 시스템으로 접근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향후 기억발전소 운영체제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런던박물관(Museum of London)의 경우 서울역사박물관과 비슷한 포맷으로 런던의 역사를 상설전시로 구성 해놓았고, 근대에 와서는 시민 인터뷰 및 구술기록물, 현대 예술 작품을 곳곳에 비치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게 디스플레이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상설전에 기획전을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크게 다른점이 있다면, 1976년 개관하여 1980년대부터 런던 주민들의 개인사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TF팀이 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물건을 주로 수집한다면, 이곳은 구술 인터뷰 및 기타 등등의 자료를 함께 수집한다. 서울문화재단의 메모리인서울 프로젝트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하는 형태라는 생각이 들면서, 국내 기관들에도 충분한 인적, 물적자원이 있는데 그 사이 사이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못한 지점이 아쉬웠다. 오히려 이 사이에서 기억발전소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개인의 입장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의 메모리인서울 프로젝트가 좀 더 캐주얼한 느낌이라면, 이곳의 런던기록보관소(General Museum of London Recordings) 같은 경우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예시와 발언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40여년 가까이 쌓여온 자료들을 위한 아카이브실을 따로 운영한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있는 지점인 것 같다. 2000여건, 5000시간 이상에 달하는 구술기록물이 다양한 사람들을 채록하지만 주로 소수자(런던 항구 노동자, 흑인노예, 현 이주 다문화 등)들의 삶을 카테고리화 시켜 모아두었다. 기억발전소에서 개인사 아카이브를 다루면서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 개인정보(저작 및 초상권)에 대한 것인데, 영국도 기관별로 그 지점을 해결하는 방식과 지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영국에서는 그 중심에 '윤리적'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 부분을 국내적용 시킬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보였기 때문에, 아카이브를 다루는 입장에서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튼의 서섹스 대학(University of Sussex)에는 MOA(Mass Observation Archives)과 The Keep에서 가장 크게 기록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체감했다. 탐방기간동안 둘러본 the National Archives나 British Library, Museum of London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과거의 자료를 찾고, 자신의 삶의 조각을 찾으려는 시니어가 많이 있었다.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고 찾아보는 것을 '취미'라 말하는 시니어 자원봉사자의 말이 인상깊게 남았는데 영국은 이것이 가능하도록 아카이브 시스템이 갖춰져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MOA에서 열린 소규모 아카이브 워크숍에서도 The Keep Archive의 자료를 최대한 잘 활용하여 참가자가 직접 자신의 뿌리-인물이나 장소를 찾아갈 수 있게 길잡이를 해주어 전반적인 기록문화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의 일정이 개인사 아카이브와, 아카이브의 시각예술분야로의 활용법에 주 초점이 맞춰져있었다면, 독일에서의 일정은 시니어의 기억을 아카이빙하는 기존의 기억발전소 컨텐츠를 전시의 형태나 워크숍 등의 비즈니스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주요 초점을 맞추었다. 베를린 소통 박물관(Museum für Kommunikation)에서는 다이얼로그 소셜 엔터프라이즈(Dialogue Social Enterprise)가 주관한 시니어 체험 전시 ‘시간과의 대화’를 둘러보고 전시담당자와 시니어 가이드에게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에는 다이얼로그 소셜 엔터프라이즈의 본사가 있는 함부르크로 이동해 CEO인 안드레아스 하이네케(Andreas Heinecke)와 COO, 오르나 코헨(Orna Cohen)을 만나 기억발전소에 대한 소개를 하고 전날의 전시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과의 대화’ 기획 과정, 한국으로 전시를 들여오는 절차와 전시 워크숍들에 대한 논의를 했다.
  함부르크에서 돌아오는 길 ‘시간과의 대화’를 그대로 들여오는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기억발전소의 자체역량을 고민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구체적으로 이 사안에 대해 협업할 수 있는 기관을 만나 실행가능한 부분이 있는지 재설정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역시,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 것에 있어 자금 조달부터 전문가 컨설팅, 기관 조율까지 2년여 시간이 걸렸다는 조언을 주었다. 본사가 있는 독일에서 조차 상설전시로 지속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들여오는 절차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전시 자체에 대한 명확한 목적성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자료로만 경험했던 전시를 직접 경험하니 생각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6개의 방으로 구성된 전시 콘텐츠 중 기억발전소의 미션과 가장 부합하는 콘텐츠는 1개의 방으로 시니어 가이드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관람객에게 설명하고,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 이미지를 활용해 함께 나누어가는 테마였다. 이는 기존 기억발전소의 <기억의 지도>와 흡사한 형태로서 우리 컨텐츠가 전시의 형태로 개설되어 관람객이 있고 대상층이 다양하고 1:1로 만날 수 있다면 저런 모습을 띄지 않을까하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해주었다. 또한 <기억의 지도>를 진행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시니어 강사 양성이 ‘시간과의 대화’에서는 시니어 가이드의 양성과 교육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우리 또한 전시를 통해 시니어 가이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정서적 교감’을 체험했기에, 향후 컨텐츠 제작 측면에서 역량있는 시니어 강사 교육을 가장 염두해야 할 부분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대인 박물관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파장이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가장 잘 보여준 마지막 탐방지였다. 조용하지만 상징적 장치들로 관람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축 설계가 인상적이었고, 그 안을 채우던 희생자들의 일기, 편지, 앨범과 같은 평범한 삶의 기록물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을 더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기록이 가진 그 자체의 힘에 대한 어떤 믿음을 주었다고 해야할까. 탐방 기간 매일 저녁 침대 맡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지속적으로 자문하던 것은 탐방지와 한국사이 좁힐 수 없는 전반적인 ‘문화적 차이’에 대한 것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만의 적용 방식이었다. 문화적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한국적인 방법이 ‘시간과의 대화’ 같은 전시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기억의 지도’ 같은 출판의 형태, 때론 ‘MOA' 같은 교육이 될 수 있지만 좀 더 넓고 멀리 다양한 기록 문화를 확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이번 탐방의 최종 숙제가 될 것 같다.
  씨커즈가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다음 목적지를 향한 지도와 나침반이다. 돌아와서 떠나기 전 했던 고민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탐방 후 받은 많은 영감들을 개인사 아카이브, 시니어 아카이브의 영역에서 어떻게 ‘기억발전소화’ 시킬 수 있는지, '기억의 풍년' 속 에서 기억발전소가 바라보고 공유하고자 하는 지향점과 목적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발전소의 구성원으로서의 배움과 함께, 개인으로서 나의 역량을 시험하고 체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생은 늘 후회의 연속이라고 무탈하게 잘 다녀온 탐방이라 할(볼) 지라도, 보고서를 작성하는 오늘도 돌이켜보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내년에 참여할 팀에게는 꾸준한 영어 공부와 함께 탐방에서 만날 모든 이에게 깊이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전조사를 당부하고 싶다.

 

 

 

 

팀원 전미정

 

  처음 유럽에 갔던 것이 2007년.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갔던 그 때, 런던과 베를린은 거의 여행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었다. 기차를 타고 넘어갔으니 베를린을 먼저 거쳤고 런던은 프랑스에서 도버해협을 배로 건너 도착했다. 벌써 거의 8년이 된 때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법도 하지만 추운 계절, 그때의 런던과 베를린이 너무 쌀쌀하고 어두웠다는 것만은 생생하다. 그랬기 때문일까? 탐방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생각하니 기억 속의 두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곳은 이미 익숙한 곳이지만 생전 처음 가는 곳처럼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국 직전까지 어쩜 그리도 무수히 많은 사건이 터지는지. 일단 시원치 않은 허리가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가장 큰 복병이었고, 대한민국은 중동발 호흡기질환의 확산으로 아비규환이었던 데다가, 6월 15일 출국일 직전까지 우리는 밤을 새며 서울도서관에서 오픈할 전시 콘텐츠를 디자이너와 수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비행기를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서 보딩을 앞두고 있자니 마음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예전에 출장으로 여러 사람들과 해외에 간 적은 있지만, 동료이자 식구이자 동생 같은 기억발전소의 소진, 원영과 함께 꽤 먼 곳으로 함께 떠난다는 사실은 정말 새로운 기분이었다. 굳이 ‘팀워크’라는 단어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서울에서, 익숙한 일의 패턴 속에서의 생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완전히 다른 환경, 완전히 다른 경험 앞에 함께 놓이게 될 것이고 그 와중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체화하게 될지 너무 설레고 긴장되었다. 물론 이런 긴장감도 비행기 좌석에 안착하자마자 금세 곯아떨어지면서 곧 사라졌지만 말이다.
  런던에 도착하고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행운의 여신이 있다면 우리 편이었을까? 도착해서부터 런던을 떠날 때까지 하늘은 맑고 공기는 선선했는데, 과연 이곳은 심술궂은 날씨로 악명이 높은 런던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런던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 전날까지 비가 불고 바람이 거셌다며 우리에게 “Lucky” 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 같은 기분은 탐방 기간 내내 우리를 감쌌다. 숙소 근처에는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School of Life)’가 자리 잡고 있어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고, 계획대로 탐방을 진행하면서 책이나 잡지에서 보았던 지금 이 시대의 트렌드를 눈으로 확인하며 문화예술계의 흐름이나 방향에 대해 온 몸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계획에 없던 체험을 하게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브라이턴에서는 개인사 아카이빙의 대명사 KEEP과 Sussex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설명하기 힘든 공감대가 형성되어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독일로 넘어가서는 Dialogue Social Enterprise의 CEO, CCO가 베를린으로 넘어올 수 없다고 하여 함부르크로 가야했는데, 바뀐 일정 안에서도 본래의 계획대로 <Dialogue with Time>을 체험하고 유대인박물관까지 무사히 둘러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일주일, 브라이턴에서 사흘, 베를린에서 나흘. 심사숙고해서 짠 일정을 알차게 수행해내 뿌듯했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전시회도 잘 오픈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돌아와서 보니 씨커즈를 통해 탄탄히 세운 계획은 커다란 틀이자 방향키였다. 더 이상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짰던 계획이었으니 여유시간은 거의 없는 셈인데 그 와중에도 우리의 레이더를 타고 들어오는 아주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기억 세포에 생생하게 새겨졌다. 그래서 이후에 탐방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여행과 탐방이 사실은 한 끝 차이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출장, 탐방, 과제, 보고서…. 이런 단어들을 생각하면 당장 머리가 쥐가 나고, 피곤한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우리가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궁금한 것, 더 알고 싶은 것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타지에서의 피곤한 일정은 순식간에 설레고 신나는 모험이 된다. 일부러 ‘이렇게 해야지!’라고 독한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신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하루가 정말 짧았다(물론 우리가 유럽에 머물던 시기에는 밤 9시까지 날이 밝았던 탓도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처럼 연장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물론 건강관리는 잘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잊지 말 것. 함께 움직이는 동료에게 폐가 될까 두려워 자기 관리하며 버틴 1인의 고백임). 어쨌든 공식일정도 좋지만 공식일정 이외의 시간에 체험하게 되는 모든 것이 결국 우리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감을 잃지 말라는 것. 이번 탐방은 기억발전소의 아이템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여러 기관을 방문하고 관계자를 만나는 것이 목표였다. 아카이브에 관해서는 이미 선구적인 영국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독일에서도 ‘기록문화’와 ‘개인사 아카이빙’에 대한 관심은 그 문화적 토양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렇게 될 수 없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탐방을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선진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라고 해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또 기억발전소에서 그동안 해왔던 방식이나 접근방향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상대적인 비교로 속상해하거나 무작정 그들의 경험을 배워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들의 경험을 존중하되 우리의 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까? 일단 우리 스스로 자신감을 얻는 여정이 되었다는 점이 이번 탐방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 탐방이 나라는 개인에게 준 선물은 무엇일까? 솔직히 선물이라기보다는 앞으로의 숙제를 얻은 것 같다. 여행(=탐방)을 하는 내내 새로운 배움의 순간이라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적이 여러 번이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번 탐방 기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생각이다. 나 자신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억발전소가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민. 무엇보다 이 일을 시작한 나라는 사람의 진정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배경이나 자원이 완전히 다른 가운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푸른 눈의 이방인들이 드러내는 그 일에 대한 애착을 바라보며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다시금 깊이 던져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의 모든 과정에 함께 하는 동료와 후배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울타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기억발전소의 발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그 보폭을 뗄수록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더 많이 나누고 고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쨌든 결론은 ‘사람’으로 모아진다. 아카이빙의 종주국답게 문화․역사적으로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 뿌리 찾기 등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녹아있는 영국의 여러 국공립민간기관 그리고 세계적인 사회적기업가로 시니어의 이슈를 전시로 풀어내며 자연스럽게 삶의 이야기를 건드리는 독일의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등을 만나고 돌아오니 질문 하나가 남았다. “그래서 아카이빙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그리고 이번 여행을 마치며 내린 결론은 “기록을 위한 아카이빙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아카이빙”이라는 것이다.
돌아온 후 서울에서도 마치 영국과 독일에서처럼 일상을 탐방하듯 즐거움과 놀라움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회적기업’이나 ‘비즈니스’라는 말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매일매일 꾸준히 이 일상을 살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행이란 내가 익숙한 곳에서 떠나는 일이지만 사실 여행(Journey)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질 때까지의 하루’를 의미하는 불어 ‘jour’에 닿아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긴 여행도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주하는 일정이자, 매일매일 쓰는 일기(Journal)인 셈이니까. 잠시 한숨 돌렸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씨커즈. 고맙습니다. 땡큐! 아이러브유! ^^

 

 

 

 

팀원 이원영

 

  보름 간 영국의 런던과 브라이튼, 독일의 베를린과 함부르크 등 다양한 지역과 기관을 방문하며, 여행만으로는 보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왔다. 영국의 여러 아카이브와 박물관 등의 기관을 방문하고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기록’되어지는 것의 중요성, 기록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면, 독일의 다이얼로그 소셜 엔터프라이즈의 전시, ‘시간과의 대화’와 ‘침묵 속의 대화’ 그리고 유대인박물관에서의 전시는 기록이 보여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사람들에게 ‘아카이브’는 박물관, 도서관과 같이 친근한 곳으로, 자신의 가족의 역사와 같은 찾고자 하는 주제에 관한 자료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에게 있어 ‘원문’이라 하면 중요하고, 반드시 훼손되지 않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을 뿐, 원문을 다양한 사람들이 읽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영국에 원문이든 복사본이든 다양한 기록을 보고자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자신의 가족사를 찾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르나 많은 기록들이 쌓여있으며, 누구나 쉽게 아카이브된 기록에 접근하도록 소장된 자료의 온라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상주해있는 아키비스트들이 도움을 주고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자료 활용법을 알려주는 계기를 만들어나가는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기록을 친근하게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영국의 아카이브 기관들은 기관끼리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기관이 함께 일을 하는 방식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서로의 정보가 공유된다는 것, 각 아카이브가 어떤 주제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갖추어 아카이브 기관마다 제공하는 자료가 무엇이고, 특징이 어떠한 지를 기록을 찾는 이들에게 알려주어 더 많은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였다.
  독일에서는 시간과의 대화와 침묵 속의 대화 전시, 유대인 박물관의 전시를 체험하고, 담당자를 인터뷰하였다. 한국에서 자료를 보던 것과 실제로 어떻게 전시가 진행되고 운영되는지를 살펴보는 것과 함께 시간과의 대화와 침묵 속의 대화를 통해서는 ‘만남’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유대인 박물관의 전시는 ‘예술’이 줄 수 있는 감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만남이라는 말은 지극히 상투적일지도 모른다. 기억발전소는 책과 전시를 통해 대상자(시니어, 청소년 미혼모)와 일반인들이 만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다보면 인식 개선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되는데, 책과 전시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진지한 장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대인 박물관에서 만난 직선과 사선, 경사가 주는 공백의 의미, 다양한 전시 형태를 살펴보며 여러 기록들이 주는 직접적인 이해와 만남 이외에 다르게 다가오는 감동이 있었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기록들을 아울러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유대인 박물관은 뚜렷하게 하나의 인상으로 기억되게끔 만들었다.
  탐방이 의미가 있었던 건 기억발전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는 동시에 나를 계속해서 자극하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더 채워 나가야할 것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기억을 마주하는 의미에 대해, 또 개인의 기억이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런 면에서 부족한 영어실력, 사진, 회화, 건축 등에서 보여지는 예술을 보는 부족한 안목이 계속 아쉬웠다. 이를 채우기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